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리포 나무들] 글 : 고규홍 나무 전문 칼럼리스트

새해가 밝았습니다. 한해를 보낸다는 게 무슨 의미일까 생각해 보게 되는 때이지요. 해가 바뀐다고 해서 세상이 특별히 바뀌는 건 아니겠지요. 맵찬 겨울 바람도 그대로일 테고, 아침에 해 뜨고 저녁에 해 지기는 마찬가지겠지요. 고요히 잦아든 나무들, 나무살이의 여전함이야 더 그렇겠지요.

새해가 됐다고 해봐야 겨우 하루 지난 것에 지나지 않을테니까요. 사람만, 그것도 마음만 달라질 겁니다. 겉으로야 달라질 게 없겠지요. 하지만 마음만큼은 누구에게나 다를 겁니다. 해를 나눠놓은 탓에 미뤄두었던 일들을 하나 둘 떠올리며, 해 넘기기 전에 어떻게든 마무리하려 애쓰게 되겠지요. 하다못해 밀린 빨래나 대청소도 아마 이 즈음에 한번 쯤 생각하게 됩니다. 그래서 새해는 꼭 필요합니다.
 

▲새빨간 꽃잎을 활짝 연 '애기동백'. ⓒ2010 HelloDD.com

지난 해 저물고, 새해 오는 걸 아는 듯 모르는 듯, 천리포수목원의 나무들은 오락가락하는 이 겨울의 험한 날씨를 어찌 보낼까의 궁리에만 몰두한 듯합니다. 애기동백(Camellia hiemalis 'Chansonette')은 수목원의 숲이 고요해진 틈을 타서 새빨간 꽃잎을 활짝 열었습니다.

계절의 흐름 따라 재우치는 꽃 송이의 발걸음이 기특해서일까요? 12월 들어서면서 서서히 입을 연 애기동백의 꽃은 언제라도 좋습니다. 저리 예쁘게 피어난 애기동백의 꽃은 두어 달 이상 계속 피어납니다. 꽃 하나 떨어지면, 다른 꽃이 그 다음을 이어서 피어나고, 그 꽃 또 떨어지면 다른 꽃이 피어납니다. 겨우내 천리포수목원 숲을 아름답게 수놓지요. 빨간 꽃을 더 아름답게 하는 건 어쩌면 푸르게 남은 상록성 식물들의 잎이 더 푸른 때문 아닐까도 생각해 봅니다.
 

▲귀여운 동그란 모양의 'Artemisia schmidtiana'. ⓒ2010 HelloDD.com

푸르게 남아있는 잎사귀들이 그래서 더 돋보이는 계절입니다. 오늘 편지의 맨 위 사진에 보여드린 잎은 유카 품종(Yucca rostrata)의 잎입니다. 수목원에서 저희가 '큰밭'이라고 부르는 지역의 실유카 길(이 길도 내년 봄에는 조금 바뀔 겁니다)이 끝나는 곳, 모감주나무와 칠엽수 품종이 서있는 그 뒷자리에 다소곳이 앉아있는 키작은 식물입니다.

아마 모감주나무와 칠엽수 품종의 잎이 무성할 때였다면 그냥 지나쳤을지 모릅니다. 가을 지나니 눈길을 주지 않을 수 없는 식물입니다. 바로 위의 사진은 천리포수목원의 암석원에서 자라고 있는 낮은 키의 Artemisia schmidtiana 입니다.

전체적으로 동그랗게 자라는 낮은 식물인데, 잎 모습이 참 재미있습니다. 멀리에서는 잘 보이지도 않을 정도로 조그마한 식물이지요. 바위들 사이로 낸 좁다란 길에 자리잡고 앉아있는데, 가만히 바라보니, 그 잎사귀들의 규칙적인 갈라짐이 참 멋집니다.
 

▲붉은 열매를 맺은 'Oblata'. ⓒ2010 HelloDD.com

애기동백 꽃도 좋고, 잎이나 줄기도 좋지만, 아무래도 이 계절에는 식물의 열매가 눈길을 끕니다. 가장 도드라지는 건 아무래도 여름 숲의 색깔과 극단적인 대조를 이루는 빨간 열매들입니다. 빠른 식물은 시월부터 열매를 맺기 시작해서 지금은 온통 붉은 열매 천지입니다. 빠르게 맺은 열매들은 벌써 부지런한 새들이 먹어치우기도 해서 지금은 다 떨어진 것도 있습니다.

