强漢盛唐 이해의 키워드는 歷史…중국 역사의 고전 史記의 고향을 가다

베이징 올림픽 개막식에서 장이모우 감독이 또하나의 걸작을 보여주었다. 강한성당(强漢盛唐)이란 중국의 최전성기 모습을 재현하며 21세기 세계를 주름잡는 강대국으로 다시 등장하겠다는 의사의 표현이다. 이런 가운데 베이징 올림픽 직전 강한성당의 주무대인 섬서성 서안을 다녀온 대덕밸리인이 있다. 그가 글과 사진을 보내왔다. 중국 문화의 원류인 사마천의 사기와 중요 역사 유적 등을 통해 중국의 갈 길을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기를 바라는마음에서 글을 싣는다. [편집자 주]

중국이 우리에게, 아니 세계에 새롭게 다가오고 있다. AP통신은 베이징 올림픽 개막식을 통해 중국이 세계로 걸어나온 것이 아니라 우뚝 솟아올랐다고 표현하며 중국의 존재를 비중있게 받아들였다.

때마침 중국 문화의 원류라고 할 수 있는 서안을 올림픽 직전에 다녀올 기회가 있었다. 목적도 순수 역사 탐방. 이번 개막식에도 나온 진나라 시대를 엿볼 수 있는 진시황릉 및 병마용갱과 중국인이 시조로 인식하는 황제(黃帝)를 모시는 황제릉, 진 멸망이후 천하쟁패의 주역인 유방과 항우의 역사가 얽힌 홍문연, 실크로드를 개척한 한무제의 무덤인 무릉, 당의 고승인 현장법사가 주지를 지낸 대자은사 등등을 둘러보았다.

또한 아침 산책과 야시장 방문 등을 통해 중국인들의 현대 생활을 둘러볼 기회를 가졌다. 그 내용들을 올린다. 이를 통해 중국을 조금이나마 이해하고, 바람직한 한중관계 수립은 무엇인지에 대해 고민하는 기회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총 3회에 걸쳐 쓴다. 첫회는 중국 역사를 이해하는 열쇠에 해당하는 사마천과 그의 사서인 사기에 대한 내용이다. 두 번째는 서안과 주변의 역사 유적지 방문기이다. 끝으로 오늘을 사는 중국인들의 일상은 어떤지 알아본다. 사정이 있어 익명으로 기고함에 대해 읽는 분들의 양해를 바라는 바이다.

장이모우 감독의 개막식은 크게 둘로 나눌 수 있다. 과거와 현재 및 미래. 중국의 5천년 역사를 이해하는 대표적 아이콘은 사마천의 사기(史記)이다. 토사구팽, 다다익선, 관포지교,오월동주, 와신상담 등등의 많은 고사성어가 여기에서 비롯됐다. 대역사가 사마천의 고향인 한성(韓城)으로 가는 길은 단조로웠다.

서안에서 고속도로를 3시간 달리자 도착한다. 여정 내내 펼쳐지는 풍광은 끝없는 황토고원. 섬서성은 3개 지역으로 나뉜다. 상부 황토고원, 중부 관중평원, 하부 한중분지. 황토고원은 황토로 이뤄진 섬서성의 대표적 지형이다. 황사에 의해 형성된 풍부한 무기질의 토양이 수천년에 걸쳐 켜켜이 쌓이며 형성됐다. 비옥한 땅으로 적은 강우량에도 불구하고 풍성한 수확을 약속했다.

사마천은 이런 황토에서 태어났다. 사관이었던 아버지 사마담의 뒤를 이어 한무제 때 역사 기록을 총괄하는 태사령이 됐다. 사마천은 중국을 세 차례에 걸쳐 순회했다. 첫 번째는 20세에 시작했다. 2년에 걸쳐 대장정으로 중국사의 중요한 현장을 찾았다. 이어 33세와 35세에 한무제를 따라 지방을 돌아다니며 역사의 현장을 둘러볼수 있었다. 사마천이 태어난 서촌이란 곳에는 그가 공부했던 서당이 있다. 동시에 이곳은 나중에 그를 제사지내는 사당이 되기도 한다.

사당에는 그의 위패가 모셔져 있고 풍추사마(風追司馬)라고 씌여진 붉은 깃발이 걸려있다. '바람도 사마천을 따른다'는 뜻인데 모든 풍속이 사마천에서 비롯됐고, 그의 영향이 매우 크다는 의미란다. 사당의 일부는 무너진 채 방치돼 있다. 역사의 성인(史聖)이라고 추앙받는 인물이기는 하지만 실제 세계에서 인정받기에는 다소 시간이 걸릴지 모르겠다.

사마천의 묘를 찾아 나섰다. 그의 묘는 높은 산등성이에 자리잡고 있다. 묘에 이르기까지 절의 일주문 같은 문을 몇 개 지난다. 그 앞에 달려있는 편액에 담긴 글이 심상찮다. 첫 번째가 고산앙지(高山仰止). 높은 산은 우러러볼수록 높아보인다는 뜻으로 사마천의 높은 학덕을 찬양하는 것이다. 이어 나오는 것이 사필소세(史筆昭世). 역사가의 붓이 세상을 밝힌다는 뜻으로 사마천의 붓이 세상에 새로운 기준을 제시한 것에 대한 평가이다.

