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현대 경희대 한방병원 교수…"한의학계 네트워크 펼쳐라"

●연구예산 확보와 友軍 만들기 집중해야
●'한의학을 알려라' 대국민 홍보 중요
●한의학 연구는 한의학연구원이 대표주자

반백의 중후한 모습을 간직한 신현대 교수는 경희대 한방병원 재활의학과 진료실에서 허리 통증을 호소하는 환자를 진료하고 있었다. 우리나라 최초의 대통령 주치의로 활약해 온지 5년. 그동안 100% 양방 주치의만 존재했기 때문에 '최초의 대통령 한방 주치의'라는 타이틀 하나만으로도 신 교수는 사람들의 관심이자 존경의 대상이 됐다.

신 교수의 연구실에는 한의학계로써는 기념비적인 대통령 주치의 임명장이 담긴 액자가 걸려 있다. 당시 문희상 대통령 비서실장이 직접 신 교수에게 전달한 것이다. 인터뷰를 위해 연구실 탁자를 사이에 두고 마주 앉은 신 교수에게 그동안의 주치의 생활 얘기부터 꺼냈다.
 

▲신현대 교수 ⓒ2008 HelloDD.com
◆해방이후 한의학은 '투쟁의 역사'

-노 대통령이 한방 주치의를 두고 건강에 도움이 많이 됐다고 얘기를 들었습니다. 이제 주치의 막바지 시기에 달했는데 처음과 지금 기분은 어떠십니까.

"(말없이 빙그레 웃다가)정말 한의계에 큰 축복이었고, 개인적으로는 큰 영광이었습니다. 처음 청와대 들어가서 느낀 것은 망망대해에 혼자 서 있는 기분이었어요. 아는 사람들 하나도 없었죠. 어디가서 말 붙이기도 그렇고...

양방 주치의는 해방이후 50년간 연속되다보니 자기들만의 틀 내에서 운영되니까 문제될 것이 없는데 저는 한방에서 처음이니까 내 위치가 어느 수준이고 역할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부터 고민해야 했죠.

노 대통령이 저를 임명하면서 힘이 되는 말씀을 하시더군요. '주치의라는 것은 양방이 필요하면 한방이 필요한 법'이라고. 양방과 한방 중 무엇을 우선이라 보지 않고 동일하게 바라보겠다는 의미지요. 이 의미는 결국 일반 국민들한테 전달되고 한의학의 위상이 서양의학과 동일하게 인정받았다는 것으로 봅니다.

이왕 시작하는 김에 저는 대통령 한방 주치의라는 자리를 보존하고, 더 키워나가는 '플러스 알파'를 감당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이것이 내가 몸 담고 있는 한의학계에 도움이 된다고 확신했습니다. 항상 마음 속에 내가 이 기회를 통해 무언가 한의계에 도움을 줄 수 있고 인정받을 수 있는 것을 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신 교수는 주치의 활동을 하면서 대통령과 한의학계를 위한 이야기도 상당 부분 하게 된다면서, 국가 최고 지도자의 건강을 위해 한방이 양방과 함께 어깨를 나란히 하게 됐다는 점에서 뿌듯해 했다. 대통령 한방진료에 대한 자세한 스토리 공개는 하지 않았다. 여러 가지 보안상의 이유인지 말을 아꼈다. 화제를 바꾸었다.

- 대통령 주치의를 계기로 한방의 위상에 대해 말씀하셨는데, 그동안 한의학계가 걸어온 길은 어떠했다고 생각하십니까?

"내가 대학을 다닐 때부터 한의계는 투쟁의 역사였습니다. 60년대 군의관 해달라고 데모하는 등 한의계에서 모든 것이 투쟁의 과정이었습니다. 그 이야기는 너무나 깁니다.

왜 그랬을까요? 명치유신 이후 우리나라가 한일합방 될 때 일본인들이 법률적인 것은 유럽으로부터 받아들였고, 일본의 법이 우리 법에도 영향을 미쳤습니다. 서양 의료 중심의 법제도화가 되다 보니 의사·약사 위주로 일제시대를 지내고 해방을 맞았습니다. 한의계는 의료보조인력 수준이었습니다. 해방이후 미군정 시대에도 특히 의료제도가 미국식 제도로 변화되었습니다. 한의사는 계속 뒤로 밀렸죠. 서양의학 위주의 의료제도가 확립되고 정치판에서도 해방이후 결국 서양 교육을 받은 사람이 정치·사회 전반적으로 영향을 미치게 됐습니다. 한마디로 서양 중심의 의사·약사 인맥이 사회 지도층 벨트를 형성한 것이지요.

한의사는 사회적 지위도 소외되고 우리나라의 한 부분으로 전락했습니다. 당연히 사회지도층에 합류하지 못했습니다. 과거 50년동안 모든 정책 입안도 될 리 없었죠. 국회·사법·행정 모든 사회적 분위기가 서양 중심으로 휩쓸렸기 때문에 한의학계는 투쟁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지요." 신 교수는 한의학의 무거운 역사를 되새기면서도 목소리는 진하고 가벼웠다.

