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자력발전소 등 산업시찰 나서…글-원자력국제협력재단 이시연

2006년 12월 18일 아침 8시 40분. 기온이 뚝 떨어져 겨울날, 한국국제협력단(KOICA)이 경희대학교 아시아 태평양 국제대학원과 함께 마련한 '한국경제연구(장기)과정' 연수에 참여하고 있는 열여섯 나라, 열아홉 명의 경제 분야 공무원들이 경희대학교 수원 캠퍼스 기숙사 '우정원' 앞에 하나 둘 모인다.

이들은 몽고, 미얀마, 스리랑카, 에티오피아, 우즈베키스탄, 이라크, 인도네시아, 중국, 케냐, 키르기즈스탄, 파라과이, 필리핀 등 다양한 대륙에서 모여 2005년 12월부터 1년 넘게 함께 공부하고 있는 동기동창생들이다. 이들이 한데 모인 이유는 과학기술부와 원자력국제협력재단이 준비한 산업시찰 때문. 소풍을 떠나는 듯 들떠 보이는 얼굴들에 기대감이 잔뜩 서려있다.

◆ 여기가 바로 원자력발전소!
 

ⓒ2007 HelloDD.com
이번 산업시찰의 첫 방문지는 전남 영광의 원자력발전소. 제일 먼저 원자력 전시관에 들러 (주)한국수력원자력의 홍보 영상을 보고, 원자력의 원리에 대해 설명을 듣는 시간. 참가자들 모두 눈을 반짝이며 열심히 설명을 듣는다. 바닷물을 끌어올려 원자력발전소를 가동하고 있다는 사실과 137만 평이라는 엄청난 규모에 다들 놀란다.

참가자들은 "한국은 우라늄을 수입해서 씁니까?", "방사성 폐기물은 어떻게 처리하고 있나요?", "원자력이 대한민국 전력에서 어느 정도 담당하고 있습니까?" 등 많은 질문을 던졌다. 아무래도 한 나라의 살림을 맡은 공무원들이다 보니 원자력에 모두들 관심이 많다.

이것저것 질문을 던져대는 참가자들 덕에 이광석 영광원자력본부 홍보기술과장은 질문에 답해주느라 진땀을 흘린다. 원자로 모형 앞에 선 참가들. 생전 처음 원자로 모형을 보는 터라 관심은 더욱 집중된다. 전문 분야는 아니지만, 원자로의 작동 원리에 대해 간단하게나마 이해할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전시관을 나와서 드디어 발전소에 들어갈 시간. 원자력발전소는 철통같은 보안이 생명인 터라, 참가자들의 신분증 없이는 들어갈 수 없다. 모든 복잡하지만 당연한 절차를 마치고 드디어 원자력발전소의 '심장' 속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원자력발전소의 첫인상은 안전을 최우선으로 하고 있다는 것. 겹겹의 콘크리트 장막과, 여러 단계를 거쳐야 들어갈 수 있는 통제실이 꼼꼼한 안전 운영을 느끼게 해준다. 공기조화설비, 기기냉각수설비, 안전설비 등으로 가득 찬 주 제어실(M.C.R)은 마치 SF 영화에서 보았던 우주선 조종실 같다. 숱한 기계장치들과 버튼들 사이를 분주하게 오가는 엔지니어들이 믿음직스럽다. 원전이 없는 나라가 대부분이기 때문인지, 참가자들 대부분은 원자력 발전소의 안전이 궁금하다.

한 여성 참가자가 "발전소 직원들이 생명보험에 가입돼 있나요?"라고 조심스레 묻자 이광석 홍보기술과장이 껄껄 웃으며 "제가 여기서 23년 동안 근무했고, 제 딸이 지금 대학생입니다. 안전 하나는 걱정 마세요"라고 대답해 참가자들을 즐겁게 했다. 한국 경제의 커다란 동력이 되어 온 원자력발전소를 실제 체험하고 난 참가자들의 눈빛이 출발할 때보다 더 초롱초롱해진 듯. 마음 같아서는 원자력 발전소에서 좀 더 시간을 보내고 싶지만, 뒤에 이어진 일정이 있어 아쉬움을 뒤로 하고 대전으로 향했다.

◆ 한국 우주과학의 산실을 보다

 

ⓒ2007 HelloDD.com
대전으로 들어섰을 때는 이미 저녁 어스름이 깔려 있었다. 한국 과학의 산실이자 앞선 두뇌들이 모여 있는 대전. 이곳에는 참가자를 애타게 기다리는 인공위성 벤처기업 쎄트렉아이 사람들이 있었다.

