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순생산공장의 허수아비 사령관은 싫다”

“담담합니다.” 한국식 경영 모델을 세운 것으로 세간의 주목을 받았다가 ‘기적’을 일군 곳에서 하루아침에 물러나게 돼 또다시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서두칠 전 한국전기초자 사장이 밝힌 소감이다.

자연인 서두칠로 돌아간 그에게는 사임소식이 알려진 뒤 곳곳에서 사장 제의가 들어왔다. 대기업에서부터 벤처기업에 이르기까지 많은 곳에서 대표직을 맡아달라는 간청을 해왔다. 하지만 그는 당분간은 쉬면서 사색에 들어갈 예정이다. 11월까지 미리 약속된 강연은 예정대로 하면서 장래를 설계할 계획이다.

“절대 타의가 아닙니다. 1천7백여 임직원들과 4년 가까운 세월 동안 고생하면서 세계 최고의 경쟁력을 갖추도록 만든 회사가 지배주주의 결정에 의해 단순생산공장으로 전락하는 것을 한 몸으로 막으려 한 것입니다.” 취임 초기 사원들과의 대화에서 ‘소가 밟아도 무너지지 않는 회사’를 세우기로 하고 3년 8개월간 휴가 한 번 안가고 약속을 지켰다. 현재로는 우답불파(牛踏不破)의 회사가 됐다.

타의로 마무리가 미흡하기는 하지만. 본사 소재지인 구미전자공단 수출로 대로변에 나붙은 77m짜리 초대형 플래카드가 있다. 내용은 ‘가장 어려운 일을 항상 즐거운 마음으로 열심히 일하는 회사’. 하지만 그가 떠난 지금 플래카드는 다소 바랜 듯한 이미지를 사람들에게 주고 있다.

지난 3년 8개월을 그는 어떻게 생각할까. “신문 제목에 ‘구조조정 성공 사례’라고 썼던데, ‘한국적 경영모델 정립’이라고 말하면 더 맞지 않을까요.” 퇴출기업 1호가 세계최고 경쟁력을 가진 기업으로 환골탈태된 것에 한국적 경영모델이 만들어진 것으로 의미를 둔다. 사실 한국전기초자가 개혁에 성공하게 된 것은 종업원들에 안정감을 주고, 기(氣)를 살리는 ‘마음 경영’의 결과이기도 하다. “기업이란 사람이 모여서 일하는 곳입니다. 평상심(心)과 따뜻함(精), 그리고 활력(氣)이 합쳐지면 불가능에 도전할 수 있는 기본 세력(勢)이 갖춰진 것입니다. 한국인들은 특히 정과 기를 중시하죠. 이를 살려준 것이 전기초자의 경영혁신입니다.” 이 때문에 그는 30년간의 직장생활에 쉼표를 찍으면서도 ‘한국식 경영모델의 전도사’역은 지속할 생각이다.

앞만 보고 달려온 관성이 자신을 쉬지 못하게 할 것이라고도 이야기한다. “우리가 갖고 있는 유일한 자원은 사람입니다. 자원도 없고, 기술력도 없습니다. 앞으로 중국이 세계 공장 역할을 하는 상황에서 우리가 살아남으려면 남들 놀 때 공부하고, 쉴 때 일하는 생활을 해야 합니다. 때문에 같이 일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모아가는 것은 매우 중요하죠.”

아사히글라스가 ‘서두칠 카드’를 버린 데 대해서도 흥분하지 않는다. “사업이란 자전거 타기입니다. 지속적으로 성장해야 합니다. 그런 가운데 페달 밟는 방법은 각기 다릅니다. 경영은 O·X가 아닌 종합예술입니다. 사업에서 만나고 헤어지는 것은 다반사인 만큼 아사히측에 섭섭한 것은 없습니다.”

후임 경영진에 대해서는 기업은 계속적 혁신을 해야만 살아남을 수 있다는 냉혹한 현실을 확실히 인식해야 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지금은 현금 흐름이 좋고 그동안 벌어놓은 것이 있는 만큼 얼마 동안은 버틸 수 있으나 물량이 줄고, 매출이 감소하면 결국 이익이 줄어 대규모 인력을 고용보장하는 것은 어려울 수 있다며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고 덧붙인다. 종업원들에 대해서는 “함께 할 수 있어 고마웠다”라는 말과 함께 “무슨 일이든 긍정적이고 적극적이면서 능동적으로 사고하고 행동하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그의 결정에 대해 일부에서는 사시(斜視)를 갖고 바라보기도 한다. 구조조정 성공이란 절정의 순간에 자신의 몸값을 올리려 초강수를 쓰지 않았냐는 주장이다. 이에 대해 서사장은 “이순(耳順)이 지난 나이에 얻을 것은 무엇이고, 잃은 것은 무엇이겠냐”고 반문한다. 그는 “전문경영인(CEO)이란 전권을 갖고 경영해 결과에 책임지는 프로”라며 “일본측이 공동대표제 도입, 본사 영업본부의 파견 등 경영권을 인정하지 않아 구차하게 남아 있을 필요가 없다고 판단해 사임한 것”이라고 밝혔다. ‘프로’로서 자신의 조건이 받아들여지지 않자 단칼에 매듭짓고, 자유인을 선택한 그의 모습이 여유로웠다.

출판호수 596 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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