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중국 문화의 원류를 가다-3…역사에 대한 관심 등 눈길

섬서성은 한국에서 직항이 있어 바로 갈 수 있다. 비행시간은 약 2시간 30분. 통일신라시대 당 유학을 가는 스님들은 몇 개월이 걸려야 했을 장안행이었을게다. 그런데 지금 걸리는 시간은 2시간 30분. 좁혀진 만큼 교류도 활발해졌을까?

비행기의 3분의 1만이 좌석을 채운 것으로 보아 아직은 시간이 좀 더 걸리리라는 느낌을 받았다. 섬서성을 둘러보면서 느끼는 전반적인 소회는 중국의 '과거'는 분명 우리 선조들 입장에서는 족탈불급이었을 것이라는 점이다.

황토 고원과 관중 평원이란 드넓은 지역에서 나오는 농업생산물은 우리로서는 도저히 따라갈 수 없었을 것이다. 풍부한 물산을 기반으로 형성된 문화와 실크로드를 통해 접목된 페르시아 문명은 새로운 시너지 효과를 내며 경쟁력을 높여 주었을 것이다.

여기에 발달된 과학기술은 중국의 생산력을 한층 고양시켰을 것으로 미루어 짐작된다. 섬서성 박물관에 있는 유물의 규모와 품격, 종류 등은 분명 한국의 박물관에서는 볼 수 없는 것이었다. 당에 유학온 신라승들이 귀국 거부 사태를 빚었다는 이야기에 수긍이 가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의 모습을 살펴보고 앞날을 내다보면 어떨까?

지금은 한국의 모습은 분명 선진국에 버금가는 환경속에 살고 있다. 주택 수준이나 쇼핑 공간, 도로 시설, 교통 체계 등등은 중국의 다른 지역은 몰라도 서안 보다는 훨씬 나아보였다.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과학기술과 산업 수준이 중국 보다 앞섰기 때문이고, 여기에 시민들의 의식도 뒷받침됐기 때문이라고 짐작됐다. 즉 과거에는 농업생산성이 생산력의 주요 요소였는데, 현대 사회로 올수록 2차 내지 3차 산업의 부가가치가 높아졌다.

물리적인 면적의 규모 보다는 단위 면적당 부가가치가 더욱 중요해진 것이라 할 수 있다. 주지하다시피 반도체와 휴대폰, 조선, 자동차, 철강, 석유 제품 등등의 첨단 산업을 한국은 갖고 있고, 중국은 이 부분이 취약한 것이 두 나라의 차이를 만드는 원인이 된 것이다. 여기에 대덕특구의 기술력이 일정 부분 기여했다고 본다. 앞으로는 어떨까?

당분간 이 리드가 이어질 수 있으리라고 보이지만 낙관적이지만은 않다. 가장 큰 이유는 산업이 아니라 문화 때문이다. 장이모이 감독이 보여준 올림픽 개막식과 같은 규모와 내용, 감동을 우리가 만들기는 쉽지가 않아 보인다. 특히 이 부분이 인문학에 기반을 두고 나온 작품임을 생각할 때 한국은 기술 수준은 어느 정도 있지만 역사학과 철학, 문학, 예술 등등의 인문학 전통이 두텁지 못하다는 것은 인정할 수 밖에 없는 듯 하다. 바로 이 점이 앞날에 대한 낙관을 어렵게 하지 않나 여겨진다. 그럼 방법이 없을까?

올림픽을 보면서 메달을 따는 선수들로부터 해답을 얻을 수 있다고 본다. 이번 올림픽에서 한국을 넘어 아시아의 영웅이 된 박태환 선수의 경우를 보자. 박 선수가 수영을 시작한 것은 7살때라고 한다. 1996년부터이다. IMF 직전의 시기로 한국에서 버블이 꺼지기 직전이니 최호황기라고 볼 수 있다.

그리고 버블이 꺼져서 상황이 어렵다고 해도 과거처럼 기아선상으로 우리가 돌입한 것은 아니다. 재능이 있는 사람은 발굴하고 지원할 수 있는 시스템들이 갖춰졌다고 할 수 있다. 박태환 선수 본인이 일차적으로 가장 중요하지만, 이를 지원할 수 있는 좋은 감독이 있었고, 첨단 장비의 지원을 받아 훈련을 체계적으로 할 수 있었고, 필요하면 해외에서 훈련을 받을 수도 있었다.