그의 입에서는 평가절하된 한의학이 다시 주목받고, 한국을 넘어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새로운 역사 속으로 진입하고 있다는 확신에 찬 목소리가 베어 나왔다.

◆"한의학, 외국 사람들에 의해 비로소 인정받게 돼"

- 현재 한의학의 위상이 많이 달라졌다고 하는데 그 이유는 어디에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이제 한방도 의료보험이 됩니다. 암울한 한의학 시대를 벗어나 새롭게 인정받을 수 있었던 것은 우리 민족의 피에 한의학이라는 동질감이 흘렀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역대 방송 시청률 1·2위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사극 중에서 의료와 먹거리 분야입니다. 한방 동의보감 57.8%의 시청율. 왜 그럴까요. 우리 민족에는 한의학이 대대손손 흐르는 피 속에 섞여 있습니다. 한의학 감성이 돼 있습니다. 그만큼 우리는 한의학을 사랑하고 있는 것입니다.

둘째는 한의학계 사람들이 열심히 했고 시대에 부응했습니다. 일은 자기 노력이 60%, 다른 사람이 30%, 하늘의 뜻이 10% 작용합니다. 70년대 침 마취가 미국에 알려지면서 '이게 뭐냐'고 신기해 했습니다. 우리나라 해방도 미군에 의해 이뤄졌듯 한의학을 외국에서 인정하기 시작하면서 한의학이 인정받기 시작했습니다. 그 다음 한의학이 세계화 흐름에 맞아 떨어진 것입니다. 세계적인 관심 사항이 되다 보니까 우리 스스로 한의학에 더욱 관심을 갖게 되고, 민족적 자산이자 세계화할 수 있는 호재로 작용할 수 있는 귀한 존재로 여기게 된 것입니다"

◆'국립 한의학 전문 교육기관 설립' 일조한 대통령 한방 주치의

ⓒ2008 HelloDD.com

- 대통령 주치의를 하면서 여러 가지 많은 일들을 해낸 것으로 들었습니다. 가장 보람있던 일이 무엇이었습니까?

신 교수는 지난해 11월 부산대학교에 한의학전문대학원을 설치키로 확정했다는 소식을 접하고 10년 묵은 체증이 내려가는 것 같은 통쾌함을 느꼈다.

청와대 고위간부들과 만날 때마다, 때로는 대통령을 만나면서 줄기차게 이야기했던 국립 한의학 전문 교육기관 설립에 대한 소망이 이뤄졌기 때문이다.

신 교수는 일을 성취하려면 호시우행(虎視牛行; 호랑이처럼 보고 소처럼 행동하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의학은 교육, 연구, 그리고 진료로 구성됩니다. 그런데 한의학은 교육이 빠졌죠. 11개 한의과대학이 전부 사립대학이다보니 진료 위주로 갈 수 밖에 없죠. 첫째도 진료, 둘째도 진료, 셋째도 진료가 한의학계의 현실입니다. '국립 한의학 교육기관' 이 글귀를 3년동안 수첩에 메모해 가지고 들고 다녔습니다. 때만 기다렸죠. 모든 일이 시기가 있더군요.

부탁하는 것도 그렇습니다. 상대방의 상황과 사람의 등급을 생각하고 요구해야 합니다. 그래서 주치의 되고 3개월 이후부터는 로비를 슬슬 하기 시작했습니다. 자주 만나 밥 먹는 게 로비입니다. 전 그렇게 했습니다. 동시에 마음의 진실성을 가지고 이야기해야 합니다. 비서실부터 관련 내용을 뿌렸습니다. 사람이 5번 들으면 머리에 입력 100% 됩니다. 여러 사람들에게 이야기하느라 개인적으로도 밥값 많이 들었습니다. 호시우행이란 말을 아십니까? 호랑이처럼 보고 소처럼 행동하라는 말입니다. 내공을 쌓고 꾸준히 움직여야 일이 되는 법이죠."

- 주치의를 해보시면서 노 대통령을 자주 만나셨을텐데 대통령의 한의학에 대한 인식은 어떻습니까?

"노 대통령은 약초에 대해서 박식합니다. 한의학에 대해 상당히 전문적인 식견을 갖춘 분입니다. 산수유 꽃필 때 노 대통령이 나에게 '신 박사님, 산수유는 꽃을 씁니까, 아니면 뿌리를 씁니까, 아니면 가지를 쓰나요?'라고 질문을 할 정도입니다.

그리고 한약을 대통령이 좋아하십니다. 한 번은 대통령 덕분에 박장대소한 일이 생각납니다. '양방 의사는 입을 아~하고 벌리라는둥 진료가 번거로운데 신 교수는 팔만 걷으면 돼'라는 노 대통령의 말을 듣고 저는 한참 웃었습니다. 개인적으로 저는 대통령 주치의를 하면서 참 다양한 인맥을 형성하고 다양하게 사고하게 돼 좋았습니다. 다만 개인 모임이 없어졌습니다."

