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 고규홍 인하대학교, 한림대학교 겸임교수

이건 순전히 제 생각입니다만, 나무를 바라보려면 우선 욕심을 버려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마음을 텅 비우고, 우리 곁에서 살아가는 나무들의 다양한 모습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야 하지 않을까 하는 겁니다. 사람의 기준에 맞춰서 아름다우니, 좋으니, 판단하는 건 그리 옳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이 겨울에 천리포수목원을 찾아오시는 분들 가운데에는 "정말 볼 것 없는 곳"이라고 지청구를 놓는 분들이 있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수목원'이라는 이야기는 '사기'라고까지 호통을 칩니다. 나무는 이래야 예쁘다, 저래야 좋다, 등 사람의 기준에 따른 욕심이 앞선 때문 아닐까 싶습니다. 사람이 정한 기준을 버리고 바라본다면, 나무 뿐이겠습니까. 우리와 관계 맺고 살아가는 세상의 모든 것들이 아름답게 보이지 않을까 싶네요.
 

ⓒ2009 HelloDD.com

겨울나무가 좋은 건 그래서입니다. 어떤 판단 기준이나 욕심 없이 그냥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받아들이겠다는 마음으로 다가설 수 있는 아주 좋은 계절이 겨울이기 때문입니다. 마음을 비우면 무성했던 잎을 다 떨군 채 쓸쓸히 헐벗고 서있는 겨울나무는 누구에게라도 아름답게 다가섭니다.

특히 나뭇결 안에 묻어난 사람살이의 흔적을 찾아다니는 저로서는 세월의 풍상을 담은 줄기 표면을 또렷이 들여다볼 수 있는 겨울나무를 유난히 좋아합니다. 천리포수목원의 나무들 역시 겨울 특유의 멋과 아름다움을 갖추고 있습니다.

여름이라면 그 무성한 이파리에 둘러싸여 놓치기 쉬운 나무의 속살을 샅샅이 들여다볼 수 있다는 게 얼마나 좋은지요. 뿌리 부분도 놓치지 않고 생생히 바라볼 수 있지요. 겨울 아니면 작은 풀들이 피운 형형색색의 꽃들 때문에 나무의 뿌리는 눈에 잘 들어오지 않거든요. 겨울은 나무를 알알이 바라볼 수 있는 행복한 계절임에 틀림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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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리포수목원에는 그렇게 겨울이어서 더 좋고, 더 재미있는 나무가 있습니다. 큰 연못 가장자리에 서있는 나무입니다. 천리포수목원에는 두 개의 연못이 있지요. 연못마다 고유의 이름이 있는 건 아닌데, 그냥 크기를 놓고, 큰 연못과 작은 연못이라고 부릅니다. 큰 연못 가장자리에 있는 큰 나무들 가운데, 낙우송(落羽松, Taxodium distichum)이 바로 그 나무입니다. 낙우송이라는 이름을 글자 그대로 풀이하면 '새의 깃이 떨어지는 소나무'가 되겠지요.

가을 되면 우수수 떨구는 이 나무의 잎이 새의 깃털처럼 생겼기 때문에 붙인 이름일 겁니다. 미국이 원산지인 낙우송은 큰 키로 잘 자라는 나무입니다. 잘 자라면 50m 까지 자라는 큰 나무입니다. 천리포수목원의 낙우송은 눈대중으로 보아 아직 20m 가 채 안되는 크기입니다만, 수목원 안에서는 큰 키의 나무에 속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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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못 가장자리와 같은 습한 곳을 좋아하기 때문에 우리 수목원에서도 연못가에 심어 키우는 것이지요. 심지어는 물속에서도 자랄 정도로 물과 친한 나무입니다. 가을에 갈색으로 물드는 단풍 또한 멋진 나무입니다.

이 나무의 여러 특징 가운데 가장 눈에 띄는 것은 기근(氣根)입니다. 낙우송은 뿌리가 깊지 않은 대신 옆으로 넓게 퍼지는 특징을 가졌지요. 그래서 옆으로 퍼지다가, 뿌리의 일부분이 땅을 뚫고 솟아오릅니다. 이 기근의 모습이 참 다양합니다.

마치 동굴의 종유석과 같이 제멋대로 자라지요. 얼핏 보면 화목한 한 가족이 옹기종기 모여 서서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는 듯도 하고, 또 달리 보면, 두루마기를 걸치고 선 선승 앞에 어린 수도승들이 나란히 서서 숙연히 큰 가르침을 듣는 듯하기도 합니다. 보는 자리에 따라, 혹은 보는 사람의 마음에 따라 다른 모습으로 나서는 기근의 모습은 재미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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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갈색의 작은 조각으로 벗겨지는 껍질의 줄기는 곧게 자라기 때문에 잘 자란 나무는 보기에 참 좋습니다. 전체적으로는 고깔형의 멋진 나무입니다. 크고 빠르게 자라는 낙우송은 목재로도 많이 쓰이지만, 나무의 끝 부분이 뾰족하고 가늘어서 그 쓰임새가 그리 넓지는 않습니다. 목재로서보다는 그 아름다운 생김새를 이용해 주변 풍광을 아름답게 하기 위해 심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낙우송의 생김새를 보다가 메타세콰이어를 떠올리신 분들이 많을 겁니다.

넓게 보면 메타세콰이어는 낙우송과 친척에 속합니다. 메타세콰이어 외에도 삼나무 금송 등이 낙우송과에 속하는 나무이지요. 그 가운데 메타세콰이어는 낙우송과 매우 비슷한 생김새를 가졌지요. 두 나무를 구별하려면, 잎 나는 모양을 보면 됩니다. 메타세콰이어의 잎이 '마주나기' 방식으로 나는 것과 달리 낙우송은 '어긋나기' 방식으로 나지요.

잎 나는 방식 외에 메타세콰이어와 낙우송은 서로 많은 점에서 닮았습니다. 전체적인 생김새는 물론이고, 잎 모양도 그렇습니다. 습한 곳을 좋아하는 특성도 그렇고, 기근이 발달한다는 점까지 그렇지요. 그래서 어떤 분들은 가로수로 메타세콰이어를 심으면, 나무의 기근이 발달하면서 아스팔트나 인도를 망가뜨릴 우려가 있지 않을까 이야기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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잎 떨군 겨울, 천리포수목원 큰 연못 가장자리에 옹기종기 모여서서 두런두런 이야기 나누는 기근들이 재미있는 낙우송의 겨울 이야기였습니다. 그래도 여전히 화려한 꽃이 그리워지는 이 겨울, 천리포수목원에서 지금 한창 꽃을 피운 남아프리카 원산 국화과의 꽃(Euryops pectinatus) 사진 하나 덧붙이며 오늘 이야기 마칩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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