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리포 나무들]글 : 고규홍 나무 전문 칼럼리스트

우리 나무 가운데에는 이름 하나만으로 솔깃하게 하는 나무가 적지 않습니다. 그런 나무들의 이름이 어떤 연유로 지어졌는지를 살펴보는 건 꽤 재미있는 일입니다. 식물 공부에서 빼놓을 수 없는 즐거움이기도 할 겁니다.

물론 생김새만 가지고 붙인 이름도 있지만, 식물의 중요한 특징이나, 쓰임새를 놓고 붙인 이름이기 십상입니다. 그래서 야릇한 느낌을 가진 식물 이름의 유래를 들춰보는 일은 흥미로운 일에 속합니다.

만병초(萬病草) 라는 이름의 나무도 그런 흥미로운 이름을 가진 나무에 속합니다. 이 나무의 학명은 Rhododendron brachycarpum 이니 철쭉(Rhododendron schlippenbachii)이나 진달래(Rhododendron mucronulatu)와 같은 종류에 속하는 나무임은 금세 알아챌 수 있습니다. 사진에서 보시듯이 만병초는 진달래 철쭉과 비슷한 생김새의 꽃을 피우는 진달래과의 나무입니다.

 

▲하얀 색 꽃을 피우는 만병초 종류의 나무로, Rhododendron fortunei 'Lu Shan' 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다. ⓒ2010 HelloDD.com

꽃 모양만 보고도 만병초라는 이름이 '만병의 근원이 되는 식물'이라는 식의 부정적 의미는 분명히 아니라는 건 알 수 있습니다. 화려하게 피어나는 이 꽃을 보고 그런 부정적 생각을 하기는 쉽지 않을 테니까 하는 이야기입니다. 만병초의 꽃이 진달래, 철쭉을 닮았다고 했지만, 그들과는 비교하기 어려울 만큼의 화려한 꽃을 피웁니다. 품종도 색깔도 다양하지만 모두가 꽃이 화려하다는 것만큼은 공통적입니다.

꽃 한 송이는 앞에 이야기했듯이 진달래과에 속하는 다른 나무의 꽃과 닮았지만, 만병초의 꽃은 가지 끝에서 적게는 열 송이, 많게는 스무 송이 정도가 모여 피어나기 때문에 무척 화려합니다. 화려하기로 치면 같은 계열의 나무 가운데에 으뜸일 겁니다. 우리의 옛 어른들이 이토록 아름다운 꽃을 놓고, 건강을 해치는 만병을 떠올리지는 않았을 겁니다.
 

▲은은한 핑크색 꽃잎이 수줍은 신부의 드레스 같다. ⓒ2010 HelloDD.com

만병초라는 이름은 이 식물이 만병을 다스리는 놀라운 효험을 가졌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입니다. 만병초는 우리 한방에서 오랫동안 매우 귀중한 나무로 여겨왔습니다. 쓰임새가 무척 다양한 식물이지요. 가장 널리 알려진 효능은 심장을 강하게 하고, 혈행을 도와 고혈압을 치료하는 효과입니다. 그러나 그 뿐이 아니지요. 그 정도로 '만병(萬病)'을 운운할 건 아니겠지요. 신장병을 비롯해, 관절염, 신경통, 귓병, 복통 등 일상에서 흔히 겪을 수 있는 질환에 골고루 적용해온 약재였습니다.

또 통증을 멎게 하는 효능이 있어서 통풍을 치료하거나 소염 진통 해열제로도 요긴하게 쓰였지요. 주로 잎을 많이 썼는데, 이 잎을 끓여낸 물로 가축의 피부에 기생하는 벌레나 농작물 주위에 생기는 해충을 퇴치하는 데에도 주효했다고 합니다. 심지어 만병초의 잎사귀를 달여 먹으면 여자의 정욕을 크게 향상시킨다고 해서, 여성불감증 치료제로도 쓰였답니다.
 

▲대부분 높은 산에서 자라는 만병초는 센 바람을 맞으며 자란 탓인지 크게 자라지 못한다. ⓒ2010 HelloDD.com

실제로 만병초의 잎에서는 안드로메도톡신이라는 유독 성분이 다량 검출되는데, 이 성분을 각각의 질환에 알맞춤한 양으로 적용할 때, 효험이 있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 안드로메도톡신은 잘못 쓰면 구토와 빈혈 설사 등의 부작용이 있을 수 있다고 하니, 함부로 사용하면 안 되겠지요. 모든 약이 그렇겠지만, 만병초 역시 '잘 쓰면 약, 잘못 쓰면 독'인 겁니다.

어느 신문 칼럼에서 저는 "만병초가 그렇게 몸에 든 병을 쫓아내는 건 물론이고, 그의 아름다운 꽃으로 어쩌면 우리 마음에 든 병까지 낫게 할 수 있을 것"이라고 호들갑을 떨었습니다. 바라보자니, 정말 예뻐서 그랬어요. 만병초의 효능을 지나치게 과장한 이야기도 없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노인들이 만병초의 줄기로 지팡이를 만들어 짚고 다니면, 중풍을 예방할 수 있다는 건데, 그건 좀 믿을 수 없는 이야기입니다.
 

▲만병초는 신장병을 비롯해, 관절염복통 등 일상에서 흔히 겪을 수 있는 질환에 적용 가능한 약재로 쓰이기도 했다. ⓒ2010 HelloDD.com

그런 효험 때문이었을까요? 우리나라의 산에 자생하던 만병초가 지금은 매우 희귀한 식물이 되었습니다. 물론 기후를 비롯한 환경 변화도 원인이겠지만, 만병초는 무분별한 남획이 지금의 멸종 위기를 초래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특히 우리나라에 자생하는 노랑만병초는 환경부에서 멸종위기 식물 제2급으로 분류해 특별히 보호하는 식물이지요.

