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정직과 딸깍발이 정신 강조한 최형섭 전장관...과학 사료 정리 시급

정초를 맞아 국립 대전 현충원을 갔다. 현충탑에 참배하고 국가유공자 묘역에 있는 과학계의 큰 별인 故 최형섭 장관 묘를 찾았다. 거기에 새겨진 '연구자의 덕목'이란 선배 과학인의 유지가 유독 눈에 들어왔다.

'학문에 거짓이 없어야 한다.' '부귀영화에 집착해서는 안된다.' '시간에 초연한 생활연구인이 되어야 한다.' '직위에 연연하지 말고 직책에 충실해야 한다.' '아는 것을 자랑하는 것이 아니라 모르는 것을 반성해야 한다.'

국민들을 허탈감에 빠지게 하고, 한국 과학계의 신뢰를 땅에 떨어뜨린 최근의 사태에 한 자, 한 자가 가슴을 때린다. 거짓말을 해서는 안되고, 부귀영화와 직위에 연연하지 말며, 아는 것을 자랑하지 말라는 선배 과학자의 뜻이 구구절절이 새삼스럽게 다가온다. 그러면서 안타까움도 동시에 나온다.

왜 이미 이런 과학선배들의 가르침이 있었음에도 있어서는 안되는 일이 백주에 벌어졌는가 하고. 선배들의 유지가 이어지지 않고 화석화돼 기억의 저편에 방치되며, 밖으로 드러나는 것에만, 세계적이란 실적에만 연연하며 오늘과 같은 대과오를 범한 것이 아닌가 하고 생각된다.

99%의 사실이 드러난 가운데 1%의 미련을 갖고 진실게임에 집착하는 사람들에게 최 장관의 묘비명을 읽어주고 싶다. 지난해 이맘때 묘역을 찾았을 때는 봉분도 되지 않은데다가 조화하나 없어 안타까웠는데 올해는 오명 과기부총리가 조화를 하나 보내와 과학계에 그래도 선배를 생각하는 마음은 조그맣게 나마 남아있나보다 하고 위로가 됐다.

최 장관의 묘비명을 보며 든 생각이 하나 있다. 바로 과학계가 선배 과학자들의 업적을 자료로 정리하는 것이다. 최 장관의 경우도 제대로 남아있는 기록물 하나 변변한 것이 없다. 주변에서 같이 연구한 과학자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최 장관은 정말 한국 과학계가 오늘날 한국의 부흥에 큰 역할을 한 것 같으나 이는 '카더라'에 그치고 있다.

과학계에는 원로가 제대로 없는 가운데 그나마 역할을 한 사람들은 전직 장관 가운데 서정욱 초대 과기부 장관, 채영복 전장관, 그리고 이달초 개각에 포함된 오명 부총리 정도가 아닐까 싶다.

이 분들은 과학 업적도 대단하고, 한국의 산업화 및 정보화에 지대한 공로를 세웠으며, 행정 경험도 풍부한 말 그대로 이 사회의 원로이다. 하지만 이 분들에 대한 자료 정리는 전무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최형섭 장관처럼 고인이 된 다음에 자료를 찾으려 하면 차 떠난 다음에 손드는 격으로 아쉬움이 많다. 전직 장관들이 아직 정정하시기는 하지만 늦기 전에 자료를 정리해야 한다. 이공계 기 살리기를 이야기하며 예산으로 장학금 주고, 자리 늘려주는 것을 주로 이야기하는데, 이처럼 과학계의 역사를 정리하며 과학자로서 존경받는 문화를 만드는 것도 아주 중요하다.

대덕연구단지를 특구로 만들어 과학기술이 선진 한국 건설에 한 몫을 하게 하기 위해서도 이런 문화적 접근은 필요하다. 과학계 선배들의 연구에 대한 열정과 그 과정에서의 교훈을 정리해 후배 과학자들의 연구에 디딤돌이 되게 하는 성숙된 과학계를 새해 벽두에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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