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중국 문화의 원류를 가다-2…병마용갱 화청지 등 보물창고

중국 섬서성 일대와 성의 수도인 서안은 중국 문명의 원류라고 칭해진다. 현재 중국의 수도는 베이징이지만 그 역사는 오래되지 않는다. 1420년 명 영락제의 천도로 수도로 정해졌으니 채 6백년이 안됐다.

그에 비해 서안은 기원전 1천년에 주나라의 수도로 시작해 10세기 당나라 장안에 이르기까지 2천년 가까운 역사를 갖고 있다. 특히 周 秦 漢 唐 등 중국 고대사의 중심지였다. 이번 베이징 올림픽 개막식 주제가 强漢盛唐으로, 강력한 한나라와 융성한 당나라의 재현을 표방했는데 당시 수도인 서안은 그만큼 중국을 이해하는 키워드라 할 수 있다.

서안을 중심으로 많은 유적지가 분포돼 있다. 30여년전 농민들이 우물을 파면서 발굴한 진시황 병마용갱과 주변의 진시황릉, 유방과 항우가 천하를 놓고 싸우며 운명의 순간이 됐던 홍문연 유적지, 당 태종 이세민과 서유기의 주인공 현장법사의 이야기가 담겨있는 대안탑, 당 현종과 양귀비의 러브 스토리가 나온 화청지, 중국 최대의 모스크인 청진대사, 평지성으로는 중국 최대 규모인 서안성 등등 이루 헤아리기가 어려울 정도이다.

특히 최근에는 중국 부흥과 더불어 한족의 시조로 역사에 기록된 黃帝의 릉이 새롭게 단장돼 또 하나의 명물이 되고 있다.
 

▲황제릉 입구, 베이징 올림픽의 구호인 하나의 세계, 하나의 꿈이란 글이 걸려있다. ⓒ2008 HelloDD.com

이 가운데 황제릉과 서안성곽, 진시황릉 및 병마용갱, 화청지, 섬서성 역사박물관 등에 대해 이야기해보겠다. 황제릉은 한국 사람들이 쉽게 가지 않는 곳이다.

중국인의 시조인 황제의 묘인만큼 한국인에게는 피부로 와닿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가 단군을 중시하듯이, 중국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 시조는 누구이고, 어떻게 모시고 있는지를 아는 것은 필요하다고 하겠다. 황제릉은 입구에서부터 사람을 압도한다.

주차장에서 매표소까지 가는데 걸리는 시간은 도보로 약 5분. 호수를 건너고 3백 가까운 층계를 올라야 한다. 표를 사고 들어가면 바로 보이는 것이 황제가 심었다는 측백나무. 안내석에는 수령 5천년이라고 명기돼 있다. 황제가 신화속 인물이 아니라는 반증을 이 나무에서 찾기도 한단다.

 

▲황제릉 초입에 서있는 측백나무. 5천년 수령이라고 적혀있다. ⓒ2008 HelloDD.com

황제를 모시는 건물 근처에는 몇 가지 비석이 서있다. 손문과 모택동 등 근대 정치사의 중요 인물들이 방문을 기념한 석물. 중국 본토와 대만의 통일이 가능한 이유를 체제를 뛰어넘어 같은 민족으로 묶어주는 공통의 아이콘이 있는데서 찾는데, 그것이 바로 황제라는 것이다. 홍콩과 마카오의 반환을 기념해 세운 석물도 눈에 띄인다.
 

▲황제릉 내에 있는 홍콩 및 마카오 반환 기념비 ⓒ2008 HelloDD.com
 

▲중국인은 염제와 황제의 자손이라는 모택동의 글씨, 맞은 편에는 손문의 글이 새겨진 비가 있다. ⓒ2008 HelloDD.com

이어 또 5분여를 올라가면 한 변의 길이가 50m는 됨직한 커다란 사각 모양의 건물이 보인다. 지붕은 뻥 뚫려있어 그곳으로 햇빛이 자연적으로 들어온다. 많은 사람들이 그 구멍 아래서 두 팔을 위로 뻗치고 서 있고, 사진도 찍는다. 그 구멍속으로 들어온 하늘의 기운을 받는 일종의 퍼포먼스란다.
 

▲황제 기념관, 가운데 큰 원이 뚫어져 있는 독특한 양식이다. ⓒ2008 HelloDD.com

황제릉은 산으로 한참 올라가야 겨우 보인다. 무덤에는 황제의 옷자락만 묻혀있다고 전한다. 황제가 옥황상제의 부름으로 하늘로 올라가는데 인간들이 이를 말리며 겨우 옷자락 한 켠만 갖게 됐고, 이 천을 무덤에 묻었다는 것이다. 황제릉에는 많은 중국인을 비롯해 해외의 화교들이 필수 방문 코스로 잡혀 이곳에 절하고 분향하며 기부도 한단다.
 

