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 이춘아 한밭문화마당 대표

중학교 2학년 무렵 우리 집은 버스 종점 부근의 변두리로 이사 갔다. 종점에서 종점까지 통학하며 학교를 다녔다.

하루 2시간은 꼬박 버스 안에 있었다. 버스에서 졸기, 생각하기, 단어외우기, 버스에서 틀어주는 라디오 노래듣기, 차창 밖 변화하는 도시의 풍경 보기, 그리고 누구를 좋아하기 등 사춘기를 지배한 많은 부분이 버스 안에서 일어났다.

그 당시 버스는 앞 뒤 출입구에 차장이 있었다. 차장은 차비를 받는 일 외에 출퇴근 통학시간 사람들을 안으로 밀어 넣는 것도 큰 몫이었다. 남자차장들이 그 역할을 했다. 고등학교 갈 즈음 여자차장도 생겼고, 그들은 안내양이라는 이름으로 불렸다.

사람을 안으로 밀어 넣고 버스를 탕탕 치면서 오라잇 하는 남자 버스 차장이 멋있어 보였다. 좋아하는 버스 차장이 생겼다. 그 차장이 있는 버스를 타게 되면 운 좋은 날이라 여겼고, 때로는 그 버스 차장이 있는 차를 타기 위해 무작정 기다려보기도 했다.
 

▲자전거에 이러한 형태의 대바구니를 걸고 물건을 넣어 실어나르는 모습을 시골로 가면 볼 수 있다.  집집을 방문하여 생활용품을 파는 아주머니. ⓒ2010 HelloDD.com

인도네시아 족자카르타에서 버스를 탔다. 남자 버스 차장이 있었다. 반가웠다. 버스차장을 좋아한 몇십년 전 기억이 되살아나면서 웃음이 났다. 그 버스차장을 만나면 인사만 꾸벅하고는 말도 제대로 해보지 못했지만 그것이 사춘기 소녀의 첫사랑이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트랜스 족자카르타 시내버스 내부. 버스차장은 제복을, 앞쪽 운전수는 넥타이 정장을 하고 운전한다. 인도네시아 역시 운전대가 오른쪽에 있다. ⓒ2010 HelloDD.com

족자카르타에서 프람바난 사원으로 가기 위해 처음으로 버스를 이용하였다. 숙소의 아가씨가 택시도 좋지만 버스를 타고 가는 것도 좋다고 권유해서이다. 대중교통편이 좋지 않아서인지 책자에서도 버스 타라는 내용은 없었다. 관광객들은 대부분 택시를 이용한다. 프람바난 사원도 택시를 이용할 작정이었다.

숙소 근처의 버스정류장을 안내 받아 갔더니 번듯한 정류장에서 버스비를 받는 사람이 따로 있고, 버스 차장은 차비 받는 역할을 하지 않는다. 인도네시아에서 넥타이 멘 정장차림은 아마도 버스 운전사뿐이지 싶다.

버스 차장도 제복을 갖추어 입는다. 모든 버스가 그런 것은 아니고 이러한 시스템을 갖춘 버스는 정부가 직접 운영하고 있는 것인지 trans 라는 단어를 붙여 족자카르타에서는 transyogyakarta 라고 쓰여 있고, 자카르타에서는 transjakarta 라고 쓰여 있다.

그 외 버스는 마을버스이거나 외곽운영 버스로 그야말로 예전에 우리나라에서 보았던 시커먼 연기 날리며 버스차장이 사람이 태우고 탕탕 치며 출발 신호하는 작은 버스들이다. 그 버스는 인도네시아를 모르면 탈 수 없다.
 

