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RI 전임노조임원들 벤처변신 화제

"노동조합을 결성했던 열정과 모험 정신, 그리고 약간의 무모함이 있었기 때문에 벤처기업도 창업할 수 있었던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이 '勞-社' 분규로 몸살을 앓고 있는 가운데 과거 활발하게 활동을 벌인 전임 노조 임원 출신들이 사업가 변신에 성공, 눈길을 끌고 있다. 특히 지난 80년대말 최강성(最强性)노조라는 평을 받았던 1대 노조임원들이 '실험복'을 벗고 '사장님'의 길을 걷고 있어 격세지감을 느끼게 하고 있다.

이들 노조출신 벤처사장들은 노조활동 때문에 불이익을 받기 보다는 조직을 리드해봤던 경험과 노-사 협상 등의 경험들이 회사 운영에 적지 않은 도움이 됐다고 입을 모았다.

지난 87년 ETRI 노동조합의 탄생에 지대한 공헌을 한 뒤 현재 벤처기업으로 자리를 옮긴 사람들은 주진천씨를 비롯 신웅호씨,장길주씨, 이근우씨,신순철씨 등. 이들은 당시 대전의 한 허름한 여관방에 모여 연구원의 권익과 한국과학기술계를 걱정하며 노동 조합 민주화를 위해 깃발을 올린바 있다.

ETRI 1대 노조위원장을 역임한 주진천 연구원은 94년 실험복을 벗은 후 하이퍼정보통신에서 8년간 부사장직을 맡아오다 최근 에니스텍이란 회사를 창업, 벤처CEO의 길로 접어들었다.

이보다 먼저 벤처의 길로 뛰어든 장길주 당시 교육선전부장과 이근우 당시 조합원은 해동정보통신을 공동으로 창업, 지난해 매출 2백억원 가량을 달성하고 올해 5백억원 이상의 매출을 목표로 하는 등 벤처로서의 성공가도를 달리고 있다.

또한 신순철 당시 쟁의부장 역시 오프너스를 거쳐 벤처기업 시큐베이를 형과 함께 창업해 휴대폰 바코드 스캐닝 기술을 개발, 최근 이동통신업체·은행권 등의 서비스확대에 따른 수요증가에 즐거운 비명을 지르고 있다.

올해 매출목표는 1백억원. 신웅호 당시 조합발기인은 지난 98년 에스아이를 창업, 인터넷화상교육솔루션과 실시간설문조사 솔루션 등을 개발했으며 최근에는 대덕밸리 최대의 IT분야 협동화단지인 (주)대덕밸리의 대표로도 선임되는 등 1인 2역을 거뜬히 소화해 내고 있다.

당시 활동을 함께 했던 한 연구원은 "당시 ETRI노동조합 간부들은 열정과 의지, 원하는 것을 쟁취하는 성취욕, 모험정신, 과학기술계를 생각하는 마음 등을 갖추고 있었다"며 "이들은 벤처기업에서도 강한 리더십을 보이며 성장해 나갈 것이다"라고 말했다.

신웅호 에스아이 사장은 "90년대 초반 대규모 파업을 통해 연구원들의 처우는 대폭 개선됐지만 이 때 '면직'을 각오하고 선봉에 섰던 자들을 잊어서는 안된다"며 "지금은 연구원들 사이에서도 노조를 '터부'시하는 경향이 있어 아쉽다"고 밝혔다.

신순철 시큐베이 부사장은 "한 때 우리가 떳다하면 ETRI간부들이 바짝 긴장을 했었는데 이제 우리가 벤처로 나섰으니 세계가 긴장해야 할 것"이라며 "최강성 노조가 최강성 벤처가 되는 날을 위해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저작권자 © 헬로디디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