이곳에서의 일정은 회사 소개와 인공위성 개발 현황에 대한 간단한 영상 보기 그리고 실험실 둘러보기. 쎄트렉아이는 독자적인 기술을 바탕으로 우리나라 고유의 인공위성인 우리별 1, 2, 3호를 개발한 한국과학기술원 인공위성연구센터의 연구원들을 중심으로 1999년, 소형 인공위성 기술의 상업화를 목적으로 설립된 회사이다.

2005년에는 Razaksat 인공위성을 말레이시아에 수출하여 국내 우주기술의 또 다른 가능성을 열었다. 뿐만 아니라 관련 기술과 파생 응용 제품의 수출에서도 큰 성과를 보이고 있다고 한다. 고도의 우주 과학 기술을 실감할 수 있는 귀한 자리인 터라 참가자들의 눈이 다시 한 번 반짝인다.

유리창 너머로 보이는 실험 자재들을 보는 참가자들의 얼굴에서는 앞선 과학기술에 대한 부러움도 얼핏 스친다. 참가자들이 만난 원자력발전소와 인공위성은 한국의 산업과 기술의 두 핵심. 원자력발전소가 성숙한 중년의 모습이라면 인공위성은 이제 막 성장하고 있는 씩씩한 청년의 모습이다.

◆ 한국 경제의 힘, 원자력

대전의 저녁은 환영 만찬으로 이어졌다. 시찰을 준비한 한국원자력국제협력재단이 마련한 자리. 아침부터 이어진 강행군으로 지친 참가자들은 정성껏 준비한 저녁 식사와 함께 피로를 풀었고, 원자력이 한국 경제와 산업에 어떤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지 들을 수 있는 좋은 기회이기도 했다. 원자력발전소 견학을 통해 원자력의 구조에 대해서는 대강 이해를 했지만, 참가자들이 경제 분야 공무원들인지라 아무래도 원자력과 경제의 관계에 더 큰 관심이 있던 터.

한국원자력연구소(Korea Atomic Energy Research Institute)의 임채영 박사는 '경제적 측면에서 본 한국의 원자력'이라는 제목의 영문 강연을 통해 원자력이 한국 경제에 얼마만큼 기여하고 있는지, 원자력의 성공이 다른 개발도상국들에게 어떻게 좋은 역할 모델이 되고 있는지 이야기했다. "1978년 제 1기 원자력발전소가 처음 도입된 뒤, 2006년 12월 현재 한국에는 모두 20기의 원자력발전소가 가동되고 있고, 이들 발전소에서 17,715메가와트의 전력을 생산하고 있습니다.

이 수치는 총 전력 생산량의 29% 이상을 차지하는 수치입니다." 임 박사의 발표에 참가자들 모두 진지하게 귀를 기울인다. 석유자원이 없고 에너지의 수요는 많은 상황에서 우리나라의 원자력은 산업 발전에 엄청난 역할을 담당해왔다. 이는 대부분 개발도상국에서 온 참가자들 모두의 관심사항이기도 하다.

임 박사의 발표처럼 원자력은 값싸고 안정적인 에너지 생산 동력이자, 개발도상국들의 발전을 앞당겨줄 좋은 방법일 터. 강연을 들으면서 참가자들이 갖고 있던 원자력에 대한 고민들은 더욱 깊어지는 듯했다. 경제 분야 공무원으로서, 한국 경제의 긍정적인 부분을 기꺼이 받아들이는 자세야말로 산업시찰의 가장 큰 성과가 아닐까.

◆ 노래와 춤으로 하나 되다

만찬 전의 유익한 시간이 끝나고 참가자들은 또 다른 분위기를 만끽할 수 잇었다. 한국원자력국제협력재단에서는 원자력과 경제의 관계에 대한 강연만을 준비한 것이 아니엇다. 이날의 절정은 바로 록 공연. 본 공연에 앞서 한국원자력안전기술원(KINS)의 직원들이 흥겨운 연주와 춤으로 분위기를 살려주었다. 아마추어 밴드라 조금 어설프지만, 그 열정만큼은 참가자들의 마음을 녹였을 듯했다. 조금은 어색하고 딱딱했던 연회장이 금세 후끈 달아올랐다.

이제는 숙소로 돌아가야 하는 시간. 한바탕의 춤사위 후, 이곳에 참석했던 한국원자력국제협력재단, 한국원자력안전기술원 식구들 모두가 멋진 공연을 보여준 밴드와 함께 기념촬영을 하였다. 순식간에 벽을 허물고 수십여 개의 마음들이 한데 모이는 경험이다. 대한민국이라는 나라, 대전이라는 낯선 도시에서의 하루가 이들에게는 아마 유쾌함과 즐거움으로 영원히 기억되리라. 이것이 바로 문화교류, 국제협력의 바탕이 아닐까.

