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대체 내 짝은 어디에-①]미혼 과학기술인 평균 연령 37세 육박

초등학교 다닐 때였습니다. 선생님이 교실에 들어와 다음 날 짝꿍을 바꾼다고 하셨습니다. 당시 한 달에 한 번씩 이뤄지던 짝꿍 바꾸기가 기대와 설레임으로 다가왔던 기억이 있습니다. '속으로만 좋아하던 그 아이와 함께 앉을 수 있을까'라는 생각에 밤잠을 설치기 일쑤였죠. 물론 싫어하는 아이와 짝꿍이 되면 한 달이 힘들겠지만요. 다 큰 어른이 된 지금은 어떨지 생각해봅니다. 이성을 만나는 즐거움과 설레임을 어쩌다 한번씩이라도 느끼고 계신지요? 특히 대한민국 과학기술인들은 어떨지 궁금합니다. 5월을 맞이해, 공부하느라, 연구 하느라 어느 누구보다 늦을 수밖에 없는 과학자들의 짝찾기, 거창하게 표현해서 '결혼에 대처하는 자세'를 대덕넷에서 짚어보려고 합니다. 대덕넷이 가정의 달 특별 기획으로 준비한 '도대체 내 짝은 어디에'에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오늘부터 3회 연속으로 보도될 예정입니다. [편집자주]

"소개팅만 어느덧 70번째다. 처음에는 '다 잘 될 거야'하고 어깨를 툭툭 쳐주던 사람들도 이제는 내 탓이라며 타박을 하기 시작한다. 벌써 내 나이 40이다. 과학자라는 꿈을 위해 달려왔던 시간이 아깝지는 않지만, 지금와서 생각해보니 참 여유없이 살았구나하는 생각이 든다. 연구원 타이틀을 어깨에 짊어진지 겨우 5년 남짓, 공부만 하느라 모아놓은 돈은 없고 패션 센스도 10년은 뒤쳐진듯한 내 모습이다.

연구원 생활에 만족한다지만, 내 짝 찾을 길은 아직도 요원해 보인다. 해가 갈수록 두려워만 간다. 연구원에 첫 발을 디뎠을 때 안팎으로 느꼈던 자신감은 어디로 사라져버렸는지 알 수 없을 지경이다. 안정적인 연구 환경? 그것보다 당장 내 삶의 안정이나 먼저 찾고 싶다."

대덕 연구단지 한 연구원. 실험설비 앞에 앉아있는 40세 미혼 남성 과학자의 푸념이다. 과학의 존재 이유는 뭘까. 인류 사회의 풍요와 행복을 위해서다. 과학을 필생의 학문으로 삼은 과학자들도 이같은 범주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그들이 과학 연구에 몰두하는 것 역시 거창한 대의명분에 앞서 스스로의 삶을 행복하게 꾸려가기 위함이다. 이들에게 과학이란 목적이면서 수단이다. 그러나 대한민국의 과학자는 '과학'이라는 짐을 짊어져야하는 이유로 포기해야 할 개인의 행복이 너무 크다.

대한민국의 과학자는 가정을 꾸미는 데조차 한국사회의 어느 집단보다 더 큰 어려움을 겪는 편이다. 그들에게 '결혼'은 '과학'과 '연구'에 치인채 늘 2차적 과제(?)로 밀려나 있다. 국가발전의 첨병역할을 담당하고 있는 이공계 인재에 대한 사회적 대우 개선에 못지않게 삶의 자리를 제대로 찾지못하고 있는 나이든 미혼 연구자들의 '계속되는 외롭고 고독함'에도 눈길을 기울여야 하는 이유다.

잠시 한국사회의 결혼 환경을 살펴보자. 통계청이 발표한 '2010 혼인·이혼 통계'에 따르면 한국인의 평균 초혼 연령은 남성이 31.8세, 여성은 28.9세로 기록돼 있다. 최근 수년간 계속 초혼 연령이 늦어지면서 2010년 통계 역시 1년 전에 비해 0.2세 상승한 수치다.

10년 전인 2000년 남성의 평균 초혼 연령이 29.3세, 여성 26.5세였음을 감안한다면 얼마나 늦어졌는지를 알 수 있다. 이런 환경 탓인지 한국사회는 독신 비율도 OECD 국가 중 가장 높은 편이다. 지난 해 15세 이상 인구 중 미혼 비율은 39%로 칠레와 함께 가장 높은 나라로 나타났다.

OECD 평균(26%)이나 일본(25%), 프랑스(29%)는 물론 2위인 스페인(30%)과도 큰 차이를 보인다. 만혼과 독신자가 크게 늘었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그렇다면 한국 과학기술계는 어떨까. 몇가지 수치만 봐도 매우 심각한 수준임을 짐작할 수 있다.

과학자들이 많이 몰려 있는 대전 대덕특구 내의 한국원자력연구원(원장 정연호)의 경우, 연구원 전체인원 1182명 중 미혼 남·녀가 122명인데, 이들의 평균 연령은 36세로 집계됐다. 미혼남성의 평균연령은 35.7세이며, 미혼여성의 평균연령은 37.1세다.