▲인도네시아 사람들의 주요 이동수단은 오토바이. 도로의 절반은 오토바이일 정도로 많이 이용한다. 저녁시간에 젊은 남녀가 함께타고 데이트를 즐긴다. 교통사고가 많을 것 같은데, 접촉사고로 싱갱이 하는 장면은 보지 못했다. 음주운전이 거의 없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수퍼마켓에서 맥주조차 보기 어려울 정도이다. ⓒ2010 HelloDD.com

인구 1천3백만의 거대도시 자카르타는 교통난으로 악명이 높은 곳. 지반이 약해 지하철을 놓을 수 없다했다. 출퇴근 시간대 외에도 늘 도로사정은 좋지 않다. 자동차, 오토바이로 도로는 늘 꽉차있는 편이다.

유일한 해결책이 버스전용도로를 만들어 지하철을 대신하고 있었다. 자카르타 관광 시에는 transjakarta를 이용하길 권하고 싶다. 3500루피아(우리돈 350원)만 내면 버스를 갈아타면서 웬만한 곳은 다 다닐 수 있다. 일시적인 관광객은 그 루트를 몰라서 택시를 탈 수밖에 없고, 택시비도 만만치 않고 거스름도 잘 주지 않아 싱갱이 하며 기분 나빠 하느니 트랜스자카르타 버스를 이용하면 속편하고 저렴하며 막히지도 않고 시가지를 조망하며 볼 수 있어 좋다.

더구나 자가용과 택시는 밀리며 서있는데 버스전용도로에서 유유히 가고 있을 때 통쾌감까지 있다. 색으로 구분된 8호선까지 있는 버스 노선은 지하철 연결망처럼 보인다.
 

▲길가다 흔히 볼 수 있는 장면. 패트병에 무엇을 넣어팔길래 자세히 보았더니 기름. 주로 오토바이용이다. ⓒ2010 HelloDD.com

문제는 외부 관광객이 이러한 정보를 얻을 수 있는 매체가 없다. 버스노선에 대한 간단한 리플렛을 마지막 날까지 찾지 못했고, 버스노선안내 포스타를 어느 정류장에서 보고는 너무 반가와 얼른 사진을 찍었다.

찍은 사진을 확대하여 지도와 대조해보며 그리기를 해보았다. 일일이 물어볼 수도 없고 언어도 통하지 않으니 어디서 어디로 가는 지명을 알아야 목적지로 갈 수 있기 때문이다. 버스노선을 실제 그려보니 자카르타 시내 전체가 눈에 들어왔다. 무슨 나라가 버스노선표 하나 없는 나라가 있나 싶었다. 지하철 대신 버스전용도로가 있고 버스노선 색깔까지 있으면서 그 정보는 어디에도 찾을 수 없었다.
 

▲자카르타 시내의 버스노선표, 도로 차선 하나는 버스 전용길이라 막히지 않고 저렴하여 이용하면 좋으나 노선표를 알기 어렵다. 버스정류장에 거의 유일하게 붙은 포스터라 반가운마음에 사진 찍어와 지도와 대조하며 버스 노선을 익혔다. ⓒ2010 HelloDD.com

우리도 그러한 시절이 있었다. 10년 전까지만 해도 지역마다 변변한 관광안내 리플렛 하나 찾아보기 힘들었다. 있다 해도 일반인이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자료가 아니었다. 요즘 고속도로 휴게실 안내소에 누구나 쉽게 가져갈 수 있도록 꽂혀있는 지역안내 리플렛을 보면 감개무량하다.

그때나 지금이나 컬러 리플렛 인쇄비는 여전히 비싼 편이지만 관광에 대한 인식과 기본 생활여유의 폭이 넓어졌기 때문이다. GDP 3만불 시대를 나를 그렇게 실감하고 있다. 태국만 가도 공항에서 무료 관광안내지도를 받을 수 있다. 하지만 아직 인도네시아는 어느 곳을 가도 무상의 지도는 야박할 정도로 없다.

인도네시아 국립박물관에 갔다. 입구에서 입장료를 지불하고 리플렛이 없냐고 물으면 간신히 꺼내주고 그 리플렛이 사실 박물관을 이해하는데 별 도움도 안되고 인쇄상태도 별로 좋지 않다. 다른 문화시설이나 관광지에서도 사정은 마찬가지이다. 세계문화유산으로 알려져 있고 해외관광객들이 엄청나게 많이 오는 보로부두르 사원에서도 입장료 15미국달러(그곳 물가로 상당히 높은 편)를 받음에도 불구하고 단색의 복사지 같은 리플렛이 있을 뿐이고 어설픈 인쇄물로 호객 행위하며 따라붙는 잡상인들에게 시달림을 받았다.