◆한의학계, 열린 마음의 네트워크와 대국민 홍보가 중요

- 마지막으로 한의학계를 위해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덕담 부탁드립니다.

"한의학계는 사람을 이용할 줄 모릅니다. 그리고 홍보가 굉장히 중요한데 홍보가 약합니다. KBS 비타민 프로그램에 한방이 왜 못 뛰어 들어갑니까? 무엇이든지 방어보다 공격이 낫습니다. 70% 준비되면 30%는 보완되기 마련입니다. 도와주는 사람이 나옵니다. 특히 한의사는 사회성이 없습니다. 열린 마음으로 다양성을 가져야 합니다. 한의학만 타 학문분야와 유관되는 분야도 없습니다. 한의학 발전을 위해 우군을 많이 만들어야 합니다. 예술하는 사람도 한의학계에 많이 들어와 음악 한방 치료사가 많이 배출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신현대 교수는 누구? 생년월일 : 1947년 6월 25일생(음) 출 생 지 : 대구 전문분야 : 비만 및 절식요법, 척추관절질환, 마비재활 병역사항 : 육군 가입단체 : 한방재활의학학회, 한방비만학회 종 교 : 기독교 생활신조 : 양심, 정의, 사랑 취 미 : 등산, 헬스, 골프 경영철학 : 적극적이며 목표지향적인 끈기 <학력> 1968 - 1974 경희대학교 한의학 학사 1975 - 1977 경희대학교대학원 한의학 석사 1980 - 1982 경희대학교대학원 한의학 박사 <경력> 1977.03 - 1979.03 경희대학교한방병원 임상전임강사 1979.04 - 1983.02 경희대대학교한방병원 전임강사 1983.03 - 1987.03 경희대 한의과대 조교수 1983.03 - 1998.12 경희대학교한방병원 재활의학과 과장 1987.04 - 1992.03 경희대 한의과대 부교수 1991.01 - 1992.12 한방재활의학과학회 회장 1992.03 - 1996.02 경희대 한의과대 재활의학과 주임교수 1992.04 - . [現] 경희대 한의과대 한의학과 한방재활의학교실 교수 1993.03 - 1995.02 경희대학교한방병원 교육부 부장 1996.03 - 1998.12 경희대학교한방병원 진료부 부장 1997.01 - 1997.12 대한한의사협회 이사 1998.01 - 1998.12 대한한방비만학회 회장 1998.12 - 2003.02 경희대학교한방병원 병원장 2000.01 - . [現] 보건복지부 한의학 세계화추진협의회 위원 2000.01 - . [現] 전국한의과대학 부속한방병원협의회 협의회장 2000.01 - . [現] 한국방송공사(KBS) 의료자문위원회 위원 2003.03 - . [現] 노무현대통령 한방주치의 <활동 저서> - 단식요법의 실효 - 동의 재활의학과학 - 자연치료학 - 한방물리요법과학 - 뇌졸중의 재활요법 <논문> - Basic Concept and Treatment Method of Obesity in Oriental Medicine - 대강활탕의 이뇨,진통 및 소염효과에 관한 연구(박사학위논문),경희대대학원,1982.2 - 근골격계 질환의 통증치료시 이온삼투요법의 적용을 위한 한방약물개발에 관한 연구 - 절식요법으로 인한 체중감소가 체조성과 혈청지질 및 요중 무기질배설에 미치는 영향 - 가미대강활탕의 이뇨.진통 및 소염 효과에 관한 연구,1983 - 방기황기탕 및 구기자가 비만백서의 체중에 미치는 영향,한방물리요법학회지,1991 - 소창음자가 비만에 미치는 영향,한방물리요법학회지,1992 - 비만에 관한 문헌적 고찰,한방물리요법학회지,1992 - 비만환자에 대한 설문모형 연구,한방물리요법학회지,1993 - 체지방 측정방법에 관한 연구,한방물리요법학회지,1993 - 실험적 관절염에 절식요법 및 어성초 투여가 미치는 영향에 관한 연구,한방물리요법학회지,1994 - 비만환자의 인격특성에 관한 임상적 연구,한방물리요법학회지,1994 - 방기황기탕이 비만유도 흰쥐의 간 및 부고환지방조직과 혈청지질의 변화에 미치는 영향,한방물리요법학회지,1995 - 비만의 한의학적 개념과 치료법,경희의학,1995 - 비만환자 설문지 답변을 통하여 본 한의학 양생의 의의,한방재활의학학회지,1997 - 비만환자에서의 태.소음양인의 분포,한방재활의학학회지,1997 - 상한론 중 항강과 신통에 관한 고찰,한방재활의학학회지,1997
저작권자 © 헬로디디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