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코레이 박재욱 사장....광섬유 관련 중국에 생산 공장

국방부 대변인 출신 예비역 육군 준장이 벤처기업 사장으로 변신했다. 주인공은 대덕밸리에 자리 잡은 벤처기업 '데코레이' 박재욱 사장(56)이다. 전역한지 이미 2년이 지났지만 박 사장을 처음 본 순간 육군 준장의 풍채는 여전했다. 33년 군 생활이 몸에 배어 있었다. 번뜩이는 눈빛은 시간이 흘렀어도 그대로다.

하지만 변 한 게 있었다. 부드러운 어투나 몸 동작은 '민간인'으로 바뀌어 있었다. 박 사장은 사실 대부분의 군인생활을 공보업무에 종사했다. 육군 사관학교 26기다. 야전생활은 소위로 임관한 이후 8사단에서 중대장을 한 것이 전부다.

박 사장이 공보업무를 시작한 것은 아주 우연한 '사건 때문'. 지난 72년에 있었던 '7.4 남북 공동성명'이 운명을 바꿨다. 당시 중앙정보부장이 북한에 다녀온 이후 우리나라에서도 정훈장교를 대거 발탁하던 시기가 있었다. 북한의 정치장교와 대화의 창구를 만들겠다는 의도에서다. 이때 육사의 해당기수가 25기와 26기. 그 중에서 '똘똘한' 인재들로 4명이 선발되었는데 박 사장은 이들 중에서 '간택'됐다. '야전군'에서 '공보군'으로 바뀐 사연이다.

이후 '정훈 장교' 박사장은 육군본부 공보실과 국방부 대변인실에서 잔뼈가 굵었다. 국방부 대변인과 육군본부 공보실장을 지낸 덕택에 전국에 흩어져 있는 육군의 간부들은 그를 모르는 사람들이 없을 정도다. 훈 포장도 화려하다. 정훈감 훈포장, 보국 훈장 천수장, 보국훈장 삼일장 등 수두룩하다.

이런 그가 환갑을 몇 년 앞둔 나이에 뭐가 부족해서 젊은 사람들도 어렵다는 벤처기업을 창업했을까. 박사장의 입에서는 뜻밖의 대답이 나왔다. 자아 실현이란다. 그는 '상명하복(上命下服)'의 군 생활에서 벗어나 젊은 시절 한때 꿈꾸었던 '창업'이 소원이었다고 말했다. "33년 군 생활 했으면 할 만큼 한 것 아닙니까. 남들은 너무 늦었다고 하지만 이제는 새로운 일을 해보고 싶었습니다. 돈버는 것도 중요하지만 나만의 일을 해보는 것이 소원이었죠."

그가 창업 이외에 다른 길이 없던 것도 아니다. 예비역 장성인 그에게는 다른 장성들과 마찬가지로 일반회사에 전직을 할 수 있는 기회도 있었다. 하지만 그는 이런 유혹을 단번에 뿌리쳤다. "기업에서 몇 차례 제의가 왔지만 거절했습니다. 다른 조직에 들어가서 적응하는 것이 지겹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

박 사장이 창업을 결심하자 가장 반대했던 사람은 다름 아닌 아내다. 아내뿐만 아니라 주변의 모든 사람들이 말렸다. 전통적으로 관료 집안인 내력도 창업에 걸림돌로 작용했다. "퇴직금을 말아먹고 싶어서 환장을 한다는 둥, 집안 말아먹을 팔자라는 둥 별의별 이야기들이 다 들렸습니다. 절해고도(絶海孤島)에 혼자 서 있는 느낌이었죠."

박사장의 창업 아이템은 회사 이름(데코레이)에서도 알 수 있다. 광선(Ray)으로 장식(Decoration)을 한다는 개념이다. 대전기능대학 창업보육센터의 지하 사무실에서 지난 2년 동안 7-8명의 직원이 개발에 몰두한 결과 신제품도 선보였다. 첫 작품은 광섬유의 끝에 LED 발광소자를 침직 시킨 제품이다. 핵심 기술은 얇은 광섬유의 끝에 빛을 발하게 만드는 기술이다.

박 사장은 이 기술을 응용해 수십-수백개의 LED를 한자리에 모아 문자나 심볼 등을 만들어 동적 영상 및 글자를 디스플레이하는 제품을 출시했다. 이 기술은 의류나 신발 등 액세서리에 적용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야간 보호·특수 조명장치 등 다양하게 상품화할 수 있다. 특히 박 사장은 다른 유사제품은 도저히 따라올수 있는 양산장비까지 직접 생산해 특허를 내놓은 상태다.

성과도 나오고 있다. 제품에 대한 소문을 듣고 벌써부터 주변에서 문의가 잇따르고 있다. 그동안 얼어붙었던 투자도 조금씩 입질을 시작했다. "중국 웨이펑에 합작법인을 세워 현지 공장에서 생산할 예정입니다. 올해부터는 본격적으로 매출도 오를 것입니다. 그동안 불안했던 사람들을 단번에 안심시킬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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