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째 아들 류광희 씨 KAIST 분향소 찾아 아버지 뜻 전해
진정한 과학강국 위한 과학도들의 연구정신 강조

"아버님은 KAIST에 영혼을 바치신 분입니다. 그 분의 모든 것을 KAIST에...KAIST에서 노벨상 수상자가 곧 나올거라는 아버님의 염원이 꼭 이뤄지길 바라겠습니다."

故 류근철 KAIST 초빙특훈교수의 둘째 아들 류광희 씨가 9일 KAIST 류근철 스포츠 콤플렉스에 마련된 분향소를 찾아 고인의 뜻을 전했다. 류 씨는 부친의 유지를 전하는 내내 눈시울을 붉혔으며 이따금 말을 잇지 못하기도 했다.

류 씨는 "아버님은 한국의 인재가 다 모인 학교가 KAIST이고, 많은 전문가들이 조만간 KAIST에서 노벨상 나올거라 예측하고 있어 늘 노벨상 수상을 기대하고 있었다"며 "KAIST에서 노벨과학상이 나오는 날, 운명을 달리하신 아버님이 KAIST에 영혼을 바친 그 모든 꿈이 이뤄지리라 생각된다"고 말했다.

특히 류 씨는 고 류 박사의 뜻을 되새기며 KAIST 공학도들에게 연구 정신을 강조했다. "공학도로서, 과학도로서의 정신을 마음 속에 새겨주셔서 대한민국을 부강하게 하고 진정한 선진 과학국가의 토대가 될 수 있도록 만들어 주십시오. 바로 그것이 행복한 미소를 지으며 떠나신 아버님의 뜻입니다."

아울러 류 씨는 "뇌경색으로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고통 속에서 돌아가셨지만 보기 힘든 행복한 미소를 짓고 가셨다. 좋은 나라로 가시지 않았나 생각한다"며 고인의 마지막 상황을 KAIST 임직원들에게 설명하기도 했다.

◆"집안의 큰 어른을 잃은 느낌"…슬픔에 빠진 KAIST
 

▲류근철 박사의 별세 소식에 많은 이들이 분향소를 찾았다. ⓒ2011 HelloDD.com

류근철 박사의 별세 소식을 접한 KAIST 구성원들은 "아버지 같은 분을 잃었다"며 큰 슬픔에 빠졌다. KAIST는 9일 오전 10시경 교내 '류근철 스포츠 콤플렉스'에 분향소를 설치하고 조문객을 맞이했다.

류근철 스포츠 콤플렉스는 류 박사의 기부금 가운데 100억원이 투입돼 지어진 건물이다. 조문객들은 평생 모은 재산을 KAIST에 기부하고 학생과 교수들의 건강을 돌보며 남은 여생을 보냈던 류 박사를 추억하며 슬픔 속에 분향소를 지켰다.

이광형 KAIST 교수는 "고인은 KAIST와 아무 인연이 없었지만 누구보다 KAIST를 사랑했다"면서 "KAIST에게는 아버지같은 존재를 잃어 허탈함과 슬픔에 빠져있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분향소에는 교수와 직원, 학생들의 발걸음이 끊이지 않았으며 교내 인터넷 게시판에도 고인의 명복을 기원하는 추모 글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또 고인의 빈소가 마련된 서울 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에는 전날 서남표 총장을 비롯한 보직 교수들이 조문했으며, 김우식 전 과학기술부총리 등 과학기술계 주요 인사들이 조문하며 고인의 명복을 빌었다.
 