인도네시아를 떠나기 며칠 전 가지고 다니던 지도에서 버스 노선을 발견했다. 아무런 설명도 없이 색만으로 알 수 있을 뿐. 그야말로 아는 만큼 보인다는 명언을 확인하며 씁쓸하게 떠나왔다. 이제는 아무렇지 않게 호화 리플렛을 가져와 그대로 분리수거함으로 들어가 버리는 수준이 된 우리의 시선은 그런 것 하나로 인도네시아를 우리나라 70년대로 치부해버리는 졸부가 되었다.
 

▲숙소 복도에 걸려있는 바틱 천에 염색하여 만든 액자. 서구화되기 전  인도네시아 원주민들의 평화로운 모습을 그렸다. ⓒ2010 HelloDD.com

버스타고 다니며 찾아다니는 것도 고단하여 큰 호텔로 들어가 외곽 관광할 수 있는 코스를 안내받아 인근의 보고르라는 곳을 갔다. 영어안내 가이드는 한국인들을 꽤 알고 있는 듯, 자기 나라사람들도 한국인만큼 부지런히 일했다면, 천연자원이 풍부한 나라가 오늘날 이렇게는 살고 있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우리는 인도네시아 등 열대지방 사람들이 게으른 편이라고 하지만 열흘 살아보니 몇 시간 다니면 더위 먹은 것 같아 오후는 쉴 수밖에 없었다. 그나마 오래 살려면 쉬엄쉬엄 살 수밖에 없지 않을까 싶다. 대학에 와서 사회과학이라는 단어를 처음 들었을 때 매력적인 부분은 복잡한 사회현상을 조사하여 예측 가능하게 한다는 대목이었다.

그 당시만 해도 예측가능이라는 단어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 예측불가능의 시대를 살아온 셈이다. 요즘 대전에도 버스정류장에 버스대기시간을 알려주는 기계가 있다. 언제 올지 모르는 버스를 하염없이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몇 분 기다리면 온다는 믿음으로 내 시간을 조정할 수 있다.

지하철을 타면 약속장소에 언제 도착할 것인지 가늠할 수 있다. 그러한 자잘하지만 결코 간단히 볼 수 없는 것들이 우리를 신뢰사회로 이끌어가고 있다. 몇 년 전 스위스 제네바 버스정류장에 버스 도착 시간표가 붙어져 있는데 거의 정확하게 도착한다는 것에 놀랐고 버스표를 검사하는 사람도 없다는데 두 번 놀랐다. 물론 불시에 검문하여 걸리면 몇 배를 물어내야 한다는 것을 나중에 알았지만.
 

▲우리나라 예술의전당 같은 공연장 앞에서 전통공연 리허설을 하다가 쉬고 있는 모습. ⓒ2010 HelloDD.com

최근 우리나라 기차역도 기차표를 점검하지 않는다. 다른 빈자리에 앉아있으면 어떻게 알았는지 확인하러 온다. 공공기관의 담장을 허무는 작업도 꽤 많이 진척되었다.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의 중심가에 모나스 라는 탑을 구경하려면 출입구를 제대로 찾아가야 한다.

그 넓은 공원 한가운데 있는 곳을 찾아가기 위해 얼마나 돌아가야 하는지 그나마 출입구 문을 조금만 열어 사람들이 오토바이 등을 끌고 들어오지 못하도록 막는다. 통제사회라는 느낌이 들었다. 우리 역시 그러하였다. 터널을 통과해오니 그 사회가 얼마나 불신과 통제, 억압의 사회였는지 새삼스럽다. 정말 우리는 선진의 단계로 돌입해 있는 것 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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