그의 무덤 바로 앞에 있는 사당에 걸린 편액은 문사조종(文史祖宗). 문학과 역사학이란 인문학의 출발점이란 뜻이다. 사마천이 사기를 통해 남긴 기록들은 단순한 역사적 사실의 나열이 아니라 사실에 기초해 인간미가 물씬 느껴지는 문학작품이기 때문이다.

그의 묘에는 다섯 그루의 측백나무가 무성한 잎을 드리우고 자라고 있다. 우리나라의 무덤과는 달리 중국의 무덤에는 나무가 심어 자라게 하는데, 특히 큰 나무가 사마천의 묘에 뿌리 내리고 있다.

한국 최고의 사마천 전문가인 김영수 교수는 '역사의 등불 사마천, 피로 쓴 사기'란 책에서 "사마천은 일반 대중과 함께 호흡하는 공적이고 책임 있는 지식인 상의 전형"이라며 "궁형이란 남성으로서는 최악의 형벌을 받고 피로 쓴 사기란 역사책은 인문학의 출발점일 뿐 아니라 과거를 통해 미래를 여는 열쇠"라고 극찬한다.

사마천 묘에는 평일임에도 불구하고 외국인 두 명과 많은 일반 중국인들이 눈에 띄였다. 이곳을 찾은 한 인사는 "지난해만해도 볼 수 없었던 광경"이라며 "중국인들의 역사에 대한 관심이 부쩍 늘어난 것 같다"고 밝혔다.

그럼 사마천의 사기란 어떤 책일까? 2천년전에 지어진 중국 역사서이다. 여기에는 전설상의 인물로 여겨지는 중국인의 시조로 일컬어지는 황제(黃帝)를 비롯해 주나라와 춘추전국시대, 중국 최초의 통일왕국인 진나라와 그에 이은 한나라의 4대 임금인 무제에 이르기까지를 다뤘다.

오래된 책임에도 지금도 최고의 역사서로 평가받고 있다. 그 이유는 역사책 서술의 표준이 되었을 뿐 아니라 사마천의 인간에 때한 냉철하면서도 따뜻한 사관이 2천년이 지난 지금에도 따라갈 책이 없을 정도로 빼어나기 때문이다. 중국의 사상가인 양계초는 史記에 대해 이런 평가를 내린다. "사기는 인류 전체의 수천년간에 걸친 총체적 활동을 한 용광로에 녹여낸 것이다. 이로부터 역사를 전체로 인식하고 영원히 계속되는 것이라는 생각을 갖게 됐다."

사마천은 사기에서 이런 말을 한다. "지난 일(과거)을 기술하여(현재), 올 것(미래)을 생각한다." 사마천의 이 말은 지금도 유효함을 베이징 올림픽 개막식은 보여주었다. 장이모우 감독은 과거의 영광과 문화를 현재에 재해석하며, 더 나아가 미래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비록 중국 중심의 서술이고, 세계화에 대한 아쉬움은 있지만 사마천의 역사에 대한 인식 바탕위에서 미래가 준비되고 있음을 알게 된 것이다.

중국은 최근 유난히 역사를 강조한다. CCTV가 2006년 12편의 대형 다큐멘터리로 제작한 '대국굴기'가 그렇고, 2007년에 1840년 아편전쟁이후 올림픽 개최 직전의 중국 역사를 다룬 '부흥의 길'이란 다큐멘터리가 가장 비근한 예이다.

장이모우 감독의 베이징 올림픽 개막식 주제인 '强漢盛唐'도 과거를 오늘에 기술하며, 미래에 다시 중국 중심의 세계를 만들어보겠다는 의지의 표명이다. 구심력이 강하게 될 경우 주변부는 소용돌이에 휘말려 들어가게 돼 있는 것이 자연의 이치이다.

강한 중국에 앞으로 한반도, 특히 남한의 운명은 어떻게 될 것인가? 사마천은 우리가 중국 문화를 이해하는 열쇠임과 동시에 그의 역사에 대한 분석은 우리의 앞길을 헤쳐나가는데도 유용할 것으로 보여진다.
 

▲사성(史聖)이라고 불리는 사마천의 묘와 그를 모시는 사당의 모습 ⓒ2008 HelloDD.com
 

▲문학과 역사의 아버지에 해당한다고 말할 정도로 그에 대한 평가는 높다. ⓒ2008 HelloDD.com

▲역사가의 붓이 세상을 밝힌다는 내용으로 역사서인 사기의 중요성을 표현했다. ⓒ2008 HelloDD.com
 

▲사마천의 묘. 측백나무가 자라고 있다. ⓒ2008 HelloDD.com
 

▲사마천 생가 부속건물. 세월의 흐름과 함께 부서진채 있다. ⓒ2008 HelloDD.com
저작권자 © 헬로디디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