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정권 새과학계: 인터뷰]"대학·연구소 연계하는 행정 완성해야"

국내 과학계 최고 '석학' 조장희 가천의과대학 뇌과학연구소장이 이명박 대통령 당선자 및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에 조언을 던졌다. 조 소장은 '뇌 과학분야 선두주자', '국내에서 노벨상에 가장 근접한 인물' 등 다양한 수식어로 불리고 있는 원로급 과학자다. 그런 그가 대통령직 인수위에 "인재를 먼저 생각하라"고 제안했다. 본지 기자와의 인터뷰를 통해 자신의 뜻을 전해온 조 소장은 "시스템은 두번째다. 사람을 먼저 생각해야 한다"는 시각을 전했다.

◆선결과제는 해외 우수과학자 유치… "고인물 다 퍼낼건가? 맑은 물 부터 들여와야"

과학기술 발전을 위해선 무엇이 중요할 것인가? 라는 물음에 대해 조 소장은 "연구를 하는 것은 사람이며, 그렇기에 가장 중요한 것은 우수한 인재"이라고 대답했다. 조 소장이 특히 우려하는 것은 국내 이공계 대학이 발전하지 못하고 있는 점.

그는 "기초과학 연구의 근간인 만큼 첨단과학국가로 거듭나려면 대학 발전이 필수적"이라며 "우리나라 대학은 아직 후진성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핵심사항은 시스템이 아닌 운영방침에 있다는 설명. 그는 대학의 시스템 자체만을 보면 미국·일본 등 선진국과 다를 것이 없다고 진단했다. "문제는 세계 정상급으로 분류할 만한 훌륭한 '교수'가 부족하기 때문"이라는 것이 조 소장의 말이다. 그는 "좋은 교수가 없으니 좋은 학생이 없고, 좋은 학생이 없으니 대학이 발전하질 못한다. 어느 학생라고 세계적 명망이 있는 교수 밑에서 연구하고 싶지 않겠는가?"라면서 "외국인도 좋고, 해외 한인과학자도 좋다. 최고 실력을 갖춘 교수들을 대거 영입해 대학의 수준을 끌어 올려야 한다"고 말했다.

출연연 역시 마찬가지. 조 교수는 "개혁을 한다고 해서 '출연연 통폐합을 추진한다, PBS(Project Based System)를 없애야 한다'는 등 다양한 내용이 거론되고 있지만 본질적인 문제는 역시 인재에 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인재를 유치하자는 뜻을 지금 있는 연구원들을 퇴출시켜야 한다는 것으로 알아듣고 반대하는 경우가 있는데, 지금까지 국가 R&D(연구개발)를 위해 노력한 사람들을 내보낼 필요는 없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웅덩이에 고인 물을 깨끗하게 하려고 현재 있는 물을 전부 다 퍼내면 결국 말라버린다는 것이 그의 설명. 맑은 물을 지속적으로 공급하다 보면 자체적인 정화가 이뤄질 수 있다.

국내 과학계 역시 그같은 관점에서 개혁을 추진해야 한다는 것이 조 소장의 시각이다. 그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대학이나 연구소도 끊임없이 우수인력을 유치하며 '맑은 물'을 공급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국적을 떠나 우수한 과학자라면 아낌없이 유치해야 한다"면서 "정상급 과학자 1명이 얼마나 큰 성과를 낼지 생각해 보면 아무리 파격적인 대우를 요구한다 해도 결코 아깝게 생각하지 말아야 한다"고 말했다.

◆"세계 1위만이 가치있는 세상, 대학·출연연 하나로 연계하는 정책 펴야"

"유럽에서 연구원으로 활동하던 시절이었다. 스웨덴의 '코스믹웨이'란 우주분야 연구소에서 일을 했는데, 연구소장이 은퇴하자 정부는 새 소장을 찾기 위해 고심했다. 결국 적합한 사람을 찾지 못하자 연구소를 없애 버렸다. 시스템 보다 역량있는 과학자 한 사람을 중시한다는 증거다."

조장희 소장은 자신이 일했던 연구기관을 예로 들며 "세계적인 선진국들은 이미 과거부터 인재육성 위주의 과학정책을 펴 왔다. 해외 시스템을 따라하는데 급급했던 우리나라는 아직도 시스템만을 생각하는 것 같다"고 지적했다. 그는 "산업분야에서도 선발주자를 흉내내며 열심히 일해서 성과를 내는 시대는 이미 지나갔다"고 밝히고 "그런 분야는 중국 등 개발도상국을 당할 수 없을 것이다. 우리는 세계 정상급 연구를 수행해 그 성과를 산업과 직결시키는 구도로 가야 한다"고 역설했다.

특히 조 소장은 대학과 출연연을 따로 구분해 생각하는 현 제도에 대해 "인재와 효율성을 생각한다면 출연연과 대학의 구분을 지어선 곤란하다"고 말했다. 조 소장은 "미국의 한 입자가속기 연구소가 있는데, 9개 대학이 공동으로 출자해 활용하고 있다"면서 "기초과학 분야에서 대학이 독자적으로 추진하기 어려둔 대규모 사업은 연구기관이 공동으로 추진하는 것이 효과적일 수 있다"고 전했다. 그는 "미국 같은 경우 몇 개 대학이 공동으로 연구소를 설립하는 사례를 볼 수 있다. 대학 자체가 추진하기 어려운 대단위 기초과학에 연구기관의 도움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조 소장은 과학벨트 건립 등 이명박 정부의 사업추진에 대해서도 조언했다. 그는 "우리나라에도 오래전부터 고등과학원, KIST(한국과학기술연구원) 등 기관이 있었지만 아직도 기초과학 분야 선진국으로 불리기엔 요원하다"면서 "과학벨트에 기초과학 전문 연구기관을 건립한다고는 하지만, 연구소 신설만으로는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다. 대학과 연구기관이 공동으로 연구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고, 각 분야 인재들을 최대로 활용하기 위한 시도가 필요하다"는 의견을 피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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