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클럽]13일 ETRI서 '나비와 전사' 저자 초청 강연회

"근대성이라는 기준 자체가 문제 있는 게 아닐까?" '나비와 전사'의 저자 고미숙 박사의 탈근대를 위한 지금 행보는 이 단순한 질문에서부터 출발했다. 13일 100권 독서클럽은 ETRI(한국전자통신연구원) 제3연구동에서 연구공간 '수유+너머'의 창립자 고미숙 박사를 초청해 강연회를 가졌다.

이 날 고 박사는 저서 '나비와 전사'에서 말하는 탈근대성의 필요성에 대해 다양한 방식으로 얘기를 풀어 나갔다. 고 박사가 박사학위를 받은 것은 1994년. 이후 1998년부터 '수유+너머'라는 연구실을 시작하게 됐다. 그가 그 동안 연구의 핵심으로 삼았던 것은 항상 모더니티 즉, '근대성'이었다. 하지만 1994년 이전과 이후의 근대성을 바라보는 시각은 조금 달랐다.

1994년 이전에는 '18세기 고전 문학'을 하면서 여기서 근대적 징후 찾는 게 모든 고전문학자들의 학문적 소명이었다. 근대성을 찾음으로써 식민사관을 극복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고 박사는 근대성을 모든 가치의 척도에 놓고 고전 문학 속에 근대성이 있었음을 증명하기 위해 고군분투했다고 한다.

하지만 그는 "박사학위를 받은 이후, 과연 근대성이 정말 좋은 것인가라는 질문을 하게 됐다"고 말했다. 현대 사회에는 몸, 섹슈얼리티, 연애, 글쓰기, 앎 등 생활 전반 모든 것에 일정한 표상이 있다. 일례로 연애에 대해서는 하나의 도표로도 만들 수 있을 정도다.

이는 대부분 멜로드라마에서 배운 것이다. 어느 때 질투하고 어느 때 진도 나가고 어느 때 청혼을 하는가의 표상이 대부분 정해져 있다. 고 박사는 "그렇게 규정하고 사람들 삶의 방식을 옭아매는 것이 '근대성'의 기반"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현재 우리가 행복하다면 근대성은 의미 있는 가치가 될 것이지만, 행복하지 않다면 이 기반을 해체하고 새롭게 구성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 근대성은 인간 소통의 단절 가져와

인간 삶의 방식을 획일화 시킨 것과 동시에 근대성은 인간 소통의 단절도 가져왔다. 고 박사는 故 정다빈 씨의 죽음과 이주노동자들의 죽음에 대해 얘기하며 "정다빈 씨의 경우 왜 자살 했는지 모르는 것 자체가 얼마나 다른 사람과 소통이 단절됐는가를 알 수 있게 해주는 대목"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주노동자 또한 안팎이 단절된 케이스"라며 "우리가 어떤 집단에 대해 얼마나 소통을 단절시키는 것인가를 알 수 있다"고 역설했다. 근대 자본주의는 주체적이고 독립적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그 대가로 고립을 감당해야 하고 모든 지식이 이를 전제로 구성된다. 고 박사는 "우울증 등 모든 근대적 질병이 몸의 안팎을 단절한 것에서 나온 부산물"이라며 "사회·윤리적으로 경각심을 내세워도 소용없다"고 피력했다.

그는 "우리나라처럼 근대화를 굉장히 빠른 시간 내에 이룬 국가의 경우 특히 근대적이지 않은 다른 가치에 대해서는 거의 완벽하게 제거해버린다"며 "이 와중에 남을 죽이지 않으면 자길 죽이는 것과 같은 현상이 끊임없이 일어나게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 탈근대를 위해 필요한 것은 '소통'

고 박사는 이러한 근대성의 표상 체계를 무너뜨리고 탈피하기 위해서는 '단절을 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했다. 일례로 그는 "현재 현대문학 하는 사람들은 고전문학은 전혀 안 읽는다"며 "현대문학을 공부하기 때문에 고전문학이 불필요하다는 식으로 규정짓고 앎의 경계를 조직한다는 것은 심각한 일"이라고 말했다.

고 박사는 "고전문학과 현대문학 나누고 현대문학을 또 잘게 나눠 연구하는 이유를 모르겠다"며 "그런 구분을 부수고 좌우로 종횡무진해보는 것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그가 '수유+너머'를 만든 것도 같은 취지다.

연구 공간 '수유+너머'의 경우 고전문학연구자와 사회과학자들이 만난다. 근대화에 길들여진 보통 사람들에게는 일견 이해하기 힘든 일이지만, 현재 수유+너머에서는 고전문학하면서도 사회과학 서적을 읽고 사회과학 하는 사람도 고전을 연구한다.

그는 "모두 함께 소통하며 공부하면 공부가 저절로 물 흐르듯 흘러가 낯선 개념이나 지식에 대해서 저절로 익숙해지게 된다"고 말했다. 고 박사는 "이런 것들이 바로 근대성의 틀을 벗어난 '탈근대'라고 할 수 있다"고 설명한다.

◆ "고전을 통해 단절된 것과 소통하자."

그렇다면 단절된 것과 소통 하기 위해서는 정확하게 무엇을 봐야 할까. 고 박사는 "'고전'을 봐야 한다"고 피력했다. 그는 "고전을 탐사하면 무수히 많은 스승과 친구를 만나 획일화된 근대성을 깨고 내 일상을 재구성할 수 있는 힘을 받을 수 있다"고 역설했다.

고 박사는 "공부를 하지 않는다는 것은 패스트푸드처럼 수동적이고 획일적인 근대적 교육에 그대로 끌려가는 것"이라며 "어느 한 곳에 갇히지 않도록 폭넓은 지식을 습득하고 이를 통해 삶을 바꾸는 길 위에서 다 함께 만나게 되길 바란다"며 강연을 마쳤다.

한편, 이 날 2시간이 넘는 열띤 강연에 이어 탈근대화를 위한 고 박사의 견해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던 참석자들의 질문이 쏟아졌다. 고 박사는 늦은 시간임에도 다양하게 쏟아지는 모든 질문에 열성적으로 답하는 모습을 보여 참석자들에게 큰 인상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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