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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교재로 공부하는 '과학자'…"지식 모듈화로 지혜의 탑 쌓아라"

[과학자의서재③]박문호 ETRI 박사 "독서근력 키워라"
"학습독서는 철저한 계획세워 책 구입하고 공부해야"

"자연과학 책을 읽어야 한다. 자연과학 책의 내용은 철학자들의 질문에 대한 답변이라할 수 있다. 그 안에는 인문학 등 모든 분야가 담겨 있다. 일부에서는 인문학만 찾는데 이는 한계가 있다. 자연과학 분야는 물론 이해하기 어렵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하나. 6개월전부터 도서구입 계획을 세우고 구입 후에는 지독하게 공부하는 학습독서를 해야 한다." 퇴근 무렵 방문한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원장 김흥남) 박문호 박사의 집. 현관에 들어서자마자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건 천장까지 짜맞춘 책장과 그 안에 빼곡히 들어차 있는 책들이다.

거실뿐만이 아니다. 안방, 주방 등 온 집안에 벽이 보이지 않을 정도다. 사방이 온통 책으로 둘러싸여 있다. 얼핏봐도 수천권이 넘어 보인다. 박문호 박사는 대략 6000권정도의 책이 있다고 답변한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보유한 책 중 70%는 자연과학, 30%는 인문학 분야다.

그리고 자연과학분야 책 대부분은 대학 교재다. 자연과학분야 도서 중 절판된 책만해도 400여권이 넘는다고 한다. 나머지는 시를 비롯한 인문학 책으로 구성돼 있다. 보기드문 자연과학책 장서가로 인정받아 출판협회로부터 '모범장서가' 상패를 받기도 했다.

책 구경에 빠져 있는 동안 저녁식사가 준비돼 박 박사와 식사를 같이 하면서도 대화는 자연스럽게 책 이야기로 돌아간다.
▲박문호 박사의 집 현관에 들어서서 가장 먼저 만나는 책장과 책들. 빈벽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사방에 책장이 있다. ⓒ2011 HelloDD.com

◆사람의 뇌, 50대가 되면 인문학 찾는 구조, 자연과학 책 먼저 봐야

박문호 박사는 자연과학분야 학습독서가로 이미 잘 알려져 있다. 2009년 베스트셀러에 올랐던 '뇌 생각의 출현' 등의 저술 활동과 활발한 강연으로 자연과학 독서의 필요성을 널리 알려왔다.

독서클럽 '백북스'의 공동대표를 맡고 있는 그는 자신의 집을 공개하면서 책을 좋아하는 이들에게 자연과학분야 책 선정과 독서 방법을 전달하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그의 독서 방법을 따르는 독서가들이 대덕연구단지를 넘어 전국적으로 꾸준히 늘고 있음은 잘 알려진 사실. "학습독서는 평생 '학생'으로 공부하는 것이다.

졸업이 없는 상황에서 평생 교과서로 공부하는 것이다. 백북스 클럽을 통해 그런 운동을 펼치고 있다." 그럼 그가 자연과학분야 학습독서에 몰입하는 이유는 뭘까. 단순히 과학자라는 차원에서는 잘 설명이 되지 않는다.

그가 펼치는 독서론은 그래서 신선하다. 일반인이 흔히 걷는 길과는 정반대로 보이기 때문이다. 바로 종교와 철학의 궁금증이 그를 자연과학으로 인도한 것이다. 그는 "지금은 우주 시대가 열리게 됐다.

그런데도 여전히 많은 이들이 종교와 철학에 연연한다. 왜그럴까 궁금해서 뇌를 공부하기 시작했다"고 말하면서 "또 137억년 전 일어난 우주의 전체 흐름이 어떻게 나에게까지 오게 됐는지의 이유를 알기위해 자연과학분야를 체계적으로 공부하고 있다"고 학습독서의 배경을 설명해준다.

그의 설명에 의하면 인문학이란 자연과학 안에서 인간의 상징인 언어를 매개로 한 정신적 활동이다. 따라서 브레인의 자연과학적 동작을 알게되면 인문학도 이해하게된다. 그러나 인문학을 먼저하면 자연과학을 알 수 없게 된다.

자연과학안에 인문학이 포함돼 있다고 볼 수 있다. 인문학은 인간의 생각을 언어로 표현하는 것으로 100만년을 넘지 않는다. 그렇지만 우주는 137억년의 나이가 있다.  박 박사는 인문학과 자연과학 등 모두를 아우르며 균형있게 공부하기 위해서는 자연과학분야 공부가 우선돼야 함을 강조한다.

