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 류동수 과학칼럼니스트

액정화면이나 문자판에 손가락을 접촉시켜 작동시키는 터치스크린은 IT기기의 필수 트렌드로서 최근 '터치폰'이나 네비게이션 등에 사용되어 젊은 층뿐만 아니라 중장년층에게도 큰 인기를 끌고 있다. 삼성경제연구소는 전문가 설문과 1만 351명에 대한 인터넷 설문 결과를 바탕으로 터치폰을 2008년 최고의 히트상품으로 꼽기도 했다.

하지만 터치스크린을 제조하기 위해 필수적으로 사용되는 터치스크린 패널용 투명필름이 거의 전량 일본으로부터 수입되고 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터치스크린용 투명필름은 터치스크린 모듈 제작에 필수소재인 전도성 투명필름으로, 투과도 85% 이상, 면저항 400Ω/sq 수준이 요구된다.

일반적인 저항막 터치 방식의 경우 두 장의 투명필름을 상하로 배치하여 외부접촉에 의한 접점형성에 의해 구동하는 방식을 사용한다. 그동안 투명전극 제조를 위해선 ITO(Indium Tin Oxide, 산화인듐주석, 각종 평판 디스플레이의 투명전극 소재)가 많이 이용되어 왔다.

그러나 기존의 ITO를 이용할 경우 고온, 고압에서 물리적 증착을 통해서만 투명전극의 제조가 가능해 구부릴 수 없는 등 활용도가 떨어지는 단점을 갖고 있었다. 그래서 대체물질로 떠오른 것이 탄소나노튜브(CNT: Carbon Nano Tube)다. CNT는 탄소들이 벌집처럼 연결되어 다발형태를 이루고 있는 신소재로 1나노미터(머리카락 1/10만) 크기로 강철보다 100배 강하고 구리보다 1천 배 전기가 잘 흐르는 특성을 갖고 있다.

CNT는 완벽한 구조와 더불어 기계적, 물리적, 전기적 및 열적 특성을 갖고 있으며 전기전자, 정보통신, 에너지, 바이오, 우주항공 등 폭넓은 분야에서 응용가능성이 제시되면서 물리적, 화학적 특성 규명 및 다양한 응용분야에 관한 연구가 수행되고 있다. 그러나 투명전극 제조에 활용된 기존 CNT 기술은 유리 또는 고분자(폴리머) 기판 위에 CNT만을 단독 코팅하거나 바인더(결합물질)와 CNT를 분리하여 다중(多重) 코팅하는 방식이 주를 이뤘다.

이 기술들은 다중 코팅에 따른 공정의 복잡함은 물론 기판과 탄소나노튜브 층 사이의 접착력이 부족하여 쉽게 탈착되는 등의 치명적인 단점을 갖고 있어 상업화에 걸림돌이 됐다. 뿐만 아니라 ITO 코팅 필름이 제품 단가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가장 높음에도 불구하고 거의 전량 수입에 의존하고 있어 수요대비 공급부족으로 인한 수급 불균형 문제가 발생했다. 재료 공급부족으로 시장이 확대되지 않고 있을 뿐 수입액 규모에 비해 실제 국내시장규모는 훨씬 큰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터치폰, 풀터치 노트북, 대형 LCD 터치기능 등 향후 터치패널 적용분야의 급격한 확대가 예상되는 상황에서 원재료 수입 및 공급부족에 따른 심각한 문제가 발생할 가능성 높아 이를 해결할 수 있는 기술의 개발이 절실히 요구되어 왔다.

이런 상황에서 ITO 소재와 기존 CNT 활용 기술의 단점과 한계를 극복하고 지금까지 일본이 독식하고 있던 터치스크린용 투명필름을 '탄소나노튜브 코팅필름'으로 대체하는 기술이 국내 연구진에 의해 개발돼 세계 최초로 상용화를 앞두고 있다.

한국전기연구원(www.keri.re.kr) 이건웅 박사팀 개발에 성공한 'CNT를 이용한 투명전극 제조기술'은 컴퓨터나 휴대전화, 네비게이션의 액정패널 등으로 사용되는 디스플레이 분야 핵심소재인 투명전극을 CNT를 이용한 하나의 코팅액으로 제조할 수 있는 획기적 기술과 활용 방법이다.

