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을 전후해 '이공계 위기'라는 화두가 우리 사회를 강타하면서 이에 대한 다양한 대책이 강구됐다. 대학입시에서 교차지원의 허용, 이공계 장학생 제도의 대폭 확충, 수요지향적 이공계 교육의 강화, 과학기술자의 공직 진출 촉진 등이 그것이다.

이공계 위기는 한동안 잠잠한 듯하다가 최근에 서울 공대 대학원 지원자가 매우 적다는 충격적인 보도가 있으면서 다시 수면위로 부상하고 있다. 학생들이 계속해서 이공계보다는 의대를 선호하고 이공계에 진학한 이후에도 직업을 바꾸려고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좀 더 거시적인 맥락에서 살펴보면, 이공계 기피 현상은 해당 국가의 발전 단계와 밀접히 연결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산업화 초기에는 사회적 유동성이 매우 높지만, 산업화가 어느 정도 진행되고 나면 경제적 안정성이 중요시된다.

의대와 법대로 학생들이 몰리는 보수주의적 선택이 득세하는 것이다. 성숙한 선진국의 경우에는 직업간 차이보다 직업내 차이가 많다. 망하는 의사와 변호사도 생기는 등 동일 직업 내부의 경쟁이 심해지게 된다.

우리나라도 머지않아 직업내 경쟁이 심해지는 사회로 진행 될 전망이다. 의사와 과학기술자 중에서 어떤 직업을 가질 것인가 하는 문제는 덜 중요시되고, 어떤 의사가 될 것인지, 어떤 과학기술자가 될 것인지가 중요하게 된다.

결국 자신의 소질과 적성에 보다 많은 신경을 쓰면서 자신에게 적합한 직업을 선택해 꾸준히 노력하는 것이 요구되는 세상이 다가오는 셈이다. 따라서 필자는 이공계에 관심이 있거나 종사하는 사람들이 어떤 과학기술자가 될 것인가 하는 문제에 더욱 많은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와 관련해 미국의 국립과학재단(NSF, National Science Foundation)에서 자문위원으로 활동했던 스톡스(Donald E. Stokes)는 과학기술자의 유형을 ▲보어 형 ▲파스퇴르 형 ▲에디슨 형으로 구분한 바 있다. 보어 형은 아직까지 확실히 밝혀지지 않은 현상을 규명해 새로운 지식을 세상을 알려주는 것이 연구의 원동력이다.

연구 결과물이 지금 당장 실생활에는 유용하지 않을지라도 아마도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는 요긴하게 쓰일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한다. 자신의 연구 결과가 사람들이 세상의 여러 현상을 이해하는 일에 도움을 주는 것을 기본 목적으로 한다.

파스퇴르 형은 자신의 연구가 세상을 이해하는 일에 도움을 줄 수 있는 새로운 지식을 생산하는 것과 더불어 그리 멀지 않은 장래에 실생활에 적용될 수 있는 지식도 생산할 수 있는 것을 목표로 한다. 따라서 연구의 결과물이 실생활에서 발생하는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느냐 하는 점이 연구 주제 결정의 중요한 고려 요소다.

자신의 연구는 지적 욕구, 그리고 실제적 이용에 대한 욕구에 의해 추동된다. 에디슨 형의 주된 연구 목적은 실생활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다. 세상을 이해하는 일에도 도움을 줄 수 있으면 좋겠지만 그것이 연구의 주된 목적은 아니다.

실제 현장에서 발생하는 어려움과 문제를 극복하는 것에 대해 답을 주는 것이 자신의 연구를 끌고 가는 원동력이다. 아무튼 과학기술자에게는 다양한 유형이 존재할 수 있으며, 이에 대한 논의는 우리가 어떤 과학기술자가 될 것인가를 생각하는 데 상당한 도움을 줄 수 있다.

과학기술자의 다양한 유형을 생각하다 보면 이공계 위기와 같은 부정적인 화두를 넘어 보다 긍정적인 차원에서 이공계를 선택하고 멋진 과학기술자로 살아가려는 시도가 많아질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이공계 학생들에 대한 교육이나 과학기술자에 대한 지원정책에서 과학기술자의 유형을 보다 적극적으로 고려하는 것이 필요하다.

▲송성수 교수  ⓒ2011 HelloDD.com
송성수 교수는 서울대학교에서 과학사와 과학철학 협동과정에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한국산업기술평가원(ITEP) 연구원과 과학기술정책연구원(STEPI) 부연구위원을 지냈습니다. 또 2006년부터 부산대 기초교육원 교수로 재임 중입니다. 주요 연구실적은 '한국 과학기술정책의 특성에 관한 시론적 고찰' '대중과 과학기술' 등 다수이며, 저서로는 <과학기술의 개척자들>, <과학기술과 문화가 만날 때>, <사람의 역사, 기술의 역사> 등 저술 활동도 활발합니다. 이외에도 '과학기술기본계획' '과학기술문화창달 5개년 계획' 등 정책연구에도 참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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