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말 퀄컴은 국내에 벤처기업 투자 펀드를 만든 바 있습니다. 그런데 이 펀드가 요즘 벤처기업인 사이의 '입방아'에 오르내리고 있습니다. 퀄컴이 국내에서 마침내 '돈 장사'까지 시작했고, 그 대리인인 한솔이 아주 충실하게 '들러리'를 서고 있다는 지적이 그것입니다.

퀄컴이 펀드를 구성한 것은 지난 해 12월입니다. 당시에 제프 제이콥스 수석 부사장과 조동만 한솔그룹 부회장이 펀드 설립을 발표했습니다. 퀄컴이 338억원(50%)을 투자했고, 한솔아이벤처스 72억원(10.7%), 중소기업청 200억원(29.6%), 대한교원공제회 30억원(4.4%), 조동만 한솔그룹 부회장이 36억원(5.3%)을 투자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총 펀드 규모가 676억원이니 국내 CDMA 벤처엔 젖줄이 될 것으로 기대됐죠. 지원대상도 '퀄컴의 CDMA 라이선스를 사용하거나 향후 사용할 것으로 기대되는 벤처기업 및 CDMA와 연관성을 갖는 무선이동통신 분야 벤처기업'으로 제한돼 CDMA 벤처기업에 적잖은 돈이 돌아갈 것으로 예상됐습니다.

하지만 9개월이 지난 지금까지 펀드의 사용처가 불분명합니다. 이를 운용하는 한솔아이벤처스(한솔I) 측은 여러 번에 걸쳐 "곧 투자처를 밝힌다"고 말했지만 매번 공염불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아직 투자처가 거의 없다는 뜻이죠. "

경기가 나쁘니 당초 취지와 달리 다른 곳에 자금을 운용한다"고 업계가 의심할 만합니다. 그렇다고 한솔I가 전혀 투자를 안한 것은 아닙니다. 휴대폰 개발회사인 I사가 이미 투자를 받은 것으로 확인됐으며, 지금도 여러 회사가 한솔 측과협상 중인 것으로 확인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투자방식입니다. 이 펀드의 설립 취지 중에 가장 중요한 것은 국내 CDMA 관련 벤처기업의 육성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당시 "한국에서 막대한 이득을 취한 퀄컴이 이제 그 일부를 환원한다"는 긍정적인 여론도 조성됐고, 정부(중소기업청)까지 나서 이 펀드에 돈을 보탬으로서 이런 취지를 적극 살리려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 펀드와 접촉했던 벤처기업인 다수가 혀를 내두르고 있습니다. "말이 CDMA 지원 펀드이지 순 '도둑 심보'"라는 비난입니다. A사 B사장은 "퀄컴 펀드에서 투자제의가 들어와 3~4개월 협상을 했는데 투자배수를 워낙 낮게 요구해 협상을 그만 뒀다"고 말했습니다.

B 사장은 "이미 외국 유수기업으로부터 투자를 받고 자금의 여유도 있는데 먼저 투자 받아라고 제의하더니 단지 '퀄컴 펀드'라는 이유로 가격을 후려치면 누가 받겠냐"고 오히려 반문할 정도였습니다.

이 펀드와 협상 중인 C사 D사장도 "8개월째 옥신각신 하고있다"며 "터무니 없이 배수를 내려치는 데 참 기가 막힐 정도"라고 말했습니다. E사 F사장도 "펀드가 수익을 남기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해도 정도껏 해야지, 그렇게 '도둑심보'라면 아예 홍보나 말지, 생색은 낼 대로 내고 가격은 후려치면 누가 좋아하겠냐"고 지적했습니다.

하지만 이에 대한 한솔 측의 주장도 만만치 않아 보입니다. 한솔 고위 관계자는 "현재 시장이 안좋은 것은 누구나 알고 있고 기업의 가치는 늘 바뀌는 게 상식"이라며 "일부 벤처기업가들이 아직도 '거품'에서 벗어나지 못해 환상을 갖고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이 관계자는 "한솔I는 투자한 뒤 그 기업의 향후 가치를 올리는 데 최선을 다한다"며 "CDMA 원천기술을 갖고 있는 퀄컴과 같이 기업을 분석하기 때문에 투자 배수 책정에는 크게 무리가 없는 수준"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또 "이제 벤처도 변해야 한다"며 "투자 배수만 높게 하려고 하기보다 기업의 실질적인 내용을 풍요롭게 하는 게 중요하다"고 충고했습니다.

<아이뉴스24 이균성기자 gslee@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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