한국항공우주연구원은 전체 직원 수 694명 중 128명이 미혼이며, 미혼 평균 나이는 34.6세다. 한국생명공학연구원의 경우, 직원 333명 중 미혼자는 51명이며 평균연령은 37세로 나타났다. 한국에너지기술연구원 역시 미혼자 평균 연령은 37세다.

이같은 현실은 4개 연구원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한국과학계를 상징한다 해도 과언이 아닌 어느 출연연의 홍보 관계자는 "정확한 데이터를 뽑아낼 수는 없지만, 40대 미혼 과학자들이 아주 많은 것이 사실"이라며 "결혼이라는 문제가 워낙 예민하기 때문에 대놓고 물어보기도 힘든 상황"이라고 밝혔다.

◆ "공부하다보니 어느새 결혼 적령기 훌쩍 넘어 있었다"

과학자들은 반려자를 찾아야 하는 상황에서 스스로를 내세울 수 있는 나름 강력한 무기를 가지고 있다고 자신한다. '과학자'라는 타이틀이 바로 그것이다. 자신의 연구가 국부 창출의 원동력이 될 것이라는 자부심이 있기에 그 어려웠던 과학자로서의 과정으로 묵묵히 견뎌낼 수 있었다. 하지만 그 과정을 하나하나 따져보자.

남성의 경우 군대를 다녀오고 석·박사를 마치면 30대 초·중반에 출연연에 들어오는 경우가 많다. 사실 중반이 훌쩍 넘는 경우가 대다수다. 당연히 학위 취득 과정에서 주변을 둘러볼 여유는 없다. 공부하기도 바쁜 마당에 다른 곳에 신경쓸 겨를이 있을리 없는 것이다.

그렇게 어렵사리 학위를 받고 또다시 치열한 경쟁을 통해 출연연에 들어와도 힘든 건 마찬가지다. 안정될 때까지는 아무래도 연애나 결혼보다 연구에 몰두할 수 밖에 없다. 눈 딱감고 일찌감치 결혼해 버리지 않는한, 30세 중·후반은 예사라는 자조적 목소리가 들리는 것도 이 때문이다.

연구 활동에 있어서 어느정도 안정적인 환경을 구축했다고 해도 결혼까지 가는 과정은 순탄치 않다. 연구원 초년병 시절의 예상과 달리, 과학자라는 자부심이 결혼이라는 벽 앞에 허무하게 무너져내릴 때도 한 두 번이 아니다.

L 연구소 H 박사는 "출연연 과학자들이 일반인들에 비해서도 좋은 조건이 아니라는 것을 곧 깨닫게 된다. 외부에서는 정작 출연연 연구원들이 무엇을 하는지 잘 모른다. 선을 보게 되면 무슨 직업이냐며 딴지 거는 경우가 많다. 그렇다고 정년이 긴 것도 아니고, 월급이 다른 전문직에 비해 많은 것도 아니니 그래도 경제적 여건은 좋다고 말할 수 있는 처지가 아니다 "라고 털어놓았다.

◆ 커뮤니티 활성화 부족…"이성과의 자연스러운 만남 없다"

한 연구원에게 물었다. "당신의 일주일 생활 사이클은 어떻게 되십니까." 그는 시쿤둥하고 단조로운 목소리로 대답했다. "오전 8시 30분 쯤 출근해서 하루종일 연구를 하죠. 연구를 하다보면 시간이 그렇게 딱 맞아 떨어지질 않습니다. 빨리 끝날 때는 오후 6시30분 정도인데, 집에 가면 그저 취미 생활을 합니다. 음악을 듣거나 영화를 보지요. 약속이 있을 때도 늘 연구원 사람들과 어울리다 보니 이성을 만날 수 있는 여지가 별로 없습니다."

인터뷰에 응한 그들은 모두들 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하긴 제1차적인 책임은 제게 있겠죠." 이성과의 만남에 거듭 실패할수록 그들의 고개는 점점 숙여져 간다. 시간이 흐를수록 이젠 내 잘못이라고 치부해버리는 듯 하다. 물론 연구원으로서의 인생을 탓할 생각은 없다. 그들은 그저 다른 이성과 만날 수 있는 주변 환경이 아쉽다고 말한다. 연구원 내부에서도 등산이나 음악, 영화 모임 등의 커뮤니티가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긴 하지만, 그마저 늘 얼굴을 마주치는 사람들과의 회합이다보니 새로운 이성과의 만남을 기대할 수 없다는 고민이 이어진다.

K 연구원의 I 박사는 "물론 제가 적극적으로 찾아보고, 외부 커뮤니티 활동을 열심히 해야 한다는 것은 아는데, 만남에서 계속 실패를 맛볼수록 그런 자신감도 떨어지고 게을러지는 것 같다"며 "또한 직업이 직업이다보니 퇴근시간이 일정치 않은 것도 한 부분을 차지하는 것 같다. 그래서 대부분의 과학자들이 더욱더 실험실에서만 시간을 보내는 게 아닌가 생각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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