마치 과학 영재가 성장하는데는 개인의 머리뿐 아니라 체계적 지원이 절대적인 것과 같다. 이러한 시스템의 마련은 재원과 함께 사회 전체의 수준이 향상돼야 한다. 또 많은 선수들이 실패에서 배우며 부단히 자신을 훈련시켰다. 연습에 연습을 더했고, 상대를 탐구했으며, 지속적으로 학습을 해왔다. 우리가 중국과 일본이란 대국을 곁에 두고 생존하기 위해서는 선수들의 이러한 자세에서 많이 배울 수 있지 않나 여겨진다.

서안에서 인상적으로 본 장면이 몇 개 있다. 하나는 오전 6시반 서안 성정부 앞 광장에서 있는 국기게양식. 일단의 군인들이 오성홍기를 갖고와 국가가 울리는 가운데 게양식을 엄숙히 거행하고 한켠에서는 소년소녀들이 거수경례를 하고 있다. 중국의 국기 게양식과 하강식은 엄숙하고 볼만하다. 공동체의 일원임을 공유할 수 있는 자리로도 여겨진다.

한국은 권위주의에다 강요된 애국심의 상징으로 여겨지며 이런 의식이 없어져 가고 있는데, 이방인의 눈에 의미있게 여겨졌다. 아이들이 게양식이 끝난 뒤 기념사진을 찍는데, 아이들을 인솔해온 어른들의 유니폼에 적힌 문구가 독특하다. 소년강 즉국강(少年强 則國强). 소년이 튼튼하면 나라가 튼튼해진다는 말이다. 전적으로 옳은 말이다.

애국심은 그냥 키워지기도 하지만 선대가 해온 일을 알리고, 의식을 행함으로 더욱 키워지기도 한다. 과거에는 강압식으로 할 수 밖에 없었지만 이제는 자율에 기반을 두고 충분히 해낼 수 있을 것이란 생각도 든다.

 

▲오전 6시30분 성정부 앞에서 중국 국기 게양식이 거행되고 있다. ⓒ2008 HelloDD.com
 

▲오성홍기가 올라가는 동안 학생들이 거수 경례하고 있다. ⓒ2008 HelloDD.com

두 번째는 CCTV 아침 뉴스에 나오는 앵커들의 모습. 우리는 정장에다가 얼굴이 굳어있다. 선진국 앵커들은 웃으면서 방송을 진행하는데 우리는 딱딱하다고 이전에도 생각했는데 중국만해도 앵커들이 부드러운 표정을 짓는 것을 보면서 우리가 뭔가 변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여겨졌다. 게다가 복장도 양복 웃저고리를 안입기도 하고, 남방 셔츠를 입는 등 변화를 주는게 보기 괜찮았다. 보는 사람에 따라 의견이 다를 수 있겠지만 변화를 준다는 점에서 이채롭게 여겨졌다. 아침뉴스의 제목이 조문천하(朝聞天下).

아침에 듣는 천하의 소식이라고 번역할수 있을까? 스케일이 작지 않다는 느낌이지만 국제 뉴스의 비중이 우리보다 많고, 중국 사회 전반을 다룬다는 점에서 그 스케일이 부러웠다. 조간신문 브리핑 같은 코너도 있는데, 디스플레이의 상표명을 그대로 쓰는 것도 눈에 띄었다.

우리는 간접 광고로 규제의 대상이 될 수도 있을 것으로 여겨졌는데, Haier 상표를 그대로 쓰는게 오히려 우리보다 자본주의 국가로 여겨졌다. 일기 예보를 하면서도 중국의 유명 관광 지역을 골고루 번갈아 사진과 함께 알려주는 것도 색달라보였다.
 

