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 김형자 과학칼럼니스트

2007년 돼지의 해가 밝았다. 작년이 ‘결혼의 해’인 쌍춘년(雙春年)이었다면 올해는 ‘출산의 해’가 될 것 같다. 올해가 600년 만에 찾아온다는 ‘황금 돼지해’라는 속설이 확산되고 있기 때문이다. 올해는 60년마다 돌아오는 정해년(丁亥年)으로 정(丁)은 불(火)을 의미하므로 ‘붉은 돼지해’라고 한다. 여기에 음양오행을 고려해 600년 만에 돌아오는 ‘붉은 돼지해’를 ‘황금 돼지해’라고 하는데, 사실 근거 없는 상술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근거야 어쨌든 ‘황금돼지해’ 열풍은 갈수록 거세지고 있다.

예부터 우리나라는 돼지를 매우 길한 동물로 여겨 돼지꿈을 꾸면 재물이 넘치고 먹을 복이 있다고 보았다. 이런 관념이 올해 아이를 낳으면 재물 복이 넘치고 길할 것이라는 생각이 예비산모들에게 출산의 촉매제 역할을 하는 듯싶다. ‘황금돼지해’를 맞아 돼지에 대해 이런 저런 이야기를 풀어보자. 원래 돼지는 멧돼지처럼 야생에서 살던 동물이다. 사람이 길들여 처음으로 기르게 된 것은 6000년쯤 전으로, 비교적 인구밀도가 높았던 서아시아지역의 수렵·채집민이 종래의 생활을 바꾸면서 동물을 길들여 가축화하기 시작했다.

동남아시아에서는 약 4800년 전, 유럽에서는 약 3500년 전이며, 한국에 개량종 돼지가 들어온 것은 1903년이다. 현재 세계에서 사육되고 있는 돼지품종은 1000여 종에 달한다. 이들 돼지는 혼자 따로 떨어지는 것을 싫어하고 항상 몇 두씩 같이 행동하기를 좋아하는 사회적 동물이다. 서로 어울리다 짝짓기가 되면 수컷들은 한 마리의 암컷을 놓고 쟁탈전을 벌인다.

암컷의 임신 기간은 114일로 일년에 두 번 새끼를 낳을 수 있다. 이때 한번에 낳는 새끼의 수는 대개 열 마리쯤으로 어미돼지 한 마리가 5년 동안 백 마리가 넘는 새끼를 낳을 수 있으니 그야말로 다산의 상징이라 할 만하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돼지’ 하면 둔하고, 더럽고, 욕심 많은 짐승을 떠올린다.

아닌 게 아니라 뭉툭한 몸뚱이에 거칠한 털이며, 앞으로 쭉 튀어나온 주둥이와 조그만 눈, 빈약한 꼬리 등 어느 한군데에서도 세련된 면을 찾아볼 수 없으니 우둔해 보이는 건 당연하다. 하지만 어쩌다 서툰 사냥꾼의 총알을 맞고 성이 나서 반격해 올 경우, 그 날쌘 동작은 호랑이의 민첩한 행동에 비할 바 아니다. 앞으로 돌진만 하는 줄 알았던 돼지가 급정거도 하고 방향 회전에도 능숙하다. 이런 돼지의 모습을 본 사람이라면 돼지더러 ‘둔하다’고 면박주지는 않을 것이다.

‘돼지가 지저분하다’는 생각 또한 잘못된 편견이다. 돼지는 매우 청결한 동물로 스스로 배분장소와 잠자리를 구분해 깨끗한 곳에서 잠을 자고, 정해진 곳에만 배설을 한다. 그럼 돼지는 왜 더럽게 배설물이나 진흙에 뒹구는 것일까? 그것은 목욕할 수 있는 청결한 물이 없거나 뒹굴 수 있는 촉촉한 땅이 없을 때에 나타나는 행동이다. 돼지는 땀샘이 없기 때문에 몸을 시원하게 하려면 습기를 증발시키는 방법을 쓸 수밖에 없다. 그러나 고온과 밀사 등으로 인해 심한 스트레스를 받게 되면 아무 곳이나 마구 배변을 하고, 궁여지책으로 배설물에서 뒹군다.

생존을 위해 어쩔 수 없는 선택을 하는 것이다. 돼지는 후각이 매우 예민해서 다른 돼지와 관리자를 모두 냄새로 판별한다. 멧돼지의 경우 몇 리 밖에 있는 포수의 화약 냄새를 맡고 도망칠 정도라 하니 후각이 얼마나 발달되어 있는지 알 수 있다. 돼지는 우리가 생각하고 있는 것처럼 썩은 것, 상한 것들이 이것저것 뒤섞인 음식을 구별하지 못해 게걸스럽게 먹는 것이 아니다.

돼지의 코는 우리 사람보다 더 민감하여 더럽고 불쾌한 냄새를 더 잘 파악해 낸다. 다만 그들은 원하지 않는 음식을 원하지 않는 공간에서 원하지 않는 냄새를 맡으며 먹고 있을 뿐이다. 돼지가 욕심꾸러기의 상징이 된 것은 돼지가 뭐든 먹는 잡식성이기 때문에 붙여진 것이다.

물론 사람들이 먹다 남은 음식찌꺼기들을 아무렇게나 주어도 가리지 않고 잘 먹지만 그 때문에 욕심 많다는 오해를 받기엔 좀 억울하다. 우리나라는 살을 찌우기 위해 돼지를 가둬놓고 기르지만, 고급 햄을 만드는 유럽의 돼지들은 넓은 들판에 풀어 기른다. 이들의 주식인 도토리가 열리기 전에는 최소한의 먹이만 먹기 때문에 갈비뼈가 드러날 정도로 야윈다. ‘돼지처럼 잘 먹는다’는 말도 모든 돼지에 적용되는 것은 아니다.

어디 먹기만 잘 하는 줄 아는가! 보기와 다르게 돼지의 지능은 개보다 높다. 이 같은 사실은 애완용으로 기르는 돼지를 보면 잘 이해되는데, 돼지는 서로 이해할 수 있는 다양한 소리로 언어적 의사소통을 하면서 그들의 감정을 표현한다. 연인을 만나기 위해 뾰족한 코로 돼지를 가둔 우리의 빗장을 열고 애교를 떠는 것을 보면 사람 못지않다. 때문에 돼지도 학습과 훈련을 반복하면 개 못지않은 실력을 보여 줄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견해다.

돼지는 인간과 식성이 유사하고, 장기의 해부학적 구조나 생리특성이 인간과 가깝다. 이 때문에 돼지장기를 이용해 간, 심장, 신장, 폐와 같은 장기질환자의 장기를 교체하고자 하는 이종장기 생산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 돼지의 세뇨관 세포를 사용한 장치와 인공 혈액 여과 장치를 조합한 회로를 만들어 몸 밖에서 혈액을 순환시킴으로써 신장의 여과뿐 아니라 능동 수송, 대사, 내분비 기능까지를 대체할 수 있다.

하지만 아직은 이식에 있어서 면역 거부 반응이 일어나기 때문에 사람에게 돼지 장기를 이식하는 단계는 아니다. 현재는 돼지의 장기 이식을 통한 당뇨병 치료 기술이 개발되고 있는 단계다. 돼지의 장기를 사람에게 안전하게 이식하는 단계가 되려면 향후 10년 이상은 걸릴 것으로 전문가들은 내다보고 있다.

어느 하나 버릴 것 없이 우리에게 여러 부위를 제공해 주는 돼지가 이제는 뛰는 염통, 간도 기꺼이 내줄 걸 생각하니 정말로 깊은 연민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돼지 만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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