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리포 나무들]글 : 고규홍 나무 전문 칼럼리스트

꽃 지고 잎 나는 나무살이보다 먼저 눈길 모으고, 귓전 울리는 무성한 이야기들로 시작해야 하는 유월의 들머리입니다. 겨울과 여름 사이에서 올 봄은 찰나처럼 짧게 스쳐지나고, 초여름으로 들어섰습니다. 꽃 지고 무성해진 잎들은 저마다 자신들의 한해살이를 지탱하기 위한 양식 짓기에 한창입니다.

짧았던 봄이 아쉬웠다는 듯, 봄볕이어야 더 어울리는 꽃들은 따가운 햇살에도 꽃을 떨구지 않았습니다. 우리 수목원에서 자라는 다양한 종류의 수선화들 대부분은 꽃잎을 떨군 지 오래 됐습니다만, 수선화 가운데 작디 작은 수선화에는 여전히 꽃잎이 남아있습니다. 하얀 색의 앙증맞은 꽃을 피운 수선화입니다. Narcissus dubius 라는 이름의 수선화입니다. 꽃잎이나 수선화 꽃의 특징인 부화관 모두 고운 하얀 빛깔입니다. 꽃송이는 활짝 벌어진 것이라 해봐야 지름이 1센티미터 남짓입니다.
 

▲하얀 찻잔같은 모양을 하고 있다. ⓒ2010 HelloDD.com

수선화 꽃의 부화관은 사진에서 보는 것처럼 꽃잎 안쪽에 나팔이나 종, 혹은 찻잔 모양으로 돋아난 부분을 가리킵니다. 그냥 부관이라고도 부릅니다. 그 부화관 안쪽으로 노랗게 돋아난 꽃술이 선명합니다. 워낙 작은 꽃이어서 부화관 안쪽의 꽃술은 얼핏 보면 그냥 노란 점으로 보입니다. 이 작은 꽃이 들려주는 봄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려면, 가만히 몸을 낮추어야 합니다.

원래 바위 지대에서 잘 자라는 특징을 가진 이 Narcissus dubius에게도 지난 봄은 지나기가 쉽지 않았을 겁니다. 어디부터 어디까지가 봄이고, 어디부터가 여름인지 도무지 알기 어려웠을 테니까요. 그렇다고 해도 식물은 계절을 뛰어넘지는 못합니다. 모든 식물이 마찬가지입니다. 아무리 바람처럼 스쳐지나간 짧은 봄이라 해도 겨울 지나면 봄 맞이에 나서고, 봄 지나면 여름 맞이에 나섭니다.
 

▲긴 꽃술을 가진 철쭉은 화려한 붉은 꽃을 피운다. ⓒ2010 HelloDD.com

역시 좀 늦었지만, 이 봄의 꼬리를 가장 화려하게 보내는 나무는 진달래과(Rhododendron)의 철쭉 종류입니다. 진달래가 잎 나기 전에 쓸쓸히 연분홍 꽃을 피우는 우리의 소박한 나무라면, 철쭉은 진달래 꽃 지고 난 뒤에 잎과 함께 진달래보다 붉은 꽃을 피우는 화려한 나무입니다. 철쭉의 한자 이름인 척촉에 대한 이야기는 지난 3월 22일치의 편지에서 말씀 올렸습니다.

또 진달래와는 어떤 차이가 있는지에 대해서도 그날 말씀드렸으니 오늘은 그냥 넘어갑니다. 위 사진은 철쭉 가운데 흔히 '고려 영산홍'이라고 부르는 종류의 나무입니다. 고려영산홍을 이야기하기 전에 먼저 영산홍(暎山紅, Rhododendron indicum)부터 이야기해야 하겠네요. 철쭉을 진달래와 비교해 구별해내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겠지만, 영산홍으로 이야기가 확대되면 헷갈리게 됩니다. 그러나 간단히 이야기하면 영산홍이라는 이름이 일본 중심으로 새로 선발해낸 재배 품종을 일컫는 이름이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철쭉은 한대 어우러져 피기 때문에 더욱 화려해 보인다. ⓒ2010 HelloDD.com

하지만 의문은 남지요. 일본에서 선발한 품종인데 거기에 왜 '고려'라는 우리의 옛 이름이 붙었냐는 겁니다. 우리나라에서 본격적으로 영산홍을 심어 키우게 된 것은 대략 일제 침략기 이후입니다. 일본에서는 오래 전부터 진달래 과의 식물인 철쭉의 다양한 품종을 선발해냈다고 합니다. 흔히 '사쓰끼철쭉' '기리시마철쭉' 등으로 부르는 게 그런 종류들입니다.

