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리포 나무들]글 : 고규홍 나무 전문 칼럼리스트

봄 볕 따스해질 지음, 크로커스와 함께 앵초 이야기 전해드린다고 말씀 올린 게 3월 말이었습니다. 말씀 올린 대로 크로커스는 한번 짚어봤지만, 앵초 이야기는 그냥 넘어갈 뻔했습니다.

한꺼번에 피어올라오니, 봄 꽃들을 따라 걷기가 쉽지 않네요. 천리포수목원의 아름다운 봄 풍경을 전해드리려 부지런을 떨었지만 그냥 스쳐지나지도 못한 꽃들이 많습니다. 수선화만큼 앵초 이야기도 많이 늦었습니다.

그나마 앵초는 개화 시기가 길어서 아직 수목원 안에서 볼 수 있으니, 다행입니다. 다른 들꽃들과 마찬가지로 앵초도 종류가 많습니다.

앵초의 경우, 잎사귀나 꽃의 생김새에서 그다지 큰 차이를 가지지 않기 때문에 조금만 유심히 바라보면 구별이 가능하지만, 색깔만큼은 매우 다양합니다. 우리의 산과 들에서 보는 보랏빛 앵초에서부터 노란 색, 흰 색이 있고, 또 꽃잎에 무늬가 들어있는 꽃도 있습니다.

▲우리나라를 비롯해 일본, 유럽 등에서도 잘자라는 풀꽃.  ⓒ2009 HelloDD.com

우리나라의 산과 들에 자생하는 앵초 중에도 둥근 잎사귀를 가진 큰앵초, 높은 산, 바위 곁에서 사는 설앵초, 백두산 지역에서 자라는 좀설앵초, 함경도 지역에서 자라는 돌앵초 등이 있습니다. 이들이 속하는 앵초과의 대표 식물인 앵초는 우리나라를 비롯해 일본과 중국 등 동아시아 지역에서는 물론이고, 유럽에서도 잘 자라는 풀꽃입니다.

대개는 봄 볕 따스한 4월 즈음에 꽃을 피우는 앵초는 다 자라면 15~40센티미터까지 자랍니다. 대개는 15센티미터 크기로 자라고, 무리를 지어 피어나기 때문에 땅바닥에 붙어있는 듯 보이지요. 꽃잎이 다섯 장인 것처럼 보이지만, 잘 보면 하나로 된 화관인데, 그 끝이 다섯 개로 갈라진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다섯 개로 갈라진 각각의 끝 부분이 다시 또 한번 예쁘게 갈라져 있습니다.
 

▲봄 날의 화려한 빛깔을 감상할 수 있는 앵초 꽃. ⓒ2009 HelloDD.com
꽃의 크기는 대략 2센티미터가 채 안 됩니다. 작은 꽃이지요. 꽤 길게 뻗어오르는 하나의 꽃자루에 5~20개의 꽃이 한꺼번에 모여서 피어나기 때문에 가냘퍼 보이면서도 풍성한 느낌을 줍니다. 땅 바닥에 붙어서 피어나기 때문에 정원의 화단에 심어 키우면, 봄 날의 화려한 빛깔을 감상할 수 있는 좋은 꽃입니다.

오늘의 사진들은 앵초과(Primula)에 속하는 들꽃들입니다. 맨 위의 사진은 우리 수목원의 앵초과 들풀 가운데에서 가장 먼저 꽃을 피운 Primula vulgaris ssp. sibthorpii 입니다.

예쁜 꽃을 감상하기 위해 키우는 앵초과의 원예종 식물인 거죠. 가을부터 겨울까지 꽃을 피우는 가을벚나무 옆 길 모퉁이에서 지난 3월 중순 경 꽃잎을 열고 봄노래를 부른 꽃입니다. 보랏빛 화관 안쪽에 노란 무늬가 돋보이는 꽃입니다.
 

▲유난히 꽃자루가 높이 솟아오른 앵초 'Alba'. ⓒ2009 HelloDD.com
그 다음의 둘째 사진은 위의 꽃에 이어서 입을 연 Primula veris ssp. columnae 입니다. 키는 Primula vulgaris ssp. sibthorpii 보다 크지만, 꽃송이는 그보다 조금 작아서 앙증맞아 보이는 꽃이지요. 크기만 작다 뿐이지, 화관의 생김새는 똑같은데 색깔이 노란 색입니다.

3월 말의 이 사진은 꽃자루에 매달린 여러 송이의 꽃이 다 피어나지 않은 상태여서 더 싱그러워 보입니다. 셋째 사진의 꽃은 5월 들어 만난 Primula denalculata 'Alba' 입니다.

잎사귀들은 뿌리에 모여 났고, 그 한가운데에서 꽃자루가 불쑥 솟아오르고, 그 위에 여러 송이의 꽃이 모여서 피어난 겁니다. 이 꽃은 앞의 꽃들과 달리 하얀 색이고, 유난히 꽃자루가 길게 솟아올랐습니다. 이 꽃이 늦게 피어난 게 아니라, 개화 시기가 긴 편입니다. 넷째 사진이 3월 말에 찍은 같은 종류의 식물의 사진입니다.