"사람의 뇌는 50대가 넘으면 인문학 책을 찾게되는 구조다. 따라서 20, 30대에는 자연과학으로 공부하고 50대가 넘으면 자연스럽게 인문학 책을 보면 된다. 그러므로 어릴 때부터 자연과학책을 많이 볼 수 있게 해야 학습의 균형을 이룰 수 있다."
▲안방도 예외는 아니다. 책장 앞에 대학교재와 강의 수첩이 쌓인 박 박사의 책상이 보인다.   ⓒ2011 HelloDD.com
▲박 박사는 강의를 위해 공부한 내용을 수첩에 기록한다. 이런 수첩이 올해만 벌써 20개가 넘는다  ⓒ2011 HelloDD.com

◆소설로 시작해 소설로 끝나는 독서는 경계 대상

"소설은 책을 읽는 맛을 들이는 정도다. 소설로 시작해 소설로 끝나는 독서는 경계해야 한다. 소설로 독서에 맛을 들인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 재미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그 자리에 주저앉는 경우를 많이 봤다.

학습독서가의 관점에서 볼 때 소설은 독서 효율이 떨어진다." 박 문호 박사는 책 구입 방식은 색다르다. 소설책 등 한번 보고 말 책은 처음부터 구입하지도 보지도 않는다. 자연과학 학습독서에 몰입하기 위해 소설 읽기로 할애할 시간이 없다는게 그의 설명이다.

그렇지만 시는 그도 즐기는 분야다. 수학이 자연의 세계를 상징한다면 시는 느낌의 세계를 문자로 표현하는 분야이기 때문이다. 그 역시 자연과학의 경이로움을 시로 표현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고등학교, 대학교 1, 2학년까지는 소설책을 읽어도 되지만 30살이 넘어서도 소설책을 본다는 것은 문제가 있다.

자연과학 분야 독서를 꾸준히 해야 인생에서 스스로 균형을 맞춰 나갈 수 있다." 실제 그 역시도 대학교 초기까지는 소설책을 읽었지만 군대에 입대한 이후부터 자연과학분야 독서를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하지만 그의 자연과학분야에 대한 관심은 중학교부터 시작됐다고 볼 수 있다. 경북 울진이 고향인 그가 책을 읽기 시작한 것은 초등학교 6학년 무렵이었다. 당시 정부는 정책적으로 초·중·고 학생들에게 자유교양도서를 읽게했고 각종 독서 대회를 진행했다고 한다.

"그리스로마 신화부터 논어, 맹자, 율곡 이이 등 평소에 접하지 않았던 책을 읽을 수 있었다. 책 읽는 재미에 빠졌고 지역 대표로 나가 상도 받았다. 아마 이쯤부터 본격적인 책 읽기가 시작된것 같다." 초등학교 졸업 후 중학교에 입학한 그는 가장 먼저 학교 도서관을 찾았다.

그리고 거기서 만난 우주의 신비 등 자연과학책은 그에게 큰 감동으로 다가왔다. 이는 그가 과학분야로 공부의 방향을 결정하는 중요한 계기가 됐다. 잠시 지난 시간을 회상하기 위해 창 밖을 내다보는 그에게 특별한 독서습관이 있는지를 물어보았다.

"주로 새벽과 주말시간, 퇴근후에 책을 읽는다. 독서할 때는 전화도 꺼둘 정도로 집중한다. 주말에는 공부한 분야를 백북스 독서 클럽을 통해 강의도 하고 등산도 함께 한다. 학습독서는 단순히 독서가 아니라 종교와 같다. 평생을 두고 해야하기 때문이다."


◆독서 근력을 키우고 독서선행지수로 1년 독서계획 세워라

"자연과학분야를 공부하려면 직업과 상관없이 50년은 해야 한다. 적어도 5개분야에서 박사학위를 받는다는 마음으로 공부해야 한다. 한 분야에 10년씩 걸린다고 보면 최소한 50년은 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난 30년에 그걸 하려고 한다. 랜덤하게 해서는 결코 다 할 수 없기 때문에 학습독서에 더 집중하고 있다." 그가 말하는 학습독서를 위해서는 운동에 체력이 필요하듯 독서근력이 필요하다. 내용도 어렵고 재미하고는 거리가 먼 대학 교과서 같은 책을 처음부터 읽어낼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기 때문이다.

