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최대의 '벤처사관학교'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이 평온을 되찾고 있다. 지난 3년 동안 전체의 절반에 육박하는 1천1백여 명의 연구원들이 한꺼번에 보따리를 싸 ‘쑥대밭’이 된 ETRI에 ‘과거의 동지’들이 돌아오기 때문이다.

ETRI에만 32년 동안 잔뼈가 굵은 吳길록원장(55)이 조종간을 잡은 후 1백여 일이 지난 시점이다. 최근 ‘세계속의 IT 분야 R&D 중심축’을 선포하고 한국 IT 산업의 재도약을 선언한 ETRI 吳원장을 만나봤다.

ETRI 원장으로 취임한지 1백여 일이 지났는데 소감은.
“그동안의 1백여 일은 지난 32년간의 연구원 생활보다도 길게 느껴졌던 나날이었습니다. 연구원의 최대 현안인 인력유출 방지와 연구 분위기 조성에 최선을 다했습니다. 이에따라 어느 정도 성과가 나오고 있는 게 사실입니다.”


최근 ETRI를 떠난 연구원들이 속속 돌아오고 있는 데.
“취임하자마자 최대 당면 과제로 추진한 것이 인력구조 안정화입니다. 중견연구원들이 너무 부족합니다. ‘돌아오는 ETRI’ 정책을 내놓은 지 3개월 만에 서서히 효과가 나오고 있습니다. ETRI를 떠났던 10명의 중견 연구 인력이 돌아왔습니다. 퇴직자 수도 자연감소분인 5%미만으로 떨어졌습니다.”

‘연구원 연어론’이 무엇인가. 효과를 보았다는 뜻인가.
“벤처창업 붐과 정부출연연구소의 구조조정으로 인해 우수한 연구원들이 자의반 타의반 떠나는 모습을 보면서 선배로서 마음이 아팠습니다. 이러한 고민 끝에 생각한 것이 바로 ‘연어론’입니다. 연어는 알을 낳기 위해 자신이 태어났던 곳으로 갖은 고생과 위험을 무릅쓰고 돌아와 알을 낳고 생을 마감합니다. 똑같습니다. 여러 가지 사정으로 ETRI를 떠났던 연구원들이 언제든지 다시 돌아올 수 있도록 어떠한 인사상의 불이익을 주지 않고 받아들여 ETRI의 생명력을 이어 나가겠다는 말이지요.”

원장으로서 가장 역점을 두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
“ETRI는 우리나라 IT수준을 세계수준으로 끌어올린 주역일 뿐 아니라 일부이기는 하지만 세계와 어깨를 나란히 겨루고 있습니다. 또 나아가 전체적인 연구개발에 관한 방향을 제시할 수 있을 정도의 위치에 와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ETRI가 지금까지는 우리나라의 IT 기술개발에 관한 방향과 비전을 제시하지 못한게 사실입니다. 이번 부분을 충족하겠다는 것입니다.”

정부출연연의 Role(임무)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해당분야의 기반기술을 닦는 것입니다. 우리는 IT 분야를 초일류로 끌어올리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서는 소형과제 위주에서 대형과제 위조로 재편해야 합니다. ETRI는 1년에 4천억원 정도의 과제를 진행하는데 10개 정도에 2천억원 정도의 대형과제 진행이 되어야 하지요. 계획적이고 장기적인 마인드로 접근해야 합니다. 굵직굵직한 국책과제 수행으로 세계최고 수준의 기술력을 확보할 수 있도록 선택과 집중을 해나갈 것입니다. 대형과제 수행을 위해서는 기업체와의 공동과제 수행이 필수적입니다. 시장의 기술 흐름을 읽을 수 있기 때문이지요. ETRI의 연구방향은 국내 IT 분야의 R&D방향의 바로미터로도 작용하도록 할 방침입니다.”

정부출연연구소와 벤처기업간 관계에 대해서는.
“출연연은 경쟁력 있는 신기술을 만들어 벤처기업에 그 기술을 이전하고 상용화 할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도와줘야 합니다. 물론 벤처는 당장 제품화가 급하기는 하지만 멀리 앞을 내다보고 협력하는 자세가 필요하지요. 실질적인 기여도 할 생각입니다. ETRI는 최근 코스닥 위원회로부터 기술평가기관으로 선정되었는데 내외 공신력으로 정확한 평가를 진행할 계획입니다. 특히 그동안은 획기적인 기술력을 갖고 있더라도 이에 대한 가치 평가가 정확히 이루어지지 않았는데 이런 부분에서 ETRI가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입니다.”

세간의 화제가 됐던 퀄컴으로 부터 받은 기술료의 액수와 분배 방식은.
“ETRI가 금년도 퀄컴으로부터 받은 기술료는 모두 1억25만5백30달러(한화 약 1천2백89억원)입니다. 올 국가 무역수지 흑자 목표액이 1백억 달러임을 고려할 때 퀄컴사로부터 징수한 기술료 수입 1억달러는 엄청난 액수라고 할 수 있지요. 분배와 관련해서 ‘나눠먹기식’은 절대로 없을 것입니다. 다만 한배를 탄 공동체 운명이라는 관점에서 전반적인 연구환경 조성이나 복지 등을 위해 사용할 수는 있을 것입니다.”

대덕밸리 정부출연연이 지역사회에서 해야 할 역할은.
“정부출연연이 지역사회에 이렇다 할 역할을 하지 못했다는 평가는 어제 오늘 일이 아닙니다. 전적으로 부정하는 것은 아니지만 나름대로 출연연구소들이 할 수 있는 역할은 무궁무진한다고 생각합니다. 출연연들은 앞으로 대덕연구단지, 과학산업단지, 대전시와의 연계를 통해 첨단과학기술 도시로 고부가가치 산업구조로 변화를 유도할 것입니다. 또 지역 교육기관과 교류를 강화해 나가 신지식을 지역사회 전반에 확산시키는 역할을 할 것이며 수도권과 타지역 산업단지와 연계, 상호 장단점을 보완하는 매개역할을 해 나갈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대덕밸리 활성화를 위해서는.
“21세기는 지식사회입니다. 지식을 창조하고 이를 활용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는 것이지요, 대덕연구단지에 입주해 있는 연구소들은 연구개발의 중요성을 강화해 나가는 한편 민간연구소나 벤처기업 그리고 지역사회와 상호협력을 통해 'WIN-WIN'을 거둘 수 있는 관계를 정립해 나가야 할 것입니다.”

<대덕넷 구남평 이준기기자>flint70@hellodd.com

*약력 45년 전남 해남산 광주제일고,서울대 천문학사,과학기술원 석사,프랑스국립응용과학원 박사 69년 한국과학기술연구소(KIST)선임연구원,한국전자기술연구소(KIET)책임연구원,ETRI 부장,ETRI정보기술개발단장,컴퓨터연구단장,시스템공학연구소장,한국정보처리학회장,한국소프트웨어컴포넌트컨소시엄(KCSC)회장,ETRI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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