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악한 환경 속, 평생 가꾼 영장류...한 번 실수로 '냉대'?

한국생명공학연구원 영장류 떼죽음 사고는 어느 정도 소강 국면에 접어들고 있지만 원숭이들과 수년여 동안 함께 하던 과학자의 가슴에는 깊은 상처를 남겼다.

이번 사고로 인해 가장 처참한 분위기가 감돈 곳은 다름아닌 생명연 국가영장류센터 실험실이다.

한 밤중 정전과 온도센서 고장으로 원숭이 사육실 온도가 50℃까지 올라갔지만, 도저히 손을 쓸 수가 없었다.

수년 동안 함께하던 원숭이들을 살리기 위해 마음을 조리며 이리 저리 뛰어다녔지만 99마리의 원숭이가 열사병으로 죽어가는 것을 지켜만 봐야 했다.

지난 99년 우리나라에 무균원숭이 실험사육실을 처음 만들어 낸 H 박사에게는 7~8년, 아니 한평생 공을 들인 고된 땀과 노력들이 순식간에 '도로아미타불'이 되는 순간이었다.

친구 이상의 친구였던 원숭이...한국 영장류 연구의 숨겨진 노력

사실 학창시절 이전부터 동물에 매료된 H 박사는 축산학, 동물학, 실험동물유전학 등 영장류 관련 분야를 공부해가며 본격적으로 영장류 연구에 뛰어들기로 작정한다.

우리나라에서도 인류 신약개발의 최종 관문인 영장류 임상실험 기반을 닦기 위해서다.

영장류 연구는 국내에서는 한 번도 열리지 않은 길이었다. 때문에 H 박사는 영장류 연구가 왜 중요한지 설득하고 나서야 했다. 처음에는 결심만하면 연구자금은 줄을 설 것으로 착각했다.

그러나 기대와 달리 모두들 시큰둥한 반응이었다. 그래도 나름대로 그럴듯한 연구계획서를 들고 계속 정부에 문을 두드렸다.

몇 년만에 고생한 결실을 보았다. 지난 99년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영장류 실험동물실이 마련될 수 있었다.

실험실이 마련되고 같은해 10월 필리핀과 일본에서 32마리의 원숭이들을 들여와 약 10개월만에 필리핀 원숭이 1마리와 마모셋 원숭이 3마리를 출생시켰다.

1년이 가고, 2년이 지나면서 H 박사는 원숭이를 친구 삼았다. 친구 이상의 친구처럼 느꼈다. 오랫동안 같이 생활하다보니 깊은 정이 든 것이다.

사육을 맡은 연구원들도 과일과 갖가지 성분이 함유된 먹이사료를 주면서 원숭이와 한 식구가 됐다.

45년 가량 사는 원숭이를 종신사육을 해야 하기 때문에 관리사육비를 조달하기가 만만치 않았지만 H 박사를 비롯한 센터 연구진들은 동료 연구원들과 연구소의 도움을 받아가며 적지 않은 원숭이들을 키워냈다.

30여마리로 시작한 원숭이 숫자가 그 후 번식을 거듭해 최근까지 총 200여마리의 원숭이가 실험실 안에 옹기종기 모여 살게 됐다. 한 과학자의 확실한 비전과 사명이 없었더라면 거의 불가능했던 성과다.

H 박사는 곧 충북 오창에 마련된 새 보금자리로 이사해 현재의 시설보다 우아하고 안락한 곳에서 원숭이들과 동거동락할 수 있었지만, 안타깝게도 쓰디 쓴 아픔과 상처만 맛봐야 했다.

계획대로라면 지난 3월 이미 새집으로 이사하기로 돼있었지만, 연구소 내·외부 사정으로 이사를 미뤘다는 사실도 H 박사에게는 크나 큰 아쉬움으로 자리잡고 있다.

"실패는 과학을 살찌게 한다"

사고가 수습되자 영장류 연구에 일생을 걸었던 H 박사에게 돌아온 것은 '보직 해임'이라는 중징계 뿐이었다. 개인의 잘못이 아닌 거의 천재지변성으로 일어난 사고였지만 센터장이라는 책임 아래 자리를 내놓게 됐다.

사실 원치 않는 사고가 발생하기까지, 성공 하나를 위해 있는 힘껏 달려 온 H 박사를 비롯한 연구진들에게 단 한번의 사고를 통해 돌아온 것이 무엇인가?

오히려 잘했다고 박수를 쳐도 시원찮을 판에 책임자의 중징계 처리와 실험 냉대의 분위기가 지배적이었다.

연구 현장에서도 "이번 사고에 대한 조치는 과학자에게 너무 가혹한 처사였다"고 공감대를 이룬다.

과학자들 사이 '나도 연구를 하다가 사고 한 번 나면 저렇게 엄한 벌을 받는구나'라는 억압적 분위기가 형성될 뿐이다.

분명 실패는 했지만 최선을 다한 사람의 노력을 냉랭하게 보는 시각에서는 어떤 진보와 발전도 나올 수 없다.

오히려 실패를 격려하고 권장하는 문화는 과학계를 살찌게 할 것임이 틀림없다. 그들의 노력을 헛되이 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실패를 무시하고, 은폐하고, 책임을 회피하는 풍토와 맞서 싸워야 한다.

 

<대덕넷 김요셉 기자> joesmy@HelloDD.com      트위터 : @ssebi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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