위의 사진은 지난 시월 초에 맺기 시작한 Skimmia japonica 'Oblata' 의 열매입니다. 한껏 붉은 기운을 다해 열매를 맺었지만, 지금 이 열매들은 이미 새들의 먹이로 사라지고 열매를 언제 맺었냐 싶게 시치미를 뚝 떼고 서있습니다. Skimmia japonica 'Oblata' 들은 오히려 오는 봄에 피워낼 꽃봉오리를 서서히 만들어가는 중이랍니다.
 

▲동글하면서도 길쭉한 열매를 가진 광나무. ⓒ2010 HelloDD.com

빨간 열매가 가장 눈에 띈다고 했지만, 열매의 색깔들은 다양합니다. 주로 노란 색의 열매를 맺는 매자나무과의 식물도 있고, 보랏빛으로 맺는 작살나무과의 식물도 있지요. 아예 검은 색의 열매를 맺는 식물도 있습니다. 열매가 마치 쥐똥나무(Ligustrum obtusifolium)와 닮은 광나무 품종의 열매도 그런 까만 색 열매 가운데 하나입니다.

열매 하나하나의 생김새는 광나무(Ligustrum japonicum)와 닮았지만, 열매가 달리는 방식에는 차이가 있습니다. 광나무 열매와의 차이는 나중에 다시 한번 편지로 정리해볼까 합니다. 광나무 계통의 식물들이 맺는 열매는 쥐똥나무와 매우 비슷합니다. 광나무와 쥐똥나무는 같은 물푸레나무과의 쥐똥나무 속에 속하기 때문입니다. 열매는 비슷하지만, 쥐똥나무는 가을에 잎을 떨구는 낙엽성인 것과 달리 광나무는 겨울에도 푸른 잎을 달고 있는 상록성이라는 게 다릅니다.
 

▲시월 말부터 열매를 맺기 시작하는 '피라칸사'. ⓒ2010 HelloDD.com

빨간 열매로 눈길을 끄는 식물 가운데에 Pyrancantha 가 있습니다. 우리말 이름이 없어서 그냥 피라칸사라고 부르는 식물입니다. 우리 수목원에 최근 전망대라는 이름으로 놓은 데크 옆의 '소사나무집' 아래 쪽 울타리에서 자라는 이 피라칸사는 시월 말부터 열매를 맺기 시작하지요.

꽤 긴 시간에 걸쳐 매달려 있는 이 빨간 열매는 한꺼번에 모여서 맺히기 때문에 유난히 도드라져 보입니다. 오래 전 일이지만, 이 피라칸사의 빨간 열매 때문에 우스운 일도 있었다고 합니다. 눈이 많이 내린 어느 겨울날, 소방헬기가 한 대가 이 지역을 살펴보다가 바로 이 피라칸사에 무더기로 맺힌 붉은 열매를 본 겁니다. 하늘 높은 곳에서 바라본 그 헬기의 소방관들은 이 붉은 색 열매를 마치 불이 난 것처럼 생각했고, 지상의 소방서에 곧바로 연락했다는 겁니다. 큰 소동까지야 없었지만, 정말 화재로 착각할 만큼 붉디 붉은 열매입니다.
 

▲붉디 붉은 빨간 열매를 가진 '피라칸사' ⓒ2010 HelloDD.com

이제 2010년 새해를 보다 보람차게 맞이하기 위한 준비에 나서야 할 시간입니다. 이 땅의 나무를 사랑하고 돌봐주시는 분들, 그리고 천리포수목원에 관심 가져주신 모든 분께 진심으로 큰 감사 인사 올립니다. 2010년 새해에도 지금까지 그러셨던 것처럼 늘 곁에서 지켜봐 주시기를 부탁드리며 새해 인사 올립니다. 새해 복 많이 지으십시오.

* 모든 콘텐츠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동의 없이 천리포 나무들 콘텐츠의 무단 전재 및 배포 등을 금합니다.

저작권자 © 헬로디디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