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민석 기계연 박사, 사우디 연구중심대학 스카웃
"제3세계行, 한국 빛내는 일"…"큰 물에서 놀고 오겠다"

"'왜 중동 지역으로 가는가'에 대해 많은 분들이 물어보시는데요.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다는 게 가장 큰 이유입니다. 그리고 가슴이 뛰는 일을 하고 싶다는 것도 이유겠죠. 물론 한국에서도 할 수 있겠죠. 그러나 한국에는 훌륭한 과학자들이 많이 계십니다. 이 자리에서 그들 중 한 사람이 되는 것 보다는 제3 세계에 나가서 기여하는 것도 뜻깊은 일이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두뇌 유출이라고 보지 말아주세요. 저는 이 일이 한국을 빛내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과학자로서 한국을 널리 알리고 싶다는 차민석 전 한국기계연구원 기술사업화실장. 그는 얼마 전 사우디아라비아에 세워진 연구중심대학 리서치센터에 책임연구원급으로 스카웃됐다. 이미 1년 전부터 차 박사를 사우디로 데려가기 위한 물밑작업이 있었다.

"이 학교가 지향하는 것은 하나입니다. 외부의 석학들을 좋은 조건으로 불러들일 수 있는 이유는 바로 자신의 나라에 지식이 남기 때문이죠. 리서치센터 디렉터를 뽑는데 제가 박사 학위를 받았던 대학 지도 교수님이 뽑히셨어요. 지도 교수님이 불러서 간 것도 사실이지만, 공식적으로는 센터 디렉터가 절 스카웃 한 것처럼 됐죠. 결정은 10월에 했습니다. 그리고 나서 연구원을 그만뒀죠. 이상천 원장님도 굉장히 축하해주셨습니다. 정말 감사했습니다."

사실 차 박사는 연구원에서 촉망받던 젊은 과학인재였다. 그랬던 그였기에 연구원에서는 아쉬움이 많았다. 그러나 웃는 얼굴로 축복해줬다. 넓은 곳에서 좋은 뜻을 펼칠 수 있는 기회를 잡았기 때문이다.

차 박사는 "물론 10년 동안 다녔던 연구원을 그만두는 데 아쉬움도 많다. 그러나 몇 백명의 제자 가운데 교수님의 선택을 받아 사우디에 가는 만큼, 설레임도 가득하다"며 "지금까지 다 닦인 신작로가 아니라 산길이라도 길을 선택해서 낼 수 있는 길을 선택해 왔다. 또 다시 닥쳐 온 선택의 기로에서 모험을 택한 건 나를 시험할 수 있는 일이라는 확신이 들었기 때문이다"고 설명했다.

차 박사가 기계연에서 가장 보람을 느꼈던 순간은 언제였을까. 그는 간단히 '보직을 했던 시간'이었다고 말했다. 차 박사는 "개인적인 보람을 느꼈던 시간이었다. 알게 모르게 연구원과 행정원의 교류가 없다. 예민한 부분에 대해서는 대립각을 세울 때도 있다. 물론 나 역시 그런 일반 연구원들 중 한 명이었을 것이다"며 "그러나 보직을 하면서 행정일을 하시는 분들을 많이 이해할 수 있게 됐다. 서로 이해해야 한다. 그래야 연구원이 발전해 나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 개인적인 연구를 제외하고는 보직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말했다.

◆ "축구선수는 외국에 나가서 국가를 빛내는데, 과학자들은?"

"두뇌 유출이 아닙니다. 축구 선수에 빗대어 말씀 드리고 싶어요. 과학자들은 자기 머리 속에 있는 것들을 논문을 써서 다 알려줘야 하는 직업입니다. 연구 윤리만 봐도 그래요. 고도의 과학기술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혹세무민해서도 안되고, 특수한 지식을 가지고 나쁘게 활용해서도 안되죠. 그렇기 때문에 어디에서든 상관이 없다고 생각해요. 지구 안에만 있으면 어디서든 논문을 써서 공개하면 되는 일이죠. 축구 선수와 비슷해요. 그 자리에서, 자기 일을 뚝심있게 해낸다면 자신으로 인해 국가가 빛나는 법이죠."

스스로 한국 토종 박사라고 자부하는 차 박사. 어렸을 적 그는 메이드 인 USA가 싫어서 유학도 가지 않았던 인물이다. 한국 사람이 왜 SCI 논문을 써서 졸업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의문이 풀리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지금 차 박사가 생각하기에 그 당시의 그는 깜찍한 생각을 자주했던 열혈 청년이었다. 그래서 한국에 남았다. 그러나 승부사 기질을 피할 수는 없었다.

차 박사는 "도대체 외국 아이들이 얼마나 잘하길래 비교를 하나 궁금했었다. 그래서 부딪혀 보자고 생각했다"며 "30대 초반 좋은 기회로 남가주대학에 나갈 기회가 있었다. 그 곳에서 아무도 풀지 못한 이론을 실험으로 증명해냈다"고 회고했다.

