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저널, 한국 과학자에 '색안경'...ETRI, 연구성과 검증 점검회의 개최

황우석 교수의 배아 줄기세포 조작의혹 파문에 대한 후폭풍이 한국 과학계 연구현장으로 세차게 밀려들고 있다. 황 교수의 줄기세포 진위여부와 관계 없이, 국내 연구진들은 앞으로 자신의 연구성과를 검증받는데 이전보다 더 많은 노력을 쏟아부어야 할 양상으로 전개되고 있다.

갈수록 황 교수의 연구성과에 대한 의혹이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는 가운데, 황 교수는 물론 국내 연구진들의 연구 결과물에 대한 국제적인 신뢰성이 떨어짐에 따라 야기된 것. 장기적으로 '한국 과학자들의 해외 학술지 게재와 국제무대 진출에 자칫 차질이 빚어지지 않을까'하는 우려도 연구현장에서는 심심찮게 제기되고 있다.

황 교수의 조작의혹 파문이 불거진지 몇 일 지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벌써부터 과학계 현장에서는 해외 저널들로부터 연구성과의 신뢰를 의심받는 사례를 체험하고 있다. 한국생명공학연구원의 P연구원은 얼마 전 해외 유력 학술지에 연구논문을 제출했지만, 검증을 마치고 논문 채택이 됐어야 할 시점이 지났음에도 아직까지 깜깜 무소식이다.

10여년차 연구경력을 가진 P연구원에 따르면 황 교수 파문 이후 기존보다 논문 검증기간이 배 이상 길어졌다. P 연구원은 "논문에 따라 다르지만 보통 1개월 걸리던 논문 검증작업이 확실히 늦어졌다"면서 "본인 뿐만 아니라 동료 연구원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라고 말했다. 최근 C대학 생명공학과 K교수도 연구성과의 법적·윤리적 문제로 해외 학술지 평가위원으로부터 번거로운 작업을 지시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수년간 사람의 혈액을 가지고 실험을 해 온 K교수는 그동안 해외 저널로부터 아무런 지적을 받지 않다가, 이번에 혈액 제공자로부터 혈액 사용에 대한 동의서를 받아 제출해야 하는 작업을 수행해야 했다. 특히 ETRI(한국전자통신연구원)는 이번 황우석 파문을 계기로 최고 의사결정기구에서 연구성과 검증에 대한 점검회의를 개최하기에 이르렀다. 임주환 원장을 비롯해 ETRI 17명의 직할부서장들은 19일 오전 정례회의를 갖고 앞으로 모든 연구내용에 대한 검증절차를 대폭 강화키로 합의했다. 구체적으로 합의된 사항은 연구성과 내용에 대한 내부 검증 프로세스를 거치겠다는 것. 연구 보안을 침해받지 않는 한, 관련 연구에 대한 내부 이해타산 관계자들의 검증절차를 확실히 밟도록 하겠다는 복안이다. 또, 연구성과의 경제적 가치가 인용될 경우 반드시 수치를 인용한 근거를 제시해야 하며, 연구성과를 언론에 발표하기 전 보도목적을 분명히 하도록 했다.

이 회의는 황우석 파문을 돌이켜보면서 연구원 내부에서도 반성의 기회로 삼고, 이에 대한 적절한 대응을 해나가자는 취지에서 마련됐다. 출연연의 한 젊은 과학자는 "앞으로 사이언스나 네이처 등의 해외 저널에 논문을 제출하려면 절차상으로 복잡하게 될 것이 불보듯 뻔하다"라면서 "당분간은 한국의 연구진들이 피곤해질 것 같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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