이처럼 일본에서 선발한 품종들을 통틀어 '영산홍'이라 부르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보다 훨씬 전인 조선조의 연산군 때라든가, 성종 때의 기록에도 영산홍이 나오거든요. 그 기록의 영산홍이 지금 우리가 이야기하는 영산홍과 같은 식물인지는 확인하기 어렵지만, 여러 기록을 바탕으로 보아 우리나라에서는 고려 때부터 영산홍을 키워온 듯합니다.
 

▲철쭉의 꽃잎색은 화려하기 때문에 멀리서도 눈에 들어온다. ⓒ2010 HelloDD.com

그러나 우리나라에서 영산홍의 자생지는 찾을 수 없었습니다. 물론 지금 자생지가 남아있지 않다는 것이 일본에서 들어온 식물이라는 증거가 될 수야 없지만, 영산홍의 경우는 일본에서 들어온 것으로 보는 학자들이 많습니다. 그런 논란 속에서 오래 전부터 우리나라에서 키워왔다고 생각되는 품종을 특별히 '고려영산홍'이라고 부르는 겁니다. 아직 식물학계에서 정식으로 인정한 표현은 아닙니다.

고려영산홍 외에 궁중영산홍이나 조선영산홍도 같은 의미에서 붙인 우리 식 이름이지만 역시 공식적인 이름은 아닌 거지요. 새로 선발한 품종에 붙이는 이름은 늘 그런 혼돈이 있습니다. 그건 영산홍 선발에 매우 열성적인 일본에서도 마찬가지라고 합니다. 뿐만 아니라, 중국에서는 영산홍이라고 부르는 식물이 있지만, 그게 우리가 부르는 영산홍과 다른 품종이라고까지 합니다. 워낙 많은 품종이 있다보니, 헷갈릴 만도 하다 싶습니다. 이 이름들이 식물학적으로 공인된 이름은 아니라는 걸 말씀드려야 하겠네요.
 

▲햇님을 행해 고개를 든 철쭉. ⓒ2010 HelloDD.com

앞에서 이야기한 고려영산홍 조선영산홍 궁중영산홍 등에는 각각 차이가 있습니다. 고려영산홍의 꽃이 사진에서 보시는 것처럼 짙은 주홍색으로 피어나는 것에 비해 조선영산홍은 보라색으로 피어나고, 궁중영산홍은 고려영산홍과 비슷하지만, 조금 작다는 차이가 있습니다. 그 외에도 헷갈리는 이름이 또 있습니다. 흔히 들어보셨겠지만 자산홍과 연산홍입니다.

연산홍은 영산홍의 잘못된 표기입니다. 다양한 품종이 있는 나무이다 보니, 혹시 다른 나무 아닌가 다시 생각해 보게 되는 것일 뿐이지요. 자산홍은 글자 그대로 자주색 꽃을 피우는 영산홍 혹은 철쭉이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꽃 모양 외에도 잎이나 전체 수형(樹形)에 있어서 나름의 차이로 나누기도 합니다만, 미묘한 차이여서 구별은 쉽지 않습니다. 대부분의 재배품종들이 그렇지만, 영산홍도 다양한 품종들을 저마다 다르게 부르는 탓에 헷갈리기 쉽습니다.

