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견수렴 위해 연간 50회 이상 현장 찾아
아웃컴 평가로 '미래가치 인정'… 연구자 '사기' 최우선

MB정부 들어 추진되고 있는 과학기술계 재편 움직임을 바라보면 '시스템을 위한 시스템 개혁'인지 '국가 연구역량 강화를 위한 시스템 개혁'인지 의구심이 든다.

과학계 개편과 관련, 일본의 개혁과정 사례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일본은 7년 전 불량채권 등으로 야기된 불황의 끝자락에서 대대적인 과학기술 행정체제 개편을 실시, 15개 연구소를 통·폐합해 AIST(일본 산업기술총합연구소)를 만들었다.

눈여겨 보아야 할 것은 AIST의 '통·폐합' 그 자체가 아니라 '과정'이다. 일본은 AIST 체제를 구축하는 과정에서 총리가 매월 1회 주재하는 종합과학기술회의의 전문조사회 조사위원들이 3년에 걸쳐 연간 50여 차례 각 연구소들의 문턱을 넘나들었다.

종합과학기술회의는 조사위원들은 현장의견을 면밀히 검토하고, 경제재정자문위와 함께 단기과제와 중장기 과제의 균형을 설정하는 등 거시경제와 미시경제 논리 사이에서 소외받는 연구자들이 발생하지 않도록 배려하는 노력을 펼쳤다.

AIST 체제의 구상 과정에서 NISTEP(일본 과학기술정책연구소)이 내놓은 5가지 전제조건도 눈여겨 볼만한 대목이다.

NISTEP은 △충분한 시간을 두고 검토를 진행하며 △통합이 국가 연구역량이 훼손되는 방향이 돼서는 결코 안 된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또한 체제 구축 후에도 지속적인 현장의견 수렴으로 수정·개선이 이뤄져야 하며, △연구자들에 대한 메니지먼트 및 사이언스 거버넌스 강화와 함께 △납세자의 기대에도 부응해야 한다고 못을 박았다.

특히 AIST는 15개 연구소를 하나로 통합하는 과정에서 연구과제 및 보직자·행정종사자 등의 축소가 불가피했던 터라 구조조정 기준의 평가 문제로 골머리를 앓은 적이 있다.

당시 논문발표, 특허출원, 국제규격 채택 등 '아웃풋'(out-put) 계산에 의한 평가가 연구자들의 저평가를 초래하고 사기를 떨어뜨린다는 목소리가 봇물을 이뤘다. 미국·독일 과학기술계 전문가도 AIST를 방문하고는 형편없는 평가 시스템에 혀를 내둘렀다는 일화도 있다.

결국 AIST는 결국 출범 후 연구 아웃풋이 활용되어 창출되는 사회·경제적 효과는 물론, 스핀오프 기술 개발 등에 따른 새로운 연구분야 개척 등을 모두 포괄하는 '아웃컴'(out-come) 평가를 도입하고 나서야 연구자들의 불만을 다소 잠재울 수 있었다.

반면 우리나라 科技정책 전문가들은 일본이 밟았던 시행착오에 대한 분석은 커녕 대안조차 없이 단순한 숫자 줄이기, '시스템을 위한 시스템 구조조정'을 추진하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한국을 방문한 AIST 정책 관계자들도 일본의 과학기술정책의 성공여부에 대해서는 선뜻 대답을 하지 못하고 '지속적인 수정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라는 대답으로 일관하고 있다.

대대적인 시스템 변화보다는 예산 및 인사권 없이 연구에 대한 중간가치 평가와 컨설팅을 실시하는 '연구 코디네이터 제도' 등 연구자들에게 필요한 시스템을 우선 도입해 사기를 북돋는 것이 훨씬 효과적이라는 의견도 설득력을 얻고 있다.

연구 현장의 바람은 의외로 분명하면서 소박하다.
대다수의 연구자들은 현장의 의견수렴 과정을 거쳐, 국가 과학기술의 명확한 방향성을 제시해 준다면 기꺼이 스스로 변화하겠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과학계 내부로부터 모아진 작은 개선안들이 모여 과학기술 정책의 근간을 이루는 시대를 염원하고 있다. 정부는 현재 냉철한 시각을 갖고 무엇이 진정 국가 과학계를 위한 길인지를 스스로 반문해야 할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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