독서 근력을 위해 가장 좋은 방법으로 박 박사는 '반복 독서'를 강조했다. 구입한 책을 우선 미리 맛보기로 한번 보고 한달 후, 6개월 후 되풀이 보며 지속적으로 공부하다보면 독서 근력도 자연스럽게 자라게 된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박 박사에 따르면 자연과학분야는 물리학 양자역학 등 10개 분야지만 세부적으로 들어가면 40개 분야로 나눌 수 있다. 이 분야에서 관심있는 자연과학 분야를 정하고 책 구입도 계획적으로 해야한다.

우선 자신이 공부할 관련 책 목록을 찾는다. 그리고 최소한 6개월전, 1년전부터 교과서 중심으로 책을 구입한다. "10여년 전에는 일반과학책을 봤지만 5년전부터는 교과서만 보고 있다. 교과서만큼 자연과학을 잘 정리한 책이 없다.

정보량이 일반책의 10배 이상이다. 일반책 10권 읽는것보다 대학교재 1권 읽는게 정확한 정보량을 더 많이 담고 있다." 그는 "교과서를 중심으로 책을 구입하기 때문에 책 구입을 위해 고민할 필요가 없다"면서 "자연과학 각분야를 잘 집대성한 책으로 교과서만한 게 없다. 자연과학을 체계적으로 공부하려면 계획적인 책 구입을 위한 독서선행지수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박문호 박사에게 추천도서를 요청하니 나카자와 신이치의 '곰에서 왕으로' 를 읽어 볼 것을 권한다.  ⓒ2011 HelloDD.com

◆어려운 책 선정해 공부하고 지식 모듈화 통해 나눔 실천

"137억년전 우주탄생에 대한 강의를 3년째 하고 있다. 같이 공부하며 강의한다. 우리 사회에 이런 모임 하나는 있어야 한다. 문화적 퀄리티를 높이기 위해서도 좋은 책을 선정하고 같이 공부하는 모임이 필요하다."

박 박사가 말하는 좋은 책은 꼭 모두가 아는 책이 아니다. 학습독서 관점에서 모르고 이해가 안가는 책, 전공서적, 대학교과서 등 어려운 책을 일부러 선정하고 공부한다. 이해를 돕기 위해 과학다큐프로그램이나 논문 등을 참고한다. 간간이 일반 서적도 본다.

"각각 장단점이 있는데 교과서는 장점만 있다고 보면 된다. 저자마다 다른 점이 있으므로 한가지 주제를 가지고 모든 교과서를 다 보는 것이 좋다. 가장 중요한 것은 반복 학습이다. 하나를 반복하고 공략하면 빙산을 등반하면서 쇠말뚝을 박는 것과 같다."

그는 이어 "수필이나 문학책만 보면 학습 관점에서 빙산 등반시 아무런 준비를 하지 않는 것과 같다. 결국 제자리 걸음만 하게 된다"고 덧붙였다. 박 박사의 독서는 단순히 독서로 끝나지 않는다. 책 속에 담긴 지식을 모듈화하고 '지식 나눔 실천'에도 적극적이다.

전국에서 이뤄지는 백북스 클럽 모임을 통해 자연과학분야 강연을 진행하고 있다. "컵이라는 한정된 공간에 물이 있다면 이를 누군가에게는 줄 수 있지만 엎어진 물은 누구에게 줄수도 없고 그냥 사라질 뿐이다. 책 속에 담긴 지식도 마찬가지다.

책을 읽다보면 지식 덩어리가 있다. 이를 지식 모듈화라고 할 수 있는데 모듈화 된 지식은 다시 사용할 수 있고 누구에게 나눠 줄 수도 있다." 박 박사는 지식이 모듈화 돼 있으면 다른 지식과 링크가 가능하고 지혜라는 건물을 세울 수 있다고 말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지식 모듈화를 하지 않는다. 학생들이 조금 할 뿐인데 학교를 떠나면 이마저도 안된다. 이는 훈련이 안됐기 때문이다. 지식을 잘 활용하고 나누려면 철저히 계획적으로 독서하고 자신의 것으로 모듈화해야 한다."
▲주방에 마련된 책장 위에는 그가 그동안 활동한 기록들이 가지런히 정리돼 있다.  ⓒ2011 HelloDD.com
▲자연과학분야 장서를 가장 많이 보유하고 독서활동에 기여한 점을 인정받아 출판문화협회로부터 '모범 장서가' 상패를 받았다.  ⓒ2011 HelloDD.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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