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헌의 과학기술 속에서 윤리 읽기]

지난해 3월 29일, 미국 법원의 판결에 전 세계가 주목했다. 뉴욕 남부지방법원의 로버트 스위트 판사(Robert W. Sweet)가 인간 유전자에 대한 미리어드 제네틱스(Myriad Genetics: MG)의 특허권을 무효화하는 판결을 내렸기 때문이다.

이 재판에서는 인간의 BRCA 유전자에 대한 특허권을 놓고 MG와 미국시민자유연맹(American Civil Liberties Union: ACLU)이 대립하고 있었다. BRCA유전자는 유방암과 난소암 등에 관련된 유전자로 가지고 있는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에 비해 유방암 발병률이 7배 이상 높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따라서 BRCA 유전자에 대한 테스트는 유방암 등의 조기 진단과 예방에 중요한 것이었다. 그동안 MG는 인간 유전자인 BRCA에 대한 특허권을 가지고 BRCA 진단키트에 대한 독점권을 행사하고 있었다. 2001년부터 MG는 특허권을 강화하는 조치로 유럽 등 전 세계를 향해 BRCA 유전자 테스트는 MG의 실험실 또는 라이센스를 취득한 실험실에서만 할 수 있다고 공포했고, 유럽 등 여러 국가와 연구자, 의사 등이 거세게 반발했다.

유럽에서는 BRCA 유전자에 대한 MG의 자국내 특허권을 크게 제한하거나 취소하는 조치까지 이어졌다. 미국에서는 2009년 ACLU가 앞장서 MG의 BRCA 유전자 특허 취소를 위한 소송을 제기했고, 그 결과가 지난 해 3월 스위트 판사의 판결이었다. 

◆유전자가 발명품인가?
 

▲로버트 스위트 판사. ⓒ2011 HelloDD.com
스위트 판사가 BRCA 유전자 특허를 취소한 이유는 그것이 특허의 대상이 될 수 없다는 것이었다. 특허권은 발명에 대해서만 적용되는 권한이다.

발견은 특허의 대상이 아니다. BRCA 유전자는 자연의 일부이며, 아무리 정제 과정을 거친다고 하더라고 이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MG의 BRCA 유전자는 자연 그대로의 인간 유전자와 다를 것이 없기 때문에 특허의 대상이 될 수 없다는 것이 스위트 판사의 판결 취지였다.

인간 유전자에 대해 특허가 승인된 것은 1906년이 처음이었다. 당시 런드 핸드(Learned Hand) 판사는 정제된 자연 물질에 대해 특허를 허가했다.

정제된 물질은 자연 상태 그대로의 물질보다 유용성이 상당히 크다는 것이 이유였다. 1980년 3월에 대법원 판결이 내려진 다이아몬드(Diamond) 대 차크라바티(Chakrabarty) 사건은 살아 있는 것에 대한 특허 문제가 쟁점이었다.

유전자 변형 박테리아를 만들어낸 아난다 모한 차크라바티(Ananda Mohan Chakrabarty)의 특허 주장에 반대해 미국 특허국이 소송을 낸 사건이었다. 당시까지는 살아 있는 것, 유기체에 대한 특허는 상식적이지 않았다.

이 사건에 대한 대법원 판결을 통해 유기체에 대해서도 특허가 허용되는 길이 열렸다. 이 판결은 유기물이라고 하더라도 '인간이 만든(man-made)' 것이라고 진정 말할 수 있다면 특허를 허용할 수 있음을 분명히 했다. 하지만 논란은 남아 있었다. 대법원 판결 자체가 5대 4의 근소한 차이로 결정된 것이었다는 사실로도 짐작할 수 있다. 반대 의견을 낸 대법관들은 유기체에 대한 특허 인정이 온당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2000종 인간 유전자에 4만 건의 특허 승인

2010년 현재 인간 유전자에 대한 특허에 대한 승인 건수는 4만 건에 이른다. 이 특허들은 인간 유전자 전체의 약 10분의 1에 해당하는 2천 종의 유전자에 관련되어 있다. 특허가 허용된 사례들을 보면 다음 세 가지로 분류된다.

분류된 유전자 이거나, 분리된 유전자를 활용하는 방법에 관한 것이거나, 유전자와 질병 사이의 연관성을 바탕으로 질병을 진단하는 방법에 관한 것이다. 인간 유전자에 대한 특허가 허용된 이유는 유전자는 자연 속에서 발견되는 것이긴 해도 특허가 신청된 것들은 발명의 맥락이 존재한다는 데 있다.

한 유전자를 나머지 DNA로부터 분리하거나 mRNA 개체군에서 사본을 만들기 위해 요구되는 단계는 발명된 것이다. 유전자 염기서열 분석 또한 국제적으로 합의된 합법적 재산이다. 이런 주장에 대해 특허는 유전자에 대해 승인되는데, 발견된 것은 유전자가 아니라 유전자 분리 공정 혹은 유전자 사본을 만들어내는 공정이 아닌가 하는 의문이 제기되기도 한다.

또한 유전자 염기서열 분석이 발명이라면 특허의 대상은 자연적인 유전자가 아니라 시험관에서 만들어진 사본일 터인데, 유전자 사본에 대한 특허라는 말이 무슨 뜻인지 의심스럽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다.

유전자 특허와 유전자 사본 특허가 무슨 차이가 있는지 알기 어렵기 때문이다. 특허권은 지적재산권의 연장선상에 있다. 지적재산권의 이론적 근거는 불모지 논증과 공리주의 논증을 통해 제공된다. 일반적으로 공리주의적 접근법이 받아들여지고 있다.