▲KAIST에 여전히 주차된 류근철 박사의 자가용. 평소 류 박사는 '내 자가용도 KAIST에 기부할 것'이라고 하는 등 학교에 모든 애정을 쏟았다. ⓒ2011 HelloDD.com
◆ 이광형 KAIST 전 교무처장의 조문 사랑의 류근철 교수님을 떠나 보내면서 "류근철 교수님은 우리 교수진에게는 아버님 같은 분이었고 학생들에게는 자상한 할아버지였습니다. 집안의 큰 어른이셨습니다."(교수) "저의 아버님은 혼을 다하여 KAIST를 사랑하셨습니다. 가족보다 더 KAIST를 사랑하셨습니다. 마지막 남은 모든 것을 다하여 이 땅에 과학기술이 꽃피우기를 염원하셨습니다."(유족) 류 교수님, 이 어찌 황망한 일입니까? 지난 연초 까지만 하여도 KAIST 캠퍼스에서 가장 젊은 교수라고 자부하시지 않으셨습니까? 언제나 웃는 얼굴로 '사랑 바이러스'를 전파하시던 교수님이 갑자기 떠나셨다는 소식은 믿을 수 없는 청천벽력같은 비보입니다. 지난 겨울에 입원하셨다는 말을 들었을 때는 곧 나오실 것으로 생각하였습니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가장 젊은 교수로서 손색이 없는 걸음걸이였기 때문입니다. 교수님에게는 많은 칭호가 있습니다. 대한민국 한의학박사 1호, 모스코바공대 의공학박사 1호, 기부왕, KAIST 명예공학박사 등이 있습니다. 그보다도 교수님은 대한민국에서 가장 뛰어난 교육자이셨습니다. "나는 처음에는 열심히 일하고 재산을 모았어요. 그런데 재산이 100억 가까이 되자 문득 생각이 달라지더군요. 이제 나의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어요. 그때부터 어떻게 써야 값지게 쓸 수 있을까 고민하며 살았습니다. 그런데 KAIST에 재산을 기부하여 숙제를 다 하니 홀가분했습니다. 어제 밤에 정주영 회장님과 이병철 회장님이 전화하셨어요. '여기 와 보니 하나도 쓸모 없더라'고 하면서 나보고 잘했다고 하시더군요." 이보다도 더 확실한 교육이 더 어디 있겠습니까. 그리고 이 보다도 더 확실한 사회통합의 실천이 어디 있겠습니까. 교수님은 우리 캠퍼스에서 가장 많은 사랑을 배푼 Lover 였습니다. 항상 어린이 같은 해맑은 웃음으로 '사랑 바이러스'를 전파하시었습니다. KAIST와 인연을 맺은 약 3년간 류 교수님은 하루도 빠지지 않고 학생들과 교수들을 치료하고 상담하여 주셨습니다. 신체적인 치료에서 그치지 않고 "사랑의 융단폭격"으로 정신의 아픔도 고쳐주셨습니다. 신체가 불편한 학생을 찾아내 진료를 시작하여 용기를 갖게 하고, 유학까지 갈 수 있게 해주신 사례가 한 예입니다. 교수님은 캠퍼스 내에서 가장 열심히 탐구하는 교수였습니다. "저희 아버님은 일생동안 끊임없이 새로운 장비를 고안해 내어 만드셨습니다. 한의사가 아니었습니다. 완전히 발명왕 공학자였습니다. 당신이 발명한 헬스 부스터 장비를 끊임없이 개량하여 왔습니다." 교수님께서는 마지막까지 부작용 없는 고성능 항생제를 개발하겠다는 열정을 불사르고 계셨습니다. "나는 부작용 없는 항생제를 완성하지 못하면 저 세상에 갈 수 없어요. 신약을 개발하여 엄청 수익을 올려, 교수 학생들에게 연구비를 듬˜X 줄 수 있게 해놓고 갈 겁니다." 류근철 교수님, 교수님께서 떠나신 KAIST 캠퍼스는 황량한 시멘트 건물로 변해버린 느낌입니다. 여전히 일 만 여명의 학생 교수진이 움직이고 있지만 허전함이 곳곳에 검은 연기처럼 스며있습니다. 집안 어른의 빈자리가 이렇게 큰 줄은 몰랐습니다. 머리가 아프면 언제든지 찾아가 엄살을 피울 곳이 있었습니다. 운동하다 다치면 언제든지 찾아가 아픔을 호소할 곳이 있었습니다. 걱정거리가 있으면 찾아가 상의드릴 수 있었습니다. 동료와 서먹해지면 어떻게 풀지 상의할 곳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이 모든 것들이 사라진 이 캠퍼스는 시멘트 구조물일 뿐입니다. 교수님, 그토록 사랑하던 KAIST 캠퍼스, KAIST 학생, KAIST 교수를 뒤로 하고 어떻게 떠나시렵니까? 이제 그 빈자리를 저희들이 채우도록 하겠습니다. 교수님으로부터 받은 사랑을 더욱 크게 키워서 후배들에게 전해주겠습니다. 교수님께서 그렇게 염원하시던 과학기술 선진화와 노벨상 수상도 저희들이 해내겠습니다. 부디 가시는 걸음 편히 하시고 편안히 잠 드십시오. 삼가 교수님의 명복을 가슴속 깊은 마음으로 간절히 간절히 빕니다. 2011년 3월 10일 류근철스포츠컴플렉스 아래 유석공원에서 류 교수님을 사랑하는 교수 이광형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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