이건웅 박사팀은 탄소나노튜브, 용매, 바인더, 안정제, 균일제 등 5개 이상으로 구성된 성분들을 하나의 코팅액으로 만들고 이것을 비닐이나 플라스틱 등에 페인트칠하듯 코팅해 투명한 박막에 전기를 흐르게 하는 투명 고전도성 초박막 제조 기술을 개발함으로써 기존 방식의 문제점들을 일거에 해결했다.

CNT 코팅액을 개발하기 위해서는 CNT의 정제 및 고농도 분산, 용액 내 분산안정화 기술, 각 성분들 간의 용액상 평형 유지 등 재료설계 기술의 해결이 필수적이었다. 특히 탄소나노튜브 순수용액에 하나의 성분이 추가되면 탄소나노튜브 안정화가 쉽게 깨져서 고루 섞인 용액이 되지 않고 쉽게 뭉쳐져 버리기 때문에 5개 이상의 각 성분들 간의 안정화 기술 개발이 최대의 난제였다.

한국전기연구원은 연구원 내 습식공정을 위한 청정실(클린룸)을 별도 설치하고 전문연구랩을 별도 운영하는 등 첨단 핵심 기술의 개발을 위해 적극적으로 투자한 결과, 탄소나노튜브를 이용한 투명전극 제조방법으로는 가장 앞선 기술로 평가받는 이번 기술을 세계 최초로 개발하는 쾌거를 거두었다.

이 기술을 이용하면 물리적으로 여러 번 증착해야 하는 등 복잡한 공정과정을 거쳐야 하는 기존 방식에 비해 한 번의 코팅만으로도 투명전극을 제조할 수 있어 전체적으로 공정 단가를 50% 이상 절감시켜 준다. 즉 한 번의 습식코팅만으로 10-100nm(나노미터) 수준의 초박막 투명전극 제조가 가능하며 대(大)면적 코팅이나 유연한 고분자 기판 위의 성형이 가능하다.

또한 박막에 함유된 나노튜브의 양을 극소화하여 재료 단가도 절감할 수 있어 대체수요가 높을 것으로 예상된다. 아울러 CNT 코팅액은 각 성분의 농도조절에 따라 투명전극 제조를 위한 스프레이 코팅액, 롤 코팅(roll to roll coating)이 가능한 페이스트(paste), 패터닝(patterning)이 가능한 잉크젯용 잉크 등으로의 변환이 용이하다는 점도 큰 장점이다. 또한 각 성분의 농도조절에 따라 터치스크린은 물론 구부림이 가능한 디스플레이(Flexible Display) 등 디스플레이 산업 전반에 다각도로 활용할 수 있는 것도 큰 장점으로 꼽힌다.

무엇보다 이 기술의 가치가 주목받는 것은 차세대 국가성장동력 분야인 디스플레이 부문에서 소재의 국산화를 앞당겼다는 점이다. ITO 자체가 희귀금속으로 전 세계 매장량이 고갈되고 있는 시점이라 국내 디스플레이 산업 발전을 위해 ITO 필름을 대체할 수 있는 재료와 기술 개발이 절실했었다. 이 기술을 이용하면 ITO 대신에 국내에서 얼마든지 제조가 가능한 CNT를 이용하기 때문에 재료의 국산화와 더불어 원가도 대폭 절감할 수 있다.

한국전기연구원은 향후 기술의 완성도를 더욱 높여 정전기 방지용 정전분산 필름 및 트레이, 전자파 차폐 필름 등 외에 디스플레이용 투명전극, 간편하게 휴대가 가능한 플렉시블 디스플레이, 태양전지 등의 각종 유연(flexible) 전극으로 활용할 계획이다. 이러한 기술들도 탄소나노튜브 투명전극 기술과 더불어 성공적으로 개발되어 일본을 넘어서 세계적으로 국위를 선양할 수 있는 자부심으로 성장하길 기대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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