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이상수 메닉스 대표이사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와 엔 케리트레이드 청산에 따른 여파가 중소기업에게 미치면서 가뜩이나 자금난에 허덕이고 있는 중소기업들의 숨통을 더욱 옥죄고 있다.

시중은행 대부분은 엔화자금을 수출·입 관련업체 등 실수요자에게 시설·운영자금 용도로 빌려주도록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은행들이 이런 규정을 무시하고 병·의원, 유흥업소, 부동산 담보대출, 심지어 전문직 자영업자의 가계자금 등 어떤 용도로 누가 사용하는지와 상관없이 마구잡이로 대출을 실시했다.

이에 따라 엄청난 외화자금이 국내에 유입됐다. 특히 금리가 낮은 엔화대출은 일반인들에게 큰 인기를 끌었다. 달러대출의 경우 금리가 연 4~6%대였지만, 엔화대출은 2~3%대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엔화대출이 크게 늘자 정부 통화당국은 지난해부터 금융권에 시설자금 외 운영자금에 대해서는 대출금지를 지시했고, 기존 대출에 대해서도 만기연장을 일체 불허하고 있다.

문제는 국가 경쟁력과 무관한 비제조업체(병·의원, 부동산, 자영업자의 가계자금 등)뿐 아니라 국제경쟁력을 갖추어야 할 제조업체(특히 수출제조업체)의 운영자금 조차도 엔화대출이 허용되지 않는다는 데 있다.

국내 수출기업들은 인건비가 싼 중국·대만·동남아 기업들에 비해 가격경쟁력이 매우 낮다. 그런데 제품생산에 필요한 운영비마저 고금리의 이자를 부담시킨다면 전세계 기업들과 더욱 어려운 경쟁을 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2.8%의 저금리 엔화대출자금으로 제품을 생산해 일본에 수출하고 있는 벤처기업 D사의 경우 작년 하반기에 은행으로부터 '대출만기 시 연장할 수 없다'는 통보를 받았다. 이 회사는 만기가 되면 7%이상의 고금리인 국내대출로 변경해야만 한다.

10억원을 2.8% 저금리로 대출 받아 연간 2800만원의 이자만 부담하고 수출제품 생산자금으로 활용했던 과거와 달리 7.4%의 국내대출로 변경할 경우 연간 7400만원의 이자를 내야 하므로 매년 4600만원의 금융비용을 더 부담해야 한다는 계산이 나온다. 가뜩이나 고인건비, 고물류비 등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국내 수출중소기업이다. 정부가 파격적인지원은 못할망정 국가경쟁력과 무관한 비제조업체와 구분없이 대출을 회수해 수출기업들까지 어렵게 해서야 되겠는가. 수출기업의 경쟁력을 키워야 할 정부의 당국자가 이런 문제점을 제대로 파악하고 있는지 심히 의심스럽다.

엔화대출 초기부터 관리를 제대로 했더라면 지금처럼 막무가내식, 봉쇄식 엔화대출 막기는 없었을 것이다. 퍼주기식으로 제한 없이 나갔던 엔화대출이 정부의 입장에서 골칫거리가 되었다고 앞뒤 따져보지 않고 일률적 규제를 해서는 안 된다. 지금이라도 국내 중소제조업체의 경쟁력강화를 위해 저금리의 엔화대출을 지속해야 한다. 정부가 우선적으로 수출기업에 대한 엔화대출 규제를 풀어준다면 많은 벤처기업의 숨통이 뚫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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