영광에서 대전으로 이어진 산업시찰의 날들은 이렇게 알차게 저물어갔다. 이날 함께한 참가자들에게 한국 경제의 힘은 무엇으로 기억될까? 그것은 아마도 수많은 연구원들의 땀과 노력, 그리고 모두 함께 머리를 맞대고 성과를 나누는 마음으로 기억될 것이다.

<글. 원자력국제협력재단 연구생 이시연>
 

<참가자 인터뷰> ․ 다그바(Dagva Nasanjargal, 23세, 몽고)

이번 2006 한국경제연구 과정 연수생 가운데 가장 어린 참가자인 다그바. 갓 결혼한 새색시로 남편을 고향에 두고 홀로 떠나와 적잖이 외로울 법도 한데, 한국에서의 생활이 무척 만족스럽다고 한다. 가끔 언어장벽을 느끼긴 했지만 심각한 수준은 아니고, 한국 사람들은 보편적으로 친절하고 남을 도우려한다는 것이 다그바의 인상이다.  "나이가 제일 어려서인지, 모두들 참 잘 챙겨주세요. 저희 팀은 분위기가 무척 좋아요.

언니들,  오빠들, 삼촌, 이모가 모인 대가족 같은 분위기예요." 한국에서의 생활 가운데 다그바의 기억에 가장 남는 일은 이번 행사를 비롯한 산업시찰. 1년 동안 대한민국 곳곳에 산업시찰을 다녔다고 하니, 그야말로 귀한 경험이었을 듯. "원자력발전소는 한국 사람들도 들어가기 힘든 곳인데, 돌아보게 되어 무척 영광이었어요. 이번 산업시찰은 한국의 발전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좋은 경험이었습니다. 학위를 받고 돌아가면 앞으로 일하고 살아가는 데 크나큰 도움이 될 거라고 믿어요."

․ 에카(Eka Hendra Permana, 29세, 인도네시아)

이번 시찰에 '질문왕'에게 주는 상이 있다면 단연 에카에게 돌아갔을 것이다. 영광과 대전에서 끊임없이 질문을 해 안내자들을 귀찮게(?) 했으니 말이다. "조만간 우리 인도네시아에도 원자력발전소를 지을 예정입니다. 전공은 아니지만 무척 관심이 많아요. 제가 재정경제부에 근무하기 때문에 원자력발전소 발주 미팅에 참여하곤 하지요.

인도네시아의 발전과 원자력의 관계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한국에 온지 1년. 그는 어느새 김밥과 비빔밥에 '꽂혔을' 정도로 한국이 익숙하다고 한다. 또한 한국의 지금에서 인도네시아의 미래를 본다. 부정부패가 심했던 한국의 과거, 그리고 인도네시아의 현재가 교차된다. "교통카드나 신용카드, 인터넷 산업 등 한국의 앞선 전자 시스템이 인도네시아에 도입된다면, 부정 부패가 많이 줄어들지 않을까요? 한국의 산업 발전을 살펴볼 수 있는 기회를 만나서 참 좋습니다."

․ 제임스(James Mugambi Mwangi, 35세, 케냐)

산업자원부 소속 공무원인 제임스는 대전의 저녁 만찬에서 훌륭한 춤 솜씨로 참가자들을 즐겁게 해준 분위기 메이커다. 1년 내내 25℃를 유지하는 따뜻한 나라에서 온 그인지라, 역시 한국 날씨는 적응하기 어려운 숙제였다. 김치를 비롯해 매운 음식들도 제임스를 힘들게 한 것들 중 하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친절한 사람들과 수준 높은 교과 과정들 덕에 한국 생활에 톡톡히 재미를 붙였단다.

"한국의 산업과 경제 구조는 매우 발달했고, 케냐에서 배울 점이 참 많아요. 특히 이번 행사를 통해 원자력이 한국 경제에 아주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발전소에서 보는 모든 것이 무척 흥미로웠고, 좀 더 많은 것을 알고 싶어지더군요." 제임스는 자신이 누리고 있는 이 혜택은 자신만의 것이 아니라고 강조한다. 연수 사업은 한국과 케냐가 국가 대 국가로 만나는 일이고, 자신은 이 사업의 전달자라고 생각하는 것. "제가 배워가는 것은 단순히 제 개인의 영광을 위해 쓰이지 않을 것입니다. 한국에서 배운 지식과 경험을 공무원으로서 다른 이들과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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