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30'이 간다-37]최영준 청운대 방송음악과 교수

"한국의 문화·예술계는 뿌리부터 개혁할 필요가 있습니다. KAIST 문화기술대학원에 입학한 것도 그런 제 소망을 실현해 나가기 위한 준비과정이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학생들을 가르치고, 우리나라 예술계를 바로 잡아가며 살고 싶습니다. 그것이 제 소망입니다."

최영준 씨. 서른일곱의 나이로 한국의 문화·예술계를 뒤바꿔보겠다고 나선 당찬 젊은이다. 일부 언론에 '퓨전재즈' 연주자로 소개되며 유명세를 탄 바 있는 그는 한 대학의 버젓한 교수다. 청운대학교에서 방송음악과 교수로 재임 중이다. 나이 스물이 채 되기 전부터 전자음악에 심취해 한 우물만 파 온 결과다.

그러나 대덕의 KAIST(한국과학기술원)를 찾는 날에는 교수인 그 역시 학생이 된다. 올해 가을 본격 출범한 KAIST CT(문화기술) 대학원에 등록해 박사과정을 밟고 있기 때문이다.

군 생활 계기로 전자공학도에서 음악가로 '새 출발'...방송·게임음악 개발 등 경력

그가 전자음악을 처음 접한 계기는 군 복무 시절 군악대 생활을 하면서였다. 명지전문대학교에서 '전자공학'을 전공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최씨는 '군에서 사용하는 모든 악보를 전산화하라'는 특명을 받았다. 당시 레코드 관련 작업을 수행하기 위해 유선설비 관련 자격증을 소지한 사람이 그 밖에 없었다.

제대 후에는 방송국 토크쇼의 음향효과를 담당했으며, 이어 한 게임회사에 입사에 컴퓨터 게임의 음향효과를 제작하는 일을 했다. 처음 하는 일이다 보니 전부 몸으로 배우는 수밖에 없었고, 짬짬이 시간을 내어 컴퓨터 언어인 어셈블리 등을 배우러 다녔다.

여러 회사를 옮기며 유아용 교육 CD-ROM 타이틀 개발 등에 참여하기도 했던 그는 결국 국내에서 하는 공부에 한계가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미국으로 건너가게 됐다. 최 씨는 "버클리 음대에서 학사과정부터 다시 공부를 시작했으며, 그곳에서 재즈(Jazz) 와 관련된 음악에 2년 이상 몰두했다"고 당시를 회고했다. 과거에도 컴퓨터와 악기를 연결해 가며 음악을 구현해 왔지만, 모든 것을 컴퓨터로 직접 처리할 수 있는 진정한 컴퓨터 음악도 그곳에서 처음 배웠다.

이어 최 교수는 '브라운(Brown)' 대학으로 옮겨 석사과정을 시작했으며, 동시에 MIT 대학의 미디어 랩(연구실)의 한 교수와 공동으로 여러 연구프로젝트를 수행하기도 했다. 졸업 후 아날로그 디바이스(Analog Device)라는 유명 회사에 취직했지만 유색인종 차별 등의 벽에 부딪쳐 결국 좌절, 다시 한국으로 건너오게 됐다.

다행히 국내에 보기 드문 방송음악 과정을 공부했기에 상명대학교 초빙교수 생활을 거쳐 현재 청운대학교 방송음악과의 교수로 활약하고 있다. 최 씨가 CT 대학원에 입학하게 된 결정적인 계기는 거의 우연에서 비롯됐다.

그는 "마침 KAIST에서 특강을 하고 있을 때 옆방에서 원광연 CT대학원 원장님이 입학설명회를 하고 있었다"며 "강연을 마치고 즉시 커리큘럼을 알아본 후 입학을 결정하게 됐다"고 밝혔다.

"지원 시스템부터 바뀌어야 한국 문화·예술계가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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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한 대학의 '교수'로 인정받고 있는 그가 굳이 KAIST의 CT대학원을 찾은 데는 나름의 이유가 있다. 지금까지 전자·방송음악과 관련된 길만을 걸어온 그는 국내 문화 정책에 대해 아쉬운 점이 많았고, 이를 개선하 위해 그 첫걸음을 내딛은 것이 KAIST다.

국가에서 인재를 양성하는 KAIST에서 공부한다면 자신이 원하는 예술 활동을 펼쳐나가는데 유리할 것이라는 판단에서다. 최 교수는 세상에 3종류의 사람이 있다고 했다. 문제점을 인식했을 경우 문제를 해결할 것을 포기하고 제도에 순응해 살아가는 사람, 제도권 밖에서 도전하는 자, 그리고 제도 안에서 상황을 바꾸어 나가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

그는 KAIST에 입학하며 나름대로 '제도권 안에서의 개혁'을 꿈꾸고 있다. 그가 추진하는 음악철학은 확고하다. 발전하는 IT 등 신기술을 접목해 새로운 문화 사조를 만들어 보는 것이다. 최 씨는 "앞으로 음향·영상·미디어 등이 하나로 합쳐지는 퓨전 예술이 대세를 이룰 것"이라고 미래를 예측하며 "이들을 모두 아우를 수 있는 '뉴미디어'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이런 꿈을 실현하기에는 현실의 벽이 너무나 두텁다고 그는 전했다. 그는 과거 문화진흥원의 지원으로 국악음을 합성하는 소프트웨어 개발에 참여했던 기억을 잊지 못한다. 많은 노력 끝에 프로그램을 완성했지만 결국 판로를 개척하지 못해 무상배포하는 것으로 끝낼 수 밖에 없었다. 이는 국악인들이 전자악기를 동원하는 '퓨전'의 개념을 이해하지 못했고, 그들의 수입이 소프트웨어를 구입할 만한 수준의 한계를 도저히 뛰어넘지 못했다.

최 씨는 "효율적이지 못한 정책운영이 예술가들의 목을 죄고 있다"며 "오늘 날에는 정부도, 연구를 진행할 대학교수도 서로 믿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현 문화·예술계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1년 단위로 성과를 요구하는 평가제도, 문예진흥기금 사용문제 등 차마 설명하기 어려운 문제가 산적해 있다는 말이다. 그는 "문화·예술을 전공하는 사람들에게 필요한 것은 돈이 아닌, 창작활동을 할 수 있는 여건"이라며 "공동장비 등을 제공하고, 충분한 재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하는 시스템을 완성하는 것은 결코 현재 이상으로 돈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라고 역설했다.

시스템을 통해 예술가들이 필요로 하는 자원을 제공하고, 그들은 이를 이용해 자신의 작품으로 수입을 벌어 나가는 세상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 최 씨는 "할 수 있는 한 기존의 문제점을 타파하기 위해 최대한의 노력을 기울일 것"이라며 "지금 KAIST에서 하는 공부가 이런 노력의 발판이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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