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 이상지 ㈜GG21 공학박사

 

8월 13일 방영된 KBS 추적60분을 통해 기술전쟁을 실감하면서 '지식재산에 대한 총체적인 불감증'으로 흐트러진 우리의 자화상을 되돌아 보게 된다. 한 마디로 지식재산에 대한 불감증이 우려된다. 모 중소기업에서 책임자로 일하던 모 간부 직원이 새로운 방식의 고속 자동문에 관한 설계도면과 카다로그까지 도용하여 같은 분야에서 경쟁업체로 사업을 하는 소위 '기술유출'의 대표적인 사례다.

경찰에 압수된 기술유출로 의심되는 설계도면과 카다로그가 원래의 것들과 비교 분석하여 동일한 것으로 판명이 나는 경우, 법적 소송을 통해 기술도용의 증거물로 인정을 받고 명백한 불법행위로 판결을 받아 내고 도용 당한 기술을 되찾기 위해 모든 것을 걸었다고 곽병철 사장은 밝혔다. 이 일로 3년여 동안 힘겨운 투쟁을 하는 사이에 회사는 거의 문 닫을 지경이라는 하소연이 애처롭게 마음에 꽂힌다.

또 다른 사건은 단순한 기술유출과는 사뭇 다른 특허 분쟁에 관한 사례를 보여 주고 있다. 대덕특구에 위치한 모 중소벤처기업이 30여 년 동안 불가능하다고 알려진 터지지 않은 휴대용 가스레인지에 관한 원천기술을 세계에서 처음으로 개발하여 6개국에 특허로 등록을 완료하고 국가로부터 신기술 인정도 받았다. 실험하는 동안 폭발로 인한 불의의 사고를 당할 수 있는 위험까지 감수하였고, 개발비와 특허 등록 비용까지 수억 원이 들었으나 상업화를 시작한 첫해부터 년 1억 원에 달하는 기술료 수익을 얻었고 수년 내로 년 10억 원 정도의 수익을 기대에 부풀어 있었다고 박진하 사장은 밝혔다.

그러나 기존 제품을 생산 판매하는 1, 2위 기업들이 공정거래위원회 제소와 의례적인 특허무효소송을 했고 박사장 역시 이들을 상대로 특허침해가처분소송을 하는 등 특허분쟁을 겪는 3년 사이에 장미 빛 꿈은 물거품처럼 사라졌고 어려운 상황으로 돌변했다. 결국 승소하여 특허기술을 모방하여 경쟁기업이 유사제품을 생산하고 크고 작은 유통업체에서 판매하는 것은 막을 수 있었지만, 중소벤처기업으로서는 감당하기 어려운 특허분쟁으로 대부분의 시간과 많은 비용을 투입해야 하는 이중고 속에서 기업은 피폐한 나락으로 떨어질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지금까지 언급한 사건들은 국내문제이지만 국제적으로도 유사한 일들은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다. 오늘 날 벌어지는 기술전쟁의 양상은 기술유출, 특허분쟁 및 표준화 등 크게 3가지로 구분해서 생각해 볼 수 있다. 기술유출은 전직 또는 현직의 직원들이나 내부 관련자들이 설계도면이나 생산기술 등을 몰래 도용하는 불법적인 행위로 유발되고, 증거가 드러나는 경우에 범법행위에 대해 처벌하고 손해를 배상하도록 하는 후속조치가 뒤따를 수 있다.

반면에 특허분쟁은 경쟁사간에 특허무효소송이나 특허침해금지소송 및 손해배상청구소송 등 합법적인 절차와 규정에 따라 일어나는 특징을 지닌다. 따라서 특허와 관련된 과학기술적인 내용뿐 아니라 법적인 전문성이 요구되어 복잡할 뿐만 아니라, 비용과 기간이 과도하게 소요되어 대기업과 달리 여러 가지로 취약한 중소기업이 감당하기에는 너무나 벅찬 일로 여겨지는 것이다.

기술유출과 특허분쟁이 정보 수집과 전투를 통해 상대방을 무력화 시키는 기술전쟁이라면 표준화는 무기수출을 위한 전략과 유사한 기술전쟁으로 볼 수 있다. 특허 기술의 국제표준화는 세계 시장을 주도하기 위한 지름길이 될 수 있지만, 특허의 독점적인 권리 때문에 이를 막으려는 표준화 장벽이 점점 높아지고 있다. 따라서 이해를 같이 하는 국가들이 연합하여 동참하는 네트워크를 구성하는 전략적인 접근이 필요한 것이다.

지식재산권 3대 강국으로 통하는 미국과 일본 및 유럽연합(EU)은 선진국 중심의 특허 전략을 한층 강화하며 우리나라와 같은 지식재산권 후발국가들의 추격을 그냥 두지 않겠다는 의지를 보이며 한치의 양보도 없이 지식재산권의 보호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선진국간의 특허 심사체계의 단일화 및 정보교류 등 지식재산권을 둘러싼 네트워크를 공고히 다지는 양상을 보면, 국가적으로 특허 전략이 미흡하고 소극적으로 대응하는 국가들이 특허 영향력을 반영한 기술력 격차는 이들 선진국과 더 크게 벌어질 것이 뻔하다.