그가 그들과 한 번 부딪혀보고 싶었던 이유는 과학기술자였기 때문이었다. 차 박사는 "국제적으로 경쟁력 있는 집단은 스포츠, 연예, 과학기술 등이다. 6년 동안 풀리지 않았던 이론을 단 6개월 만에 풀어버리니까 그 사람들이 보는 눈이 달라지더라"며 "남아서 같이 일하자는 그의 제안을 거절했다. 난 한국 사람이었기 때문에 한국에서 살고 싶다고 말했다"고 당시 상황을 회상했다.

그는 한국 사람이었다. 한국이라는 이름을 드높이 올리고 싶다는 생각도 늘 가슴에 품고 있었다. "축구 선수들은 외국에 나가서 이름을 널리 떨치지 않습니까. 과학기술자들도 하지 말란 법은 없지요. 그게 과학기술 선진국이 아닌 신생국가에서 일어난다면 더 대단하지 않을까요? 제가 후배들이 올 수 있는 길을 미리 마련한다는 것에서도 의미가 있을 것 같습니다."

언제 들어올지는 모르겠지만 한국에는 반드시 들어와 어떤식으로든 도움이 될 수 있도록 하겠다는 차 박사의 눈빛은 막연한 기대감이 아닌 확신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는 "아이들이 한국의 뿌리를 잊지않도록 책을 몇 백권 가지고 간다. 다 한글로 된 책이다. 한국 사람이면 한글을 앓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역사를 알아야 한다. 방학에는 꼭 한국에 들여보내 역사를 공부하고 체험할 수 있도록 할 것"이라고 말했다.

◆ 사우디 카오스트, 목표는 전 세계 TOP 10…"중동 지식허브 기대"

"사우디 아라비아 제2의 도시가 제다입니다. 여기에 유니버시티 타운을 새롭게 만들었어요. 아예 도시를 만든거죠. 사우디 사람들은 들어오지 못합니다. 치외법권이 적용되는 곳이기도 하죠. 술만 안되고, 나머지는 원래 살던 스타일 그대로 살아도 상관없습니다."

중동이라고 하면 '힘들지 않을까'라는 걱정을 먼저 한다는 게 그의 설명. 차 박사는 "사우디 국왕이 대학에 출연했다는 예산만으로도 이미 전 세계 5위에 들었다. 학교 만들고, 장비 등등 이런 것들은 사우디 아라비아 국영에서 매칭되는 식이다.

출연금은 그대로 기부금으로 쌓이게 되는 것"이라며 "교수들이나 연구원, 학생들 수준만 훌륭하다면 단기간 내에 아시아 TOP 5는 순식간에 이룰 수 있을 것이라 본다"고 예측했다.

자세한 사실은 밝힐 수 없지만 연봉도 차이가 난다 . 차 박사는 "우리나라에서 과학기술인들이 받는 것 보다는 많은 것 같다. 처음에 스카웃 할 때도 '전 세계에서 가장 경쟁력있는 페이를 주겠다'고 이야기를 했었다. 필요한 장비 구축 지원금과 하고 싶은 연구를 할 수 있는 예산도 충분히 지원해준다. 처음이기에 가능한 시도인 것 같다"고 설명했다.

사우디아라비아와 우리나라의 국민 소득은 비슷하다. 그런데도 이러한 엄청난 일이 한꺼번에 진행될 수 있는 이유는 돈의 흐름이 한 쪽에 몰려 있기 때문. 민주주의와는 또 다른 모습의 사회에서 사우디의 연구중심대학은 공격적인 투자를 받고 있는 셈이다.

차 박사는 "중동의 지식 허브가 될 것이라는 게 내 생각이다. 사우디 왕이 굉장히 현명하다. 몇 년 지난 다음에는 어떻게 될지 모르지만 일단 기부금이 10조원 이상 묶어져 있기 때문에 이자만 가지고도 충분히 연구를 지속할 수 있을 것"이라며 "많은 국영 회사들이 석유 회사를 포함해 펀드를 내고, 최신 연구시설들이 많은석학들을 불러 모으고 있다. 굉장히 유연한 시스템 역시 이 대학의 장점 중 하나다"고 전했다.

그는 "미국이었으면 안 갔을 것이다. 이 곳에서 나는 '온리 원'이라는 생각으로 자부심을 느끼며 일을 할 생각이다. 현재의 목표는 세계 TOP 10이다"며 "사우디 국왕이 전 세계에서 가장 좋은 대학을 만드는 이유는 표면적으로 석유로 번 돈을 국제 사회에 환원하겠다는 의미에 있다. 나 역시 우리나라를 드높이고 연구를 통해 국제 사회에 환원할 수 있도록 내 자리에서 노력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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