▲진시황릉의 모습, 나무들로 뒤덮인 야트막한 야산의 모습이다. ⓒ2008 HelloDD.com

진시황릉과 병마용갱, 화청지 등은 시안의 동편에 위치해 있다. 진시황릉은 높이 50여m의 야산과 같은 형태이다. 릉에는 석류나무 등이 촘촘히 심어져 있다. 능의 정상까지 올라갈 수 있도록 층계가 나있다. 진시황릉은 2천여년전에 축조돼 그 상태가 지속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있다. 사기에는 수은으로 진시황릉을 감쌌다는 기록이 있는데, 최근 탐측한 결과 황릉 부근의 수은량이 주변 지역에 비해 현저히 높은 것으로 나타나 본래 상태 그대로 유지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진시황릉 위에서 내려다 본 모습 ⓒ2008 HelloDD.com

진시황릉에서 동으로 약 1.5km정도 떨어진 곳에 발견된 것이 병마용갱이다. 1974년 우물을 파던 농민에 의해 우연히 발견됐다. 약 7천개의 도용이 발견됐는데, 이들의 얼굴이 모두 달라 실존인물을 앞에 놓고 제작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1호갱과 2호갱은 전투 부대이고, 3호갱은 지휘부이다. 이곳에서 발견된 전차는 동으로 제작된 가운데 실제의 2분의 1크기로 제작됐다. 병마용갱에서 발굴된 칼이 크롬도금이 되어 9장의 백지를 한꺼번에 자를 수 있었고, 마차에 쓰인 마구들은 주조와 용접에 있어 당시 최첨단 기술이 사용된 것으로 밝혀졌다.
 

▲병마용갱의 모습, 1호갱은 길이가 2백30m에 달한다. ⓒ2008 HelloDD.com

1호갱의 경우 길이가 동서로 2백30m, 남북으로 62m에 달해 그 규모에 놀라게 된다. 당초 발굴되었을 때는 도용들이 채색돼 있었는데, 이것이 공기에 노출되면서 날라갔는데, 현재는 이를 방지할 수 있는 기술이 개발돼 앞으로의 발굴이 기대되고 있다는 말도 들린다.
 

▲병마용갱에서 출토된 마차의 마구. 정교함이 눈길을 끈다. ⓒ2008 HelloDD.com

화청지는 양귀비와 당현종의 로맨스를 담은 곳으로 사람들의 인기를 끌고 있고, 중국 현대사에서는 장개석을 억류해 국공합작을 성사시킨 시안사건의 무대이기도 하다.
 

▲화청지에 있는 양귀비의 조각상 ⓒ2008 HelloDD.com

서안성곽은 명대에 축조된 것이다. 우리나라의 대부분의 성이 산성임에 비해 서안성곽은 평지성이다. 그 규모에 있어서도 성곽위의 넓이가 마차 4대가 경주를 할 수 있었다는 기록에서 보듯이 위 부분의 폭이 12m~14m에 이른다.
 

▲서안성곽위의 도로, 마차 4대가 경주할 수 있는 정도의 넓이다. ⓒ2008 HelloDD.com

서안방문의 필수 코스로 추천할 만한 곳은 섬서성 역사 박물관이다. 중국은 역사 유물의 현지 보존 윈칙을 강하게 따르고 있다. 우리나라처럼 좋은 것, 중요한 것을 서울에 있는 중앙박물관에 다 모아두는 것이 아니라 유물이 발굴된 현장에 박물관을 세우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가령 최근 태안에서 고려청자가 많이 발굴되는데 그곳에 국가급 박물관을 세우는 것이다. 때문에 중요문물은 다 현지에 있고 그곳에 가야만 볼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서안은 2천년 가까운 세월, 특히 중국의 고대와 중세에 있어 중심도시라는 점에서 중국 이해에 많은 도움이 된다고 할 수 있다. 섬서성 역사박물관에는 병마용을 비롯해 너무나 많은 유물이 전시돼 있다. 3천년전의 수도관이나 2톤 가까운 청동기, 각양각색의 도기 등등이 전시돼 있다. 중국이 서방세계에 이름을 알린 세가지 물건이 있다. 비단과 도자기, 차가 그것이다. 비단은 로마의 키케로가 로마 여인들이 비단 때문에 알몸이 된다고 할 정도로 인기가 있었고, 도자기 그 중에서도 당삼채는 중국을 알리는 아이콘이 되어 도자기 한 점이 저택 하나의 값이 될 정도로 고가에 팔렸다.

차는 나중에 무역역조를 시정하기 위해 영국이 아편전쟁을 일으킬 정도로 유럽에서는 선풍적 인기를 끌었다. 섬서성 역사박물관의 마지막 켠을 장식하는 당삼채를 비롯한 당나라의 도자기들은 다른 데서는 보기 어려운 진품들로 많은 사람들의 눈길을 끌고 있다.
 

▲섬서성 역사박물관에 전시된 당삼채로 만들어진 사천왕상 ⓒ2008 HelloDD.com
 

▲당삼채로 만들어진 말 ⓒ2008 HelloDD.com

박물관에서 특이한 점 가운데 하나는 사진 촬영을 허용하는 점. 우리나라는 절대 금지로 하고 있음에 반해 이곳에서는 유물에 직접적인 플래쉬가 터지지 않는한 촬영이 가능했다. 전문가의 이야기로는 유물에 미치는 영향이 극히 미미하고, 오히려 유물을 널리 알릴 수 있다는 점에서 촬영 허용이 타당하단다.

섬서성 일대는 이른바 천하의 제패를 다투었던 중원의 중심지역이고, 서방과의 교역 루트인 실크로드의 출발점으로 고대 국제화의 상징으로 여겨지는 지역이다. 현재의 베이징이 갖고 있는 다소 폐쇄적인 모습과는 달리 개방적이고 평화우호적인 모습이 엿보이는 지역으로 중국의 다양한 면모를 이해하는데 꼭 필요한 지역으로 추천할만하다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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