만병초는 세계적으로 많은 종류가 있지만, 우리나라에 자생하는 종류도 여럿 있었습니다. 만병초 외에도 분홍 꽃을 피우는 홍만병초(Rhododendron brachycarpum var. roseum)와 바로 앞에서 이야기한 노랑 꽃의 노랑만병초(Rhododendron aureum)가 그들이지요. 멸종위기식물로 지정된 것은 아니지만, 홍만병초 역시 개체수가 현저히 줄어들어 요즘은 흔히 볼 수 없는 식물입니다.
 

▲진달래 철쭉과 비슷한 생김새를 가지고 있는 만병초. ⓒ2010 HelloDD.com

만병초는 아시아의 고산 지대에서 자생하는데, 우리나라의 남한 지역에서는 지리산 설악산 오대산을 비롯해 울릉도 지역에서 찾아볼 수 있고, 북한 지역에서는 특히 백두산 지역에서 많이 찾아볼 수 있는 우리 토종 식물입니다. 대개는 높은 산에서 센 바람을 맞으며 자라다 보니, 그리 크게 자라지 못합니다. 대개 1미터 남짓 크기로 자라지만, 잘 자라면 3미터 넘게까지도 자랍니다.

만병초 꽃의 꽃잎 안쪽에는 짙은 초록색의 반점이 선명하게 드러나 있습니다. 역시 철쭉 꽃과 닮은 점이겠지요. 철쭉이나 만병초에서 두드러지게 드러나는 이 반점은 벌과 나비에게 꽃의 꿀샘이 있는 자리를 알려주는 길라잡이 역할을 합니다. 그러니까, 곤충들이 내려앉을 일종의 '활주로'인 셈이지요. 벌 나비는 이 활주로를 따라 살그머니 내려앉아 꿀을 따고 몸에는 꽃가루를 묻혀 다른 꽃에 옮겨주는 겁니다.
 

▲만병초는 겨울에도 잎을 떨구지 않아 푸르름을 잃지 않는 관상용 식물로 환영받고 있다. ⓒ2010 HelloDD.com

깔때기 모양의 꽃이 비슷하게 생겼다고는 하지만, 만병초는 진달래나 철쭉과 쉽게 구별할 수 있습니다. 앞에서 말씀드렸듯이, 열 송이 이상의 꽃이 한데 모여서 피어나기 때문에 분위기부터 다릅니다. 게다가 만병초는 겨울에도 잎을 떨구지 않는 상록성 나무입니다. 겨울에도 푸르름을 잃지 않는다는 점은 정원에서 심어 키우는 관상용 식물로 환영받을 수 있는 이유일 겁니다.

그러나 원래 고산 지대에서 자라는 나무이다 보니, 여느 집 정원에서 키우기는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최근에는 정원에서 키울 수 있도록 개량한 새 품종이 다양하게 나오는 것이지요. 오늘 사진으로 보여드리는 다양한 품종의 만병초 꽃들도 모두 천리포수목원에서 심어 키우고 있는 새 품종의 만병초들입니다. 우리 수목원의 만병초 이야기를 하려 시작했는데, 그냥 일반적인 만병초 이야기만 하고 말았네요. 간단히라도 오늘 글과 함께 보여드린 사진의 만병초들을 소개해 드려야 하겠습니다.
 

▲Rhododendron Smithii Group라는 이름을 가진 품종의 꽃. ⓒ2010 HelloDD.com

맨 위 사진 두 장은 하얀 색 꽃을 피우는 만병초 종류의 나무로, Rhododendron fortunei 'Lu Shan' 이라는 품종입니다. 큰 연못에서 전망대 쪽으로 오르는 오솔길 가장자리에 서있는 나무이지요. 우리 수목원의 만병초 가운데에서는 아마도 가장 크게 잘 자란 만병초이지 싶습니다. 거의 4미터 정도 자란 나무인데, 나무 전체에 하얀 색의 꽃이 활짝 피어나는 게 여간 멋있는 게 아닙니다.

그 다음으로 이어진 두 장의 사진은 살짝 분홍 빛이 도는 꽃을 피운 만병초 종류인 Rhododendron Yakusimanum 입니다. 꽃 송이 한가운데는 거의 흰 색인데, 차츰 분홍빛이 주변으로 퍼진 모습이 무척 포근하게 느껴지는 꽃이지요. 그 다음으로 이어진 세 장의 사진은 Rhododendron 'Blue ensign' 이라는 이름의 만병초 품종입니다. 처음에 꽃이 피었을 때의 분홍 빛은 차츰 보랏빛으로 변해서 보름 쯤 지나니 일곱 째 사진처럼 빛깔이 달라 보입니다.
 

▲Rhododendron 'Brigitte' 라는 품종의 만병초. ⓒ2010 HelloDD.com

그 다음 연한 자줏빛의 여덟째 사진은 Rhododendron Smithii Group의 꽃이며, 맨 끝의 연분홍 꽃은 Rhododendron 'Brigitte' 라는 품종의 만병초입니다. 모두가 더할 나위 없이 화려한 꽃입니다. 한참 바라보고 있자니, 마음에 든 만병(萬病)을 모두 내쫓아낼 수 있을 듯 예쁘고 아름다운 꽃임에 틀림없습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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