▲따뜻한 봄 햇살을 기다리고 있는 보라색 앵초. ⓒ2009 HelloDD.com

바로 위의 사진은 앵초(Primula sieboldii)입니다. 보랏빛이 선명한데, 아직 꽃잎 열기 전입니다. 꽃자루 위에 모여서 따뜻한 봄 햇살을 기다리는 모습입니다. 저렇게 여러 장의 꽃잎이 다소곳이 모여있다가 볕이 따스해지면, 화관을 수평이 되게 활짝 펼쳐보이지요.

우리 숲을 산책하다가 이 봄에 흔하게 만나게 되는 꽃들 가운데 하나입니다. 가녀린 꽃자루 위에 피어난 화려한 보라색 꽃이 봄날 한낮의 햇살처럼 따뜻합니다. 유럽 사람들이 이 꽃을 참 좋아했던 모양입니다. 특히 사랑을 이루기 위해 이 꽃을 이용한 풍습도 있습니다.

앵글로 색슨 지역의 여자들에게 전하는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사랑에 빠진 여자들은 이른 아침 이슬에 젖은 앵초의 꽃을 따서 맑은 빗물에 넣고 햇볕을 쪼이면 그 물이 사랑의 묘약이 된다고 믿었습니다. 그 물을 사랑하는 이의 베개에 뿌리면 그의 마음이 열린다는 것이지요.

▲유럽에서는 앵초 꽃을 사랑의 묘약이 된다고 믿었다.  ⓒ2009 HelloDD.com

또 북유럽에서는 운명을 지배하는 사랑의 여신 프라이야에게 앵초 꽃을 봉헌했다고 합니다. 나중에 북유럽에 기독교가 전해진 뒤에는 프라이야 여신 대신에 성모마리아에게 이 꽃을 봉헌했기에 '성모마리아의 열쇠'라는 뜻의 마리엔슐리셀(Marienschlussel)로 부르기도 합니다.

'열쇠'라고 부르는 것은 하나의 꽃자루에 여러 송이의 꽃이 뭉쳐 나는 것이 마치 열쇠 꾸러미처럼 보인다 해서 붙은 이름입니다. 그러고보니, 열쇠 꾸러미를 닮았네요.

평소에 주머니 안에서 덜그럭 거리는 열쇠 꾸러미들은 귀찮은 존재 가운데 하나 아니던가요? 하지만 이렇게 예쁜 열쇠 꾸러미라면 언제라도 들고 다니고 싶을 겁니다. 열쇠처럼 생긴 탓일까요? 앵초 꽃에 얽힌 재미있는 전설이 전합니다. 독일에서 전하는 앵초 전설로 오늘 이야기 마무리할까 합니다.

▲북유럽에서는 운명을 지배하는 사랑의 여신 프라이야에게 앵초 꽃을 봉헌했다고 한다.  ⓒ2009 HelloDD.com

옛날 독일의 어느 마을에 병든 홀어머니와 사는 리스베스라는 소녀가 있었습니다. 어느 해 봄, 어머니는 들판의 꽃을 보고 싶어 했습니다. 그러자 리스베스는 꽃을 꺾어 어머니께 보여드릴 생각에 들에 달려나갔습니다.

한창 예쁘게 피어올린 앵초 꽃을 꺾으려 하다가 문득 하나의 생명체인 앵초가 가여워졌습니다. 그래서 리스베스는 꽃을 꺾지 않고, 뿌리째 뽑아서 화분에 심어서 오랫동안 잘 기르겠다고 생각했어요. 정성을 들여 앵초 한 뿌리를 파낸 순간 어디선가 요정이 날아왔습니다.

요정은 "너는 세상에서 가장 운이 좋은 아이로구나. 네가 지금 찾은 것은 보물성으로 들어가는 열쇠란다"라고 말하고는 소녀를 이끌었습니다. 요정을 따라 깊은 숲 속으로 들어가자 눈부실 만큼 아름다운 성이 나타났습니다. 요정은 소녀에게 "성 안에는 보믈이 가득한데, 성문을 여는 열쇠가 바로 네가 골라낸 앵초란다"라고 했어요.

▲독일에서는 앵초 꽃에 대한 아름다운 전설이 내려져 온다. ⓒ2009 HelloDD.com

요정의 안내로 리스베스가 앵초 꽃을 성문에 갖다 대자, 성문이 열렸어요. 그리고 요정은 성 안에 수북히 쌓인 보석을 마음대로 가지라고 했고, 소녀는 몇 개의 아름다운 보석을 주머니에 넣었습니다. 곧바로 리스베스가 성밖으로 나오자 요정도 보물성도 순식간에 사라졌습니다.

뜻밖에 보석을 얻은 소녀는 병든 어머니가 걱정돼 한달음에 집으로 돌아와, 어머니에게 앵초 꽃을 보여드렸지요. 어머니는 소원대로 봄을 상징하는 아름다운 꽃 앵초를 보고 병이 나았고, 소녀가 가지고 온 보석을 팔아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다는 이야기입니다. 앵초 꽃의 전설을 이야기하다 문득 돌아보니, 이 즈음이 바로 우리의 어머니를 한번 더 생각하게 하는 계절이네요. 세상의 모든 부모님들에게 행복의 열쇠 뭉치인 앵초 꽃을 보여드리면 좋겠네요.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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