특허를 가장 강하게 보호하는 미국의 특허 정책은 정부와 관련 민간단체간의 활발한 교류를 바탕으로, 통상정책과 특허정책을 일원화하여 연동하고 지식재산권을 무기화하고 있다. 미국 정부는 자국 기업이 국가간에 특허분쟁으로 이어지는 사안에 대해 적극적으로 개입하여 수출입규제를 강화하거나 완화하는 등 상대국에 통상압력을 행사하는 방식으로 자국 기업에 유리하게 특허분쟁을 해결하기도 한다.

2007년도에 수립한 '특허청 5개년 전략계획'은 원천기술 개발에 강한 미국 기업들이 특허경쟁에서도 지속적으로 우위를 점할 수 있는 경쟁력 강화에 그 목적이 있다. 과학기술과 특허정책의 조직적인 연계를 통한 지식재산제도 개혁과 지식재산권에 대한 보호체계 강화에 주력해온 일본은 2002년도 '지식재산전략회의'를 창설하고 '지식재산전략기본법'을 제정한 데 이어 총리산하에 각료 전원과 민간 전문가들이 참여하는 ‘지식재산전략본부’를 구성한 것은 눈 여겨 볼만하다.

지식재산전략본부에서는 자국 중심의 특허 국제표준을 주도하고 국경을 넘어 인적.제도적 네트워크 강화하기 위해 '국제표준전략종합계획'을 구체화하고, 특허 서비스의 혁신을 통한 경쟁력 강화를 위한 '지적재산계획'을 발표하기도 했다. 더구나 자국 기업의 지식재산 분야 경쟁력 강화를 위한 법률 제정과 함께 특허 고등재판소도 설치를 했으며, 지식재산권을 전문적으로 취급하는 부서를 늘리고 특허 전문 변호사를 늘리는 등 전문화를 바탕으로 지식재산 소송의 심리기간을 대폭 단축시키는 등 혁신적인 변화를 하고 있다.

유럽연합은 EU 회원국들의 지식재산을 통일하여 효율성 확보와 함께 수속을 간소화하고 비용을 줄이기 위한 '범 유럽 단일특허시스템'의 구축을 꾀하고, EU 회원국의 특허 데이터베이스를 공유하고 상호간에 협동하며 업무를 적절히 분담하기 위한 '유럽특허네트워크'를 도입하는 등 질적인 지식재산 경쟁력 강화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과학기술과 지식재산권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범국가적으로 역량을 집결하여 전략적인 대응책을 마련한 선진국에 비해 돈이 될만한 핵심기반 원천 특허기술이 부족한 우리나라의 실정은 특허료 수익 면에서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국가적으로는 특허료가 대부분인 기술무역수지가 2003년 24억 달러, 2004년 27억 달러, 2005년 29억 달러에 이어 2006년에도 29억 4천만 달러로 규모가 늘어나는 만년적자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러한 점은 특허 출원 및 등록 건수에 있어서 미국의 IBM에 이어 세계 2위를 달리는 삼성전자의 경우 특허수지 적자가 2010년까지 매년 늘어날 것으로 예상되는 상황을 봐도 알 수 있다.

우리나라는 국가과학기술자문위원회(위원장 대통령)에서 범부처 차원의 '지식재산전략체계'를 구축하여 지식재산 5대 전략을 수립하고 세부과제들을 수행하고 있지만, 이제 막 시작하는 단계로 정부와 민간의 역량을 모아 기술전쟁에 총체적으로 대응하는 선진국에 비해 한계점을 보이며 뒤떨어지는 것으로 평가 받고 있다.

스위스 국제경영개발원이 집계한 국가경쟁력 지수 중 지식재산권의 보호 정도는 세계 40위권 밖으로 밀려 있는 수준이라는 점으로 미루어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미래를 움직이는 세계적인 원천 기술의 특허 하나는 차세대 먹거리 창출을 위한 핵심이다. 보통 하나의 기술이 개발되어 상용화되기까지 10년 내지 20년이 걸린다는 점을 감안하면, 정부출연연구기관, 대학, 대기업뿐 아니라 중소기업까지 포함하여 세계적인 특허 기술을 제대로 발굴하고, 선택된 특허 기술을 적극적으로 보호 육성하는 일 또한 시급히 국가에서 해야 할 일이다.

'미래를 대비한 전 방위 지식재산전략'을 마련하고 적극적인 정책을 추진하기 위한 국가지식재산총괄기구를 설립하는 등 보다 적극적이고 종합적인 대책을 마련하는 것은 더 이상 선택이 아니라 필수다.

저작권자 © 헬로디디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