▲CCTV의 아침뉴스인 ‘朝聞天下’ 진행자의 모습  ⓒ2008 HelloDD.com
 

▲아침뉴스에 나오는 디스플레이에 Haier의 상표명이 선명하다. ⓒ2008 HelloDD.com
 

▲아침뉴스 가운데 일기 예보를 하며 명승지를 소개하는 것도 눈에 띄였다. ⓒ2008 HelloDD.com

세 번째는 아침 운동모습. 광장과 공원 등에서 많은 사람들이 태극권과 에어로빅, 댄스 등을 자유롭게 했다. 조깅과 배드민턴 등도 활발하게 했다. 사마천의 고향인 한성시에서도, 서안에서도 공통적으로 볼 수 있는 풍광이다. 아침에 운동으로 건강을 다지고, 하루를 활기차게 시작하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다. 게다가 혼자하는 것이 아니라 함께한다면 공동체 의식을 더욱 다지며 행복지수를 높일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여겨졌다.
 

▲섬서성 정부 건물 앞 광장에서 시민들이 아침 운동을 하고 있다. ⓒ2008 HelloDD.com

네 번째는 곳곳에 붙은 올림픽 성공 기원 구호들. 황제릉 부근에서는 '인문 올림픽, 황제와 함께'란 구호가 눈에 띄였다. 중국은 이번 올림픽을 단순 운동경기가 아닌 인문 올림픽으로 개념 정의를 하고 있다. 인간생활의 종합으로서의 올림픽으로 한 차원 다르게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 가운데 황제는 수레를 발명하는 등 인간들의 생활을 편리하게 하는데 큰 공헌을 한 인물이고, 그런 만큼 인문 올림픽에 맞다는 발상인 듯 하다. 또다른 구호는 '자강애국심, 자신중국인'. 애국심을 스스로 키워, 중국인으로서의 자신감을 갖자는 뜻인 듯 하다. 올림픽을 통해 애국심을 키우고, 세계를 리드하는 중국인으로서의 자부심을 갖자는 것이리라.
 

▲인문 올림픽과 중국 문화의 연계를 시도하는 플랜카드 ⓒ2008 HelloDD.com

다섯 번째는 역사에 대한 활발한 학습이다. 중국 최대의 서점 체인망인 신화서적을 가보거나 관광지를 가보면 중국 역사에 대한 많은 관련 서적이 놓여 있었다. 우리에도 알려진 ‘대국굴기’책도 보였다. DVD 가운데도 역사 강좌를 녹화한 것이 많이 눈에 띄였다. 주변국인 일본의 역사 인물에 대한 책들도 모여 있었다. 한국의 역사와 관련한 것은 그닥 보이지 않았다. 우리의 역사 학습이 미흡하지 않나 여겨지는 대목이었고, 우리가 우리에 대해 많이 알아야 이웃에도 알릴 수 있지 않나 생각됐다.
 

▲서점에 진열된 책 가운데 대국굴기가 보인다. ⓒ2008 HelloDD.com

이번 중국 여행은 과거 중국이 영화를 누렸던 漢唐시대로의 발길이었다. 분명 고대 중국은 실크와 도자기, 차 등 무기가 아닌 문화 상품으로 서양을 비롯 세계에 큰 영향을 미쳤다. 근대 문명에 뒤지며 서양 열강에 수도가 짓밟히는 수모를 딛고 이제 다시 세계에 우뚝섬을 보여주고 싶은 욕심이 있는 것은 당연하고, 그럴 문화적 토대도 강하게 갖고 있다.

이번 여행을 통해 중국의 탄탄한 인문학적 기반을 확인했다. 그러면서 주변국인 우리로서는 중국과의 공존공영을 위해서도 한국 스스로가 제대로 자리매김을 위해 실력이 필요함을 다시 한번 깨닫게 했다. 과거 한반도가 취약했을 때 동북아의 균형은 깨지고 전란이 일어났으며 중국과 일본에도 많은 영향이 있었음은 역사가 말해준다. 동북아의 평화와 번영을 위해서도 한국이 자기 실력을 갖추고 당당하게 나아가야 하며, 과거의 영광을 가진 제국에 뒤지지 않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꾸준한 학습이 필요함을 다시 한 번 강하게 느꼈다.

특히 과학기술은 강소국이 되기 위해 절대 필요한 변수이며, 과학자들이 제대로 연구하기 위해서는 과학자들도 인문학적 배경을 갖고 좀 더 폭넓게 사고해야 하지 않나 여겨졌다.

저작권자 © 헬로디디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