공리주의는 사회적으로 가치 있는 결과를 극대화할 수 있는 한에서 지적재산권은 정당화될 수 있다고 본다. 사회적으로 가치 있는 것에 대해서는 정의, 공중의 건강, 인간 행복, 경제 번영 등 다양한 견해가 있을 수 있지만, 과학과 기술의 발전이 이런 가치 있는 것을 증진시키는 데 기여할 것이라는 믿음이 일반적이다.

이런 맥락에서 유전자 특허권은 과학과 기술의 진보에 기여하는 한에 있어서 유전자에 대해서도 보호하는 것이 정당화된다고 여겨진다. 지적재산권이나 특허권은 일종의 거래이다. 지식의 개방성이 학문과 기술의 진보를 가져올 것이라고 추측할 수 있다.

반대로 지식의 은폐는 학문과 기술의 발전에 장애요인이 될 것이다. 지적재산권이나 특허권은 지식이나 기술의 소유자에 대해 경제적 이득을 보호해줌으로써 지식과 기술이 공개를 유도하는 제도이다. 공리주의적 관점에서 보면, 인간 유전자에 대한 특허권은 과학과 기술의 발전에 기여하고, 그리하여 인간의 행복 등 사회적 가치의 증진에 이바지할 것이며, 그런 한에서 정당화될 수 있을 것이다.

◆왜 인간 유전자 특허에 반대하는가?

유전자 특허, 특히 인간 유전자 특허에 대해서는 반대 목소리가 높다. 반대 견해들은 현실적인 이유와 철학적인 이유로 구분해 살펴볼 수 있다. 현실적인 이유로는 특허가 과학과 기술의 발전을 촉진시킴으로써 사회적 가치 증진에 기여한다는 주장에도 제기되고 있지만 BRCA의 경우처럼 인간 유전자에 대한 특허권이 의료비를 증가시킨다.

의료비 증가는 사회적 자원의 공정한 분배를 어렵게 할 뿐만 아니라 개인 차원에서도 행복한 상황이라고 보기 어렵다. 유전자 특허가 과학의 진보를 방해한다는 견해도 있다. 과학 연구를 위해서는 실험실에서 유전자를 자유롭게 다룰 수 있어야 하지만 유전자 특허로 인해 특정 유전자의 사용이 제한된다면 과학의 진보라는 특허권의 공리주의적 목표가 달성될 수 없을 것이다.

오늘날 유전자 특허는 부유한 상업적 집단의 이익만 보호해줄 뿐이고 가난한 사람, 후진국에게는 불리한 결과를 가져온다는 의견도 있다. 유전자 특허로 인해 경제적 이득을 얻는 것은 연구자라기보다는 풍부한 자본력을 지니고 있는 제약회사나 유전공학 기업들이고, 유전자 특허가 늘어날수록 가난한 사람, 후진국에는 부담이 가중 될 수 있기때문이다.

인간 유전자 특허에 반대하는 철학적 주장들도 다양하다. 인간을 이성적, 자율적, 도덕적 주체로 이해하는 칸트주의적 관점에서 선 사람은 인간 유전자에 대한 특허권이 인간을 소유물로 취급하는 것이어서 도덕적으로 옳지 않다고 주장할 지 모른다.

유전공학적으로 조작된 인간을 상상한다면 이런 견해는 타당할 것이다. 인간의 신체와 인격이 불가분적으로 연관되어 있다는 관점에서는 인간 유전자 특허가 인간성에 대한 우리의 이해를 위협한다고 주장할 것이다. 만일 나의 몸이 소유물로 간주될 수 있다면 나 또한 소유물로 여겨질 수 있을 것이다.

인간은 많은 유전자를 서로 공유하고 있으므로 인간 유전자는 인류 공통의 자산으로 생각되어야 한다는 입장도 있다. 공기에 대해 소유권을 주장할 수 없듯이 인간 유전자에 대해서도 소유권을 주장할 수 없다는 견해를 피력한다.

이 입장에서 보면, 인류 공통의 자신인 인간 유전자를 한 개인이나 기업에 귀속시키는 것은 정당하지 않다. 유전자 특허의 공리주의적 목표는 분명하고, 그것에 대해 사회적 합의를 도출해 낼 수도 있어 보인다. 하지만 유전자 특허, 특히 인간유전자 특허로 인해 발생하는 문제들이 다양하고, 작지 않다. 유전자 특허에 대해 사회적 논의와 합의가 좀더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 더 읽어볼 만한 자료 David B. Resnik, 'The Morality of Human Gene Patents', Kennedy Institute of Ethics Journal 7.1, 1997, pp.43-61 Gert Matthijs, 'The European opposition against the BRCA gene patents', Familial Cancer 5 (2006) pp.95–.102 Robert Cook-Deegan, 'Gene Patents' in From Birth to Death and Bench to Clinic, ed. Mary Crowley (Garrison, NY: The Hastings Center), 2008, pp.69-72.

▲이상헌 교수 ⓒ2011 HelloDD.com
이상헌 교수는 서양철학을 전공했으며 현재 가톨릭대학교 교양교육원 강의전담교수로 재임 중입니다. 연구분야는 신생과학기술에 대한 윤리적 논의, 비판적 사고와 글쓰기입니다. 주요 저서로는 '기술의 대융합(공저)' '대학생을 위한 과학글쓰기(공저)' 등이 있습니다. 이 교수는 '이상헌의 과학기술 속에서 윤리읽기'를 타이틀로 신생과학기술들을 윤리적 관점에서 되새겨 보며 인간의 행복 증진을 위해 최선의 길을 찾아갈 수 있는 방향을 제시해 줄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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