 

▲5월을 아름답게 수 놓을 수 있을 정도로 화려한 철축. ⓒ2010 HelloDD.com

아무튼 천리포수목원에서 자라는 '고려영산홍'이라 부르는 나무가 무척이나 화려하게 봄 배웅 노래를 화려하게 부르고 있습니다. 지난 주에 보여드린 붉은 목련, 수잔과 제인이 서있는 뜰 맞은 편에 서있는 이 나무는 아마도 계절의 여왕 오월을 가장 아름답게 노래한 꽃 아닌가 싶었습니다. 물론 고려영산홍 외에도 진달래과의 다양한 철쭉 종류의 꽃들이 화려하게 피어있었지만, 제 눈에는 이 꽃이 가장 화려해 보였습니다.

진달래과 식물 가운데 오월을 가장 화려하게 수놓은 식물은 만병초 종류입니다. 만병초에도 참 다양한 종류가 있습니다. 이미 만병초가 개화를 시작했다는 말씀은 전해드렸습니다만, 며칠 전에는 큰연못 가장자리의 만병초원에서 여러 종류의 만병초가 화려한 꽃을 피웠는데, 그야말로 장관이었습니다. 만병초 사진과 이야기는 시간이 좀 늦더라도 뒤에 전해드리겠습니다.
 

▲노란 색으로 꽃을 피우는 철쭉 'Rhododendron luteum'. ⓒ2010 HelloDD.com

같은 철쭉 종류 가운데 노란 색으로 꽃을 피우는 품종도 있습니다. Rhododendron luteum 라는 나무입니다. 꽃이 노란 색이어서 그냥 황철쭉이라고도 부르는데, 역시 식물학적으로 공식화한 이름은 아닙니다. 또 최근 민간에서 황철쭉이라고 부르는 일본산 Rhododendron japonicum 혹은 Rhododendron molle subsp. japonicum 과도 다른 나무입니다. 꼼꼼히 돌아보자니 철쭉 종류의 식물은 종류가 참 많습니다. 전문가가 아닌 우리로서는 헷갈릴 만도 합니다.

평소에 제가 어렵다고 이야기하는 국화나 사초 종류의 식물만큼 혼란스럽네요. 종류가 많으니 어쩔 수 없을 겁니다. 도감을 살펴보니, 진달래과인 Rhododendron 에는 무려 9백 종이나 있다고 하니, 어쩔 수 없는 노릇 아닌가 싶습니다. 진달래는 물론이고, 우리가 철쭉이라 부르는 종류, 그리고 다음에 소개할 만병초 종류 모두가 이 9백 종의 식물에 들어있는 겁니다.
 

▲5~6송이가 함께 펴 더 앙증맞아 보인다. ⓒ2010 HelloDD.com

Rhododendron 종류의 식물 가운데에는 아무래도 붉은 색 꽃이 가장 많습니다. 그 다음으로 흰 색이 많지만, 노란 색 꽃도 적지 않습니다. 어쩔 수 없이 하나하나의 고유한 이름 대신에 그냥 꽃의 색에 따라서 노란 색 꽃을 피우는 종류를 황철쭉이라고 불러야 할 듯합니다.

물론 좋은 방법은 아니겠습니다만, 우리끼리 이야기하면서 일일이 학명을 외어서 부르는 것도 불가능할테니까요. 황철쭉 이야기를 하다 보니, 몇 해 전 우리 수목원에서 잘 자라다가 태풍을 맞아 쓰러진 커다란 황철쭉 한 그루가 생각나네요. 해송집을 넘어 등나무집 옆으로 난 작은 길로 들어서면 만나게 되는 멋진 나무였어요.

지금도 늠름하게 서있는 꽃산딸나무 옆에서 근사하게 잘 자란 황철쭉이었지요. 기억에 의하면 3미터는 넘게 자란 나무였지 싶습니다. 해마다 노란 꽃을 멋지게 피워서 눈길을 끌곤 했는데, 불어닥친 태풍을 못 이기고 부러졌지요. 문득 오래 전의 그 나무가 그리워지네요.
 

▲여름 맞이에 들어간 노란꽃 금영화. ⓒ2010 HelloDD.com

화려한 색깔로 여름맞이에 나선 금영화(Eschscholizia californica) 사진